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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계리 일대 탈북민 '방사능 피폭' 검사 결과 "인과관계 불명확"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 방식으로 폐기했다. 사진은 지휘소와 건설노동자 막사가 폭파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 방식으로 폐기했다. 사진은 지휘소와 건설노동자 막사가 폭파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 핵실험장이 위치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인근 지역 출신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을 상대로 실시한 방사능 오염 및 방사선 피폭 검사에서 일부 주민들의 염색체가 변형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수치가 미미해 북한의 핵실험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조사기관의 입장이다. CT촬영과 같은 의료방사선 피폭이나 음주·흡연, 유해물질 노출 등의 교란요인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통일부는 29일 풍계리 일대에서 원인모를 질병이 발생하고 있다는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한국원자력의학원에 의뢰해 핵실험장 인근 8개 시군(길주군, 화대군, 김책시, 명간군, 명천군, 어랑군, 단천시, 백암군) 출신 탈북민 80명을 검진한 결과를 공개했다.

검사는 지난해 5월 15일부터 11월 6일까지 이뤄졌으며, 인체에 축적된 방사능을 측정하는 전신계수기와 소변시료분석, 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등의 피폭 검사를 진행했다. 전신계수기 검사와 소변시료분석 검사에서 전체 80명 중 유의미한 결과를 보인 주민은 없었지만, 전 생애에 걸쳐 누적된 피폭 선량을 측정하는 '안정형 염색체 이상 검사'에서는 17명이 최소검출한계인 0.25 그레이(Gy)를 넘는 수치를 보였다.

2018년 5월 24일 국제기자단과 북한 관계자들이 풍계리 핵실험장 3번 갱도로 이동하기 위해 흐르는 계곡에 설치된 다리를 건너는 모습. 북측 관계자들은 풍계리 핵실험장이 위치한 만탑산에 산천어와 송어가 특산물이라고 말했다. 사진 공동취재단

2018년 5월 24일 국제기자단과 북한 관계자들이 풍계리 핵실험장 3번 갱도로 이동하기 위해 흐르는 계곡에 설치된 다리를 건너는 모습. 북측 관계자들은 풍계리 핵실험장이 위치한 만탑산에 산천어와 송어가 특산물이라고 말했다. 사진 공동취재단

의학원 관계자는 "이 17명을 대상으로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검사'를 추가로 실시한 결과, 2명이 최소 검출한계인 0.1Gy 이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검사는 최근 3~6개월 내 피폭을 주로 반영하는 특징이 있다"며 "해당 검사에서 최소검출한계 이상으로 보고된 2명은 탈북 후 10년 이상이 경과해 탈북 이전의 피폭과는 무관한 의료목적 등의 방사선에 노출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염색체 변형이 나타난 17명 중에서 2명을 제외한 15명에게서 과거 방사선 노출로 유전자 변형이 나타난 것이다. 다만 이 15명 중 95% 신뢰 구간이 '0'을 포함하고 있는 5명의 결과는 통계적 유의성이 없어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게 의학원 측의 설명이다.

의학원 관계자는 핵실험에 의한 오염 가능성이 제기된 식수원에 대해서도 "식수원에 대한 방사능 측정값을 확보할 수 없고, 내부 피폭 관련 평가에서 검출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생물학적 성량 평가와 식수원과의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진 이틀 후인 2017년 9월 5일 오후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동해상 인근에서 이동식 제논 포집 장치로 12시간에 걸쳐 포집한 북한 핵실험 방사성 물질 시료가 헬기로 공수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진 이틀 후인 2017년 9월 5일 오후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동해상 인근에서 이동식 제논 포집 장치로 12시간에 걸쳐 포집한 북한 핵실험 방사성 물질 시료가 헬기로 공수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결국 풍계리 인근 출신 일부 탈북민에게서 염색체 변형이 발견된 것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유출된 핵종에 노출된 영향일 수 있지만, 의료방사선이나 교란요인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보공개 두고 일부 논란도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의 방사능 누출 가능성을 추적·조사해온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등 일부 대북 인권단체들은 정부가 이번 보고서에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대부분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검사의 기본 정보인 탈북민들의 탈북 시기와 거주지역 등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통일부 관계자는 "이번에 공개한 보고서는 언론공개 목적으로 개인정보 동의를 받아 공개한 자료"라면서 "연구 목적의 경우에는 별도로 개인정보 동의를 받아 관련 자료를 제공해 연구진행이 가능토록 한다는 방침을 이미 밝혔고 협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복구 나선 풍계리 핵실험장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이 복구 나선 풍계리 핵실험장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영환 TJWG 대표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검사 대상자의 탈북시기와 출신지 등을 비공개로 해 사실상 이번 검사의 적절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통일부에서 학술·연구 목적의 자료 제공에 협조하겠다고 밝힌 만큼 관련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향후 전수 조사를 통해 관련 데이터를 축적해 북한의 핵실험과 풍계리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 피폭 사이의 인과관계를 지속해서 파악해 나갈 계획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검사에서 피폭선량이 최소검출 한계 이상으로 나온 탈북민 17명에 대해선 후속 관찰이 필요하다고 보고 장기적인 건강검진 지원 등 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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