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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이 거대한 기계가 됐다” 리움의 파격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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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필립 파레노(아래 사진)의 세계엔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릿하다. 그는 각 전시 공간을 색채로 읽고, 소리로 풍경을 연출했다. [사진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아래 사진)의 세계엔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릿하다. 그는 각 전시 공간을 색채로 읽고, 소리로 풍경을 연출했다. [사진 리움미술관]

이번엔 끊임없이 뭔가 움직이고 소음이 나는 전시다. 미술관 바깥에서 아래위로 움직이는 기계 타워와 그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친근하기도 하고 낯선 풍경이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프랑스 출신의 미술가 필립 파레노(59)의 개인전 ‘보이스(VOICE)’는 그 자체가 거대한 설치물이다. 언뜻 보면 작품이 각 공간에 나뉘어 있지만 실상은 인공지능을 통해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연결돼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데이터 연동, 인공지능, 디지털 멀티플렉스(DMX) 등 첨단 기술을 다 끌어들여 전시 자체를 거대한 자동 기계로 변신시켰다. 리움에서 열린 최대 규모의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1990년대 초기작부터 올해 신작까지 망라하며 ‘청각적 풍경’에 진심인 파레노의 작품 40여 점을 소개한다.

파레노는 관객과 예술의 상호작용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온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26일 기자 간담회에서 “파레노의 전시는 ‘보는’ 전시가 아니다. 관람객이 그 안에서 시간을 경험해야 하는 ‘공연’ 같은 전시”라고 소개했다. 이 전시가 공연이라면 그것은 야외에 설치된 대형 타워 ‘막(膜)’에서 시작된다. ‘막’은 소리 내는 기계 타워 정도로 보이지만 사실상 그 자체가 거대한 센서 기능을 탑재한 인공지능이자 컨트롤 타워다. 이것은 밖의 기온과 습도 풍량, 소음과 대기오염, 미세한 진동까지 모든 요소를 수집하고 그 데이터는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사운드로 여러 작품을 작동시킨다.

필립 파레노

필립 파레노

전시회 제목이 ‘보이스’이듯 전시 전반에는 소리 비중이 크다. 이번 전시에선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가 인공지능을 통해 새로운 목소리로 탄생했다. 언어학자가 발명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한 인공지능이 계속 목소리를 내며 전시장 안에 떠돈다. 지금까지 사용한 센서들을 통합하며 만든 캐릭터(존재·인공지능)에게 인간의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한다. 장 누벨이 설계한 전시공간 M2의 B1은 주황빛 조명으로 그 자체가 거대한 연극 무대처럼 연출된 것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이 낯선 전시에 대해 관람객의 반응은 엇갈릴 듯하다. 어떤 관람객은 영화관으로 변신한 블랙박스에서 프란시스 고야의 철거된 집을 보여주는 영상 작품 ‘귀머거리의 집’ 등을 보며 작품 특유의 이미지와 사운드에 압도되는 감동을 경험할 수 있다. 반면 어떤 관객은 깜빡이며 움직이는 조명이 있는 그라운드갤러리 전시장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서 있을 수도 있다.

파레노의 작품이 낯설게 여겨지는 이유는 더 있다. 전시 공간에 나온 것들이 모두 ‘미완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의 야심작 중 하나인 거대한 반딧불이 설치 작품은 관람객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도 멈춰져 있고 불도 꺼져 있다. 이 투명 LED 작품은 관람객이 작품을 보며 돌고, 주변에 앉고 움직일 때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낸다. 김 부관장은 “파레노는 전통적인 전시 방식을 깨뜨리기 위해 ‘낯선 경험’을 선사하는 예술가”라며 “그의 작품들은 작품과 관람객, 그리고 외부 환경이 서로 작용할 때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며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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