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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다른 듯 닮은꼴 한국 약식과 중국 팔보반

중앙일보

입력

찹쌀을 기본으로 팥, 대추, 은행, 해바라기 씨앗, 금귤 등 여덟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재료를 설탕과 만든 팔보반(八寶飯). 바이두백과(百度百科)

찹쌀을 기본으로 팥, 대추, 은행, 해바라기 씨앗, 금귤 등 여덟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재료를 설탕과 만든 팔보반(八寶飯). 바이두백과(百度百科)

한국과 중국의 전통 음식 중에는 서로 다른 듯 닮았고 비슷한 듯 차이 나는 음식들이 여럿 있는데 우리 약식(藥飯)과 중국 팔보반(八寶飯)도 그런 음식 중 하나다.

일단 우리 약식은 찹쌀을 씻어 밥을 짓고 꿀과 간장을 섞은 후 잣과 호두, 밤, 은행, 곶감 등을 함께 버무려 만든다. 중국 팔보반도 찹쌀을 기본으로 팥이나 율무, 연실(蓮實), 대추, 은행, 해바라기 씨앗, 금귤 등 여덟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재료를 꿀이나 설탕 등과 함께 섞어 만든다. 지리와 기후 등의 농사 조건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가 다를 뿐 찹쌀밥을 기본으로 한 별미라는 점에서 약식과 팔보반은 상당 부분 닮았다.

약식과 팔보반 모두 전통 명절 음식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지금은 둘 다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들어가는 재료가 하나같이 귀했던 만큼 특별한 날에나 먹었다.

우리나라에서 약식은 전통적으로 정월 대보름 음식이었다. 지금은 오곡밥이 대세지만 옛날 양반집, 부잣집에서는 약밥을 지어먹으며 복을 빌었는데 여기에는 배경이 있다.

팔보반 역시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춘절 음식이었다. 주로 교자 만두와 새해 떡인 니엔까오(年糕)등이 널리 알려졌지만 청나라 때 귀족과 부잣집에서는 팔보반도 별식으로 장만했다고 한다.

약식은 정월 대보름, 팔보반은 우리 설날에 해당되는 춘절 음식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옛날에는 새해맞이의 개념이 정월 초하루에서 시작해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졌으니까 약식이나 팔보반이나 새해맞이 음식이라는 점에서는 역시 닮은꼴이다.

이렇듯 서로 비슷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차이도 많다. 일단 유래와 의미가 다르다. 우리나라 약식은 많이 알려진 것처럼 『삼국유사』의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신라 소지왕이 생명을 구해 준 까마귀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음식이라고 했고 광해군 때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경주에서는 정월 보름날 까마귀에게 약밥을 먹이는 풍습이 있다고 확인했다.

정리하면 한국의 약식에는 새해를 맞아 은혜를 갚는다는 보은과 이를 통해 복을 비는 기복의 의미, 그리고 찹쌀과 꿀, 견과류로 지은 별미를 먹으며 무병장수를 바라는 소망의 뜻이 있다.

중국 춘절 음식 팔보반은 다르다. 특별한 유래는 알려진 바가 없고 다만 소원으로 가득 차 있다. 여덟 가지 보물(八寶)이라는 뜻 때문인지 혹은 팔보가 보물이 펼쳐지라는 의미의 파바오(發寶)와 발음이 같기 때문인지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팔보와 관련된 장식을 하거나 음식을 먹으며 새해를 맞는 풍속이 있었다.

여덟 가지 보물을 수놓은 연꽃 주머니 팔보하포(八寶荷包). 소후(搜狐)

여덟 가지 보물을 수놓은 연꽃 주머니 팔보하포(八寶荷包). 소후(搜狐)

청나라 말, 만주 귀족 출신의 학자인 부찰돈숭이 북경지역의 세시풍속을 모아 기록한 『연경세시기』에는 "해마다 새해가 되면 왕공대신들이 어전에서 문안을 드린다. 저마다 가슴에는 복주머니를 달고 있는데 그 인사 행렬이 그치지 않는다"고 나온다. 우리식으로 복주머니라고 표현했지만, 원문은 팔보하포(八寶荷包)로 여덟 가지 보물을 수놓은 연꽃 주머니라는 뜻으로 새해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하며 겉옷에 매다는 장식이다.

연경세시기에 기록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팔보 연꽃 복주머니를 차는 것처럼 여유 있는 집에서는 춘절에 팔보반을 지어먹는 것이 풍속이었다고 한다.

팔보반에 들어가는 각각의 재료에도 고유의 의미가 있으니 빨간 팥이나 율무에는 나쁜 기운을 쫓아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다고 하니 고대의 새해였던 동지팥죽의 풍속과도 많이 닮았다. 팔보반에 들어가는 붉은 대추(紅棗)는 대추 조(棗)의 발음이 이를 조(早)와 같은 만큼 귀한 자손을 빨리, 그리고 많이 낳아 다복하라는 뜻이 있다. 이 또한 따지고 보면 우리의 결혼 폐백 풍속에서 밤과 대추를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

연실은 씨방에 많은 숫자의 씨앗이 들어가 있으니 자손 많이 낳고 번창하라는 축원이, 은행은 껍질이 단단하고 둥근 만큼 가족이 굳건하게 뭉치고 화합하라는 단원(團圓)의 뜻이 있고 금귤은 노란 알이 황금을 상징하니 일 년 내내 재물이 쏟아져 들어오라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부귀와 영화를 추구하는 중국인의 현실적인 기복 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서로 닮은 듯 아닌 듯한 우리 정월 대보름 약식과 중국 춘절 팔보반을 간단하게 비교해 봤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또 하나 있다.

약식은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 약식이 맛있기로는 옛날부터 중국에까지 널리 소문이 나 있었던 모양이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약밥에 대해 중국인들도 좋아해서 약밥 만드는 법을 배워서 해 먹는데 고려반(高麗飯)이라 부른다고 했다.  숙종 때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온 김창업도 『연행일기』에서 중국의 약밥은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법을 모방해서 만들었는데 맛이 좋았다고 적었다. 혹시 우리 약식과 중국 팔보반 사이에 서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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