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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가 제조, 메타가 SW…한국 오는 저커버그, 콜라보 속도 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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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지난해 9월 미국 먼로파크의 메타 본사에서 열린 '메타 커넥트' 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지난해 9월 미국 먼로파크의 메타 본사에서 열린 '메타 커넥트' 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LG전자와 메타(페이스북 운영사)의 MR(혼합현실) 기기 협력이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방한으로 속도를 낼 전망이다. 그간 흑역사를 거듭한 ‘빅테크 소프트웨어(SW)와 한국 하드웨어(HW)’의 만남이 이번에는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업계에 따르면, 저커버그 CEO는 오는 28일께 방한해 조주완 LG전자 대표와 양사의 MR 헤드셋 개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다만 저커버그 CEO가 윤석열 대통령 접견도 요청한 터라, 일정 조율 중이라고 한다. LG전자 측은 “이번 면담에 LG디스플레이·LG이노텍 등 MR 기기에 부품을 공급할 가능성 있는 계열사 대표도 동석할 지 등 실무 논의가 오가는 중”이라고 중앙일보에 확인했다. 양사는 2025년에 최신 MR 헤드셋을 내놓기로 지난해 협약했는데, 새 먹거리를 찾는 LG전자와 메타버스 우물을 10년간 파온 메타의 필요가 맞아떨어졌다.

빅테크의 韓제조 협업, 흑역사 왜

구글·메타 등 강력한 소프트웨어를 보유했지만 기기 제조 경험이 거의 없는 빅테크는 그간 삼성·LG 등 한국 제조사와 수 차례 협력을 시도해왔다. 소프트웨어(SW)와 하드웨어(HW)를 자체 조달하며 강력한 생태계를 이룬 애플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애플은 운영체제(iOS)·앱스토어, PC·스마트폰·태블릿, 여기 들어가는 칩을 자체 설계하고 TSMC·폭스콘 등 대만 제조사를 통해 HW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미국 빅테크 SW와 한국 HW 간 결합 시도는 파급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삼성전자는 2010~2011년 구글과 함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넥서스S’와 ‘갤럭시 넥서스’를, 2013~2019년에는 메타와 함께 VR 기기 ‘기어VR’을 내놨으나 성과는 부진했다. 이후 구글은 기기 제조를 위해 모토로라를 인수했다가 되팔았고, 지금은 애플처럼 폭스콘을 통해 스마트폰 픽셀 시리즈를 생산한다.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메타 AI 연구소 FAIR 설립 10주년 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메타의 MR 헤드셋 퀘스트3를 쓰고 실시간 번역을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메타 AI 연구소 FAIR 설립 10주년 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메타의 MR 헤드셋 퀘스트3를 쓰고 실시간 번역을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업계에서는 이제까지 합작 제품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로 ^마케팅·전략 등 결정권자가 불분명하고 ^위험 감수 등 책임 주체가 뚜렷하지 않으며 ^VR 기기의 경우 시장이 무르익지 않았던 점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익명을 원한 빅테크 기업 출신의 교수는 “SW와 HW가 최적화되려면 양사의 긴밀한 기술협력은 물론 시장 전략도 함께 펼쳐야 하는데, 이전에는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MR에선 '판 깨기' 될까

가상현실(VR)·AR(증강현실)·XR(확장현실)이라고도 부르는 이 시장은 10년 이상 ‘미래 시장’에 머물러 있다. 애플이 지난 2일 출시한 MR 헤드셋 ‘비전 프로’는 사전 구매 예약 20만 대를 돌파했으나 비싼 가격(3499달러, 약 466만원)과 무게 등의 한계로 환불이 쏟아져, 애플이 내년 출하량을 100만대에서 40만대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소니와 지멘스는 지난 1월소비자가전 전시회(CES) 2024에서 공동 개발한 VR 헤드마운트(HDM)를 공개하며, 개인용 아닌 산업용이라고 못 박았다.

지멘스와 소니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 전시회 CES 2024에서 양사가 함께 개발한 산업용 VR 헤드셋 기기를 공개했다. 왼쪽은 세드릭 니케 지멘스 디지털산업부 CEO, 오른쪽은 요시노리 마츠모토 소니 수석부사장. 로이터=연합뉴스

지멘스와 소니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 전시회 CES 2024에서 양사가 함께 개발한 산업용 VR 헤드셋 기기를 공개했다. 왼쪽은 세드릭 니케 지멘스 디지털산업부 CEO, 오른쪽은 요시노리 마츠모토 소니 수석부사장. 로이터=연합뉴스

그럼에도 MR은 모바일을 잇는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으로서 의미가 크다. 인간과 컴퓨터는 PC 시대에 마우스 ‘클릭 앤 드래그(drag)’로, 모바일 시대에는 화면 ‘터치 앤 스와이프(swipe)’로 소통했다. 메타는 이 상호작용을 안경·헤드셋같이 몸에 착용하는 기기를 통한 ‘시선 추적과 동작 인식’으로 옮겨오려 한다. PC를 지배한 마이크로소프트(MS), 모바일을 지배한 구글·애플에 이어, 그 다음 세대의 컴퓨팅을 주도하기 위해서다. 메타가 AI 연구소인 FAIR를 2013년에, 미래 컴퓨팅 연구소인 리얼리티랩스를 2014년 설립해 투자를 이어온 한편 MR 헤드셋 퀘스트를 꾸준히 출시하는 배경이다.

디스플레이 업체는 속도 고민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에  집중하는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에 MR 기기는 새로운 시장이다. LGD는 이미 애플 비전 프로의 외관 디스플레이를 공급하고 있다. 비전 프로의 내부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는 소니가 공급하는데, 3499달러 기깃값 중 700달러가 고스란히 마이크로 OLED 값이라고 전해진다. 이번 메타·LG의 협력에서, MR 기기에 들어가는 고가의 부품을 LGD와 LG이노텍이 얼마나 공급할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지난 2일 애플의 MR 헤드셋 비전 프로가 출시되자 뉴욕 애플 스토어에서 소비자들이 시착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일 애플의 MR 헤드셋 비전 프로가 출시되자 뉴욕 애플 스토어에서 소비자들이 시착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러나 TV나 태블릿용 OLED에 비해 MR 기기용 시장은 수년째 답보 상태라, 한국 부품 제조사들이 투자 우선 순위에 두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초고해상도 화면을 전달하는 마이크로 OLED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제조하기 때문에, 기존 OLED와 차원이 다른 기술이 요구되며 반도체 회사와 협력도 필요하다. 소니는 TSMC와, LG전자는 SK하이닉스와 협력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선두 주자인 소니도 MR용 마이크로 OLED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춘 적은 없어, 아직 확실한 승자가 없는 상황”이라며 “메타가 기기 생산량 규모를 보장할 수 있어야, 디스플레이 업체들도 투자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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