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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준봉의 시선

‘건국전쟁’ 너머 이승만을 보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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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신준봉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신준봉 논설위원

신준봉 논설위원

지난달 27일 100만 관객을 돌파한 이승만 다큐 ‘건국전쟁’이 갈수록 총선 재료가 되는 모양새다. 당연히 집권 여당이 반색하는 재료다. 영화 초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불쑥 등장하는 장면부터 상징적이었다. 그의 지난해 법무부 장관 시절 발언(“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영상이 영화 속에 삽입됐다. 가뜩이나 민감한 현대사 소재 다큐에 현역 여당 실세까지 등장시켰으니, 현 정부에 비판적인 상당수 관객은 안 봐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고 봐야 한다.

다큐에 장년층 호응 100만 관객
허물 생략해 편파 시비 일 수 있어
양극단 평가, 깊이 읽기로 풀어야

김덕영 감독은 단순히 영화 만든 데서 그치지 않는다. “‘건국전쟁’은 4·19의 헌법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14일), “호남이 변하고 있다”(16일), “중도층도 각성, 개봉 이후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것이 그 증거.”(23일) 이런 취지의 과감한 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중이다. 이승만 복권(復權) 전도사를 넘어 여당의 총선 일꾼으로 나선 인상이다. 일부 여당 정치인들이 관람 인증에 나선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은 23일 용처를 두고 말 많던 서울 경복궁 옆 송현광장에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지자체와 개신교 대형 교회, 자유총연맹 같은 기관·단체의 관람 독려 이야기도 들린다.

이승만·현대사·현실 정치. 하나같이 젊은 층이 외면하는 소재들이어설까. 영화시장 분석가 김형호씨에 따르면 ‘건국전쟁’은 50대 이상 장년층 관객이 다른 다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2017년 ‘노무현입니다’의 50대 이상 관객은 전체의 12%, 2018년 세월호 다큐 ‘그날, 바다’는 11%에 불과했다. ‘건국전쟁’은 46%나 차지한다. 10·20대 관객층은 정반대다. ‘노무현입니다’가 25%, ‘그날, 바다’가 29%였던 데 비해 ‘건국전쟁’은 9%에 불과하다(2월 14일 기준).

젊은 층은 외면하고 장년층은 쏠린 또 다른 다큐로 2022년 ‘그대가 조국’이 닮은꼴이라고 한다. 그런데 CGV는 50대 관객과 60대 이상 관객을 구분해 통계를 내지는 않는다. 기자는 지난달 25일 영화를 봤다. 반백의 장년층 관객이 적지 않아 보였다. 휠체어를 타고 와 주변의 부축을 받아 좌석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연령층보다 보수 성향이 강한 60대 이상이, 46%에 달하는 50대 이상 관객 가운데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면 영화는 그만큼 폐쇄적이라고 봐야 한다. 연령에서나 소재에서나, 둘은 어느 정도 얽혀 있는 것이겠지만, 볼 사람은 보고 안 볼 사람은 절대 안 볼 가능성이 높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자에게는 내용과 만듦새 역시 아쉬웠다. 우선 이승만 전 대통령이 독재를 하지 않았다고 한 부분. 그에 대한 공식 역사서술이 달라지면 모를까, 교과서에서 독재했다고 배운 젊은 세대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101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걸 욱여넣을 수는 없었겠지만 그의 허물을 거론하지 않은 점도 문제적이다. 김덕영 감독은 그동안 이승만 콘텐트가 한쪽으로 치우쳤다며 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일방적인 얘기라고 여기는 비판자가 응할 리 없다. 대화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게 가령 ‘건국전쟁’을 봤다는 영화 평론가를 찾기가 어렵다. 극단적인 얘기는 싫다는 것이다. 한 평론가는 “일방적인 얘기만 해대는 가장 공포스러운 영화였다”고 평했다.

건국의 아버지. 그러면서 독재자. 평가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길은 없을까. 결국 이승만 깊이 읽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학자 이정식(2021년 작고)은 『대한민국의 기원』에서 주변 사람들의 다음과 같은 이승만 인물평을 소개했다. “대단히 성격이 급하고 남들과 쉽게 싸웠다”(허정), “기억력이 비상했다”(윤보선), “진정한 애국자였다”(장기영).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유지윤 박사는 “미국 사회를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었다”고 했다. 이승만에 관한 탁월한 연구자이면서 비판자로 평가받는 이화여대 정병준 교수의 묵직한 책 『우남 이승만 연구』에도 좌충우돌, 미국 행정부를 불편하게 하는 우남의 모습이 나온다. 벼랑 끝 전술을 써가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따낸 이승만의 완력 이해에 도움 되는 자료들이라고 생각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어디에고 들어설 이승만 기념관을 그의 공·과를 담백하게 보여주는 공간으로 꾸미면 어떨까. 적어도 대만은 그렇게 한다. 타이페이 한복판에 자리 잡은 중정기념당이 장제스 치하 피로 얼룩진 민주화 운동 절반, 그의 업적 절반을 보여주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중정기념당을 둘러보며 대만인과 장제스가 다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