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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구 소방수' 안준호 감독 "68년 경험·지혜 쏟아붓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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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기에 빠진 한국 남자 농구의 부활을 이끌 백전노장 안준호 감독. 김경록 기자

침체기에 빠진 한국 남자 농구의 부활을 이끌 백전노장 안준호 감독. 김경록 기자

"저라고 왜 부담이 없었겠어요. 백전노장도 오랜만에 전투에 나서면 긴장합니다."

 13년 만에 코트에 복귀해 복귀전을 승리로 이끈 안준호(68) 한국 남자 농구대표팀 감독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안 감독이 이끄는 한국(세계랭킹 51위)은 지난 25일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예선 A조 2차전에서 태국(91위)을 96-62로 완파했다. 한국은 예선 두 경기 만에 첫 승, 안 감독은 대표팀 감독 데뷔승을 챙겼다.

안준호 감독은 미국 연수 중에도 한국 농구의 환골탈태를 위해 매일 같이 기도했다. 김경록 기자

안준호 감독은 미국 연수 중에도 한국 농구의 환골탈태를 위해 매일 같이 기도했다. 김경록 기자

68세 사령탑 안준호 감독은 대표팀 분위기를 바꿨다. 사진 대한민국농구협회

68세 사령탑 안준호 감독은 대표팀 분위기를 바꿨다. 사진 대한민국농구협회

 안준호 감독은 지난달 대표팀 새 사령탑으로 선임돼 13년 만에 현장 지도자로 복귀했다. 지난 27일 서울 송파구의 삼성리틀썬더스 농구장에서 만난 안 감독은 "나이가 적지 않지만 '젊은 농구'를 한다고 자부한다. 요즘 트렌드가 빠른 농구인데 공수 전환 속도를 더욱 높이겠다"고 밝혔다.

 현재 남자 농구는 최악의 침체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2진급을 내보낸 중국·일본에 밀려 역대 최악인 7위에 그쳤다. 올해는 파리올림픽 출전권도 따내지 못했다. 대한농구협회는 쇄신을 표방하면서 새 사령탑을 뽑기로 했는데 결국 베테랑 안 감독이 선임됐다. 안 감독은 2011년 서울 삼성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13년 동안 현장 경험이 없는 지도자였다. 1956년생으로 추일승(61) 전 대표팀 감독보다 일곱 살이나 많다. 팬들은 "나이 많은 감독이 구닥다리 농구를 할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안준호 감독(왼쪽)과 파트너인 서동철 코치. 뉴스1

안준호 감독(왼쪽)과 파트너인 서동철 코치. 뉴스1

안준호 감독은 "경험과 지혜를 모두 쏟아붓겠다"고 다짐했다. 김경록 기자

안준호 감독은 "경험과 지혜를 모두 쏟아붓겠다"고 다짐했다. 김경록 기자

 그러나 안 감독은 보기 좋게 이런 예상을 뒤엎었다. 그는 부임과 동시에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삼성 시절부터 '선수 보는 눈'이 탁월하고 이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안 감독은 우선 20대 초중반의 '젊은 피'를 대거 발탁해 핵심 역할을 맡겼다. 올 시즌 KBL 국내 선수 득점 1위(평균 21.5점)인 이정현(소노), '수비 스페셜리스트' 오재현(SK) 등 1999년생이 대표적이다.

2001년생 신인 박무빈(현대모비스)도 생애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동시에 김종규와 강상재(이상 DB) 등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에게 팀의 중심을 잡게 했다. 주장은 이례적으로 귀화선수 라건아(KCC)에게 맡겼다. 라건아가 이방인처럼 겉돌지 않길 바라는 안 감독의 결정이었다.

팀워크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안준호 감독. 김경록 기자

팀워크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안준호 감독. 김경록 기자

귀화선수 라건아에게 주장을 맡기는 파격적인 결정을 했다. 뉴스1

귀화선수 라건아에게 주장을 맡기는 파격적인 결정을 했다. 뉴스1

 한층 젊어진 대표팀의 슬로건은 '원 팀 코리아(One Team Korea)'로 정했다. 안 감독은 "국가대표로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져달라고 선수들에 당부했다. 팀워크가 무너지면 좋은 실력이 나올 수 없다. '최고의 선수들'이 나선 미국 농구 드림팀은 3위, '최고의 팀'이었던 아르헨티나는 금을 딴 2004 아테네올림픽이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휴식 시간엔 아빠와 아들처럼 편하게 대화하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안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이전과 다른 팀으로 변모했다. 예선 첫 경기였던 호주 원정에서 접전 끝에 71-85로 아쉽게 졌다. 호주는 세계 4위로 아시아 최강팀이다. 완패가 예상됐지만, 한국은 오히려 2쿼터 종료 3분여 전까지 33-20, 13점 차로 앞섰다. 한국의 저력에 호주 선수들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주장 라건아는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맹활약을 펼쳤다. 이어 태국전에서 한국이 완승을 하자 분위기는 싹 바뀌었다. 전문가와 팬 모두 안 감독의 지도력에 대해 호평했다.

선수들을 격려하는 안준호 감독(오른쪽). 뉴스1

선수들을 격려하는 안준호 감독(오른쪽). 뉴스1

경기 중 지시를 내리는 안준호 감독. 뉴스1

경기 중 지시를 내리는 안준호 감독. 뉴스1

안 감독은 "'젊은 피'의 가세로 팀 분위기가 역동적으로 변했다. 동기부여와 경쟁 체제가 구축됐다"고 흡족해했다. 그는 이어 "최근 미국서 연수했는데, 한국 농구를 보며 매일 같이 기도했다. 지금 한국 농구는 '침체기'라는 말도 사치다. '밑바닥'이란 표현이 맞다.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도약 못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 감독 시절부터 '사자성어 인터뷰'로 유명한 안 감독에게 앞으로의 각오를 사자성어로 요청했다. 안 감독은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 않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이란 말처럼 내 농구인생을 통해 쌓은 경험과 지혜를 대표팀에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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