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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하나가 거대한 설치" 리움이 또 선보이는 새로운 경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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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 '보이스' 전시 전경. '차양' 연작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홍철기 촬영. [사진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보이스' 전시 전경. '차양' 연작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홍철기 촬영. [사진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전시 전경. 이름도 역할도 없는 밀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안리'에 목소리를 부여한 영상작품 '세상 밖 어디든'(2000)이 정면에 보인다. 이현준 촬영. [사진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전시 전경. 이름도 역할도 없는 밀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안리'에 목소리를 부여한 영상작품 '세상 밖 어디든'(2000)이 정면에 보인다. 이현준 촬영. [사진 리움미술관]

리움미술관 야외 데크에 설치된 '막'(2024). 홍철기 촬영. 탑은 센서를 통해 외부의 소음과 자극을 흡수해 데이터를 수집한 뒤 이를 소리로 변조해 내보낸다. [사진 리움미술관]

리움미술관 야외 데크에 설치된 '막'(2024). 홍철기 촬영. 탑은 센서를 통해 외부의 소음과 자극을 흡수해 데이터를 수집한 뒤 이를 소리로 변조해 내보낸다. [사진 리움미술관]

이번엔 끊임없이 뭔가 움직이고 소음이 나는 전시다. 미술관 바깥에서 아래위로 움직이는 기계 타워와 그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필립 파레노 개인전 'VOICE' #28일개막 7월 7일까지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프랑스 출신의 미술가 필립 파레노(59)의 개인전 '보이스(VOICE)'는 그 자체가 거대한 설치물이다. 언뜻 보면 작품이 각 공간에 나뉘어 있지만 실상은 인공지능을 통해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연결돼 함께 숨 쉬고 있다. 작업에 영상,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데이터 연동, 인공지능, 디지털 멀티플렉스(DMX) 등 첨단 기술을 다 끌어들여 전시 자체를 거대한 자동 기계로 변신시켰다.

리움미술관은 이 작가를 위해 전체 공간 6개 장소를 다 내줬다. 리움에서 열린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다.전시는 1990년대 초기작부터 올해 신작까지 망라하며 '청각적 풍경'에 진심인 파레노 작품 40여 점을 소개한다.

'보는' 전시 아니고 '공연'같은 전시 

파레노는 관객과 예술의 상호작용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온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26일 기자 간담회에서 "파레노의 전시는 '보는' 전시가 아니다. 관람객이 그 안에서 시간을 경험해야 하는 '공연'같은 전시"라고 소개했다. 이 전시가 공연이라면 그것은 야외에 설치된 대형 타워 '막(膜)'에서 시작된다.

'막'은 소리 내는 기계 타워 정도로 보이지만 사실상 그 자체가 거대한 센서 기능을 탑재한 인공지능이자 컨트롤 타워다. 이것은 밖의 기온과 습도 풍량, 소음과 대기오염, 미세한 진동까지 모든 요소를 수집하고 그 데이터는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사운드 등으로 여러 작품을 작동시킨다.

외부에 센서를 단 이유는. 
그동안 해온 전시를 돌아보니 오래 전부터 전시장 밖에 마이크나 기상 측정 도구 등 다양한 센서를 배치해 왔더라. 전시장 밖의 정보를 안으로 제공하고 그것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게 만들고 싶었다. 
외부 데이터가 왜 그리 중요한가. 
나는 미술관이 항상 닫힌 공간이라고 느껴왔다. 외부 환경을 반응하는 데이터가 닫힌 공간에 틈을 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미술관은 보통 외부 세계를 향해 등을 돌리고 폐쇄된 공간에 비싼 작품을 진열해 보여주지 않나. 그런 점에서 미술관은 일종의 막으로 둘러싸인 '버블'과 같은 공간이다. 난 그 막에 구멍을 내고 싶었다. 

이번 전시에선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가 인공지능을 통해 새로운 목소리로 탄생했다. 인공지능은 언어학자가 발명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며 계속 목소리를 내며 전시장 안에 떠돈다.

전시 제목이 '보이스'다. 전시에 소리 비중이 큰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 사용한 센서들을 통합하며 만든 캐릭터(존재·인공지능)에게 인간의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은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을 예민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다. 바깥의 환경을 감지하고 그가 안으로 전송하는 신호와 데이터를 인공지능 언어로 구현해 세계의 일부로 존재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필립 파레노 전시장 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설치 작품 '막'. [사진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전시장 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설치 작품 '막'. [사진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내 방은 또 다른 어항'(2022), 물고기 풍선이 전시 공간을 떠다니고 있다. [사진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내 방은 또 다른 어항'(2022), 물고기 풍선이 전시 공간을 떠다니고 있다. [사진 리움미술관]

장 누벨이 설계한 전시공간 M2의 B1은 주황빛 조명으로 그 자체가 거대한 연극 무대처럼 연출됐다. 전시 공간 전체가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태양이 사라지고 지구의 해질 무렵 석양 빛으로 물든 상태를 시각화한 설치 작품('석양빛 만, 가브리엘 타드, 지저 인간:미래 역사의 단편')의 힘이다. 이곳엔 물고기 모양 풍선('내 방은 또 다른 어항')이 떠나니며 관람객과 뒤섞인다. 김 부관장은 "파레노는 실존하는 것과 상상하는 것을 함께 드러내 보인다. 이 전시 공간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상상과 현실이 중첩돼 있음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람객과 잘 통할까 

필립 파레노. 그는 "미술은 항상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외부 환경, 관람객과 교감할 때 비로소 작품은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그는 "미술은 항상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외부 환경, 관람객과 교감할 때 비로소 작품은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리움미술관]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전시 전경. [뉴시스]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전시 전경. [뉴시스]

이 전시에 대해 관람객의 반응은 엇갈릴 듯하다. 어떤 관람객은 영화관으로 변신한 블랙박스에서 영상 작품('귀머거리의 집')을 보며 작가 특유의 집요한 시선과 사운드에 압도되는 감동을 경험할 듯하다. 반면 어떤 관객은 여기 저기 모든 조명이 깜빡이며 움직이는 그라운드갤러리 전시장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서 있을 수 있다.

파레노의 작품이 낯설게 여겨지는 이유는 더 있다. 전시에 나온 작품 대부분이 대체적으로 '미완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의 야심작 중 하나인 거대한 반딧불이 설치 작품은 관람객이 움직이지 않으면 작품도 멈춰져 있고 불도 꺼져 있다. 리듬감 있게 반짝이도록 설치된 이 투명 LED 작품은 관람객이 작품을 보며 돌고, 주변에 앉고 움직일 때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낸다. 김 부관장은 "파레노는 전통적인 전시 방식을 깨뜨리기 위해 '낯선 경험'을 선사하는 예술가"라며 "그의 작품들은 작품과 관람객, 그리고 외부 환경이 서로 작용할 때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며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했다.

'철학자' 같은 파레노는 최근 리움미술관이 선보여온 '악동 예술가'들의 맥락 위에 있다. 리움은 지난해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에 이어 국내 중견 작가 김범 개인전을 통해 실험적인 아이디어로 '작품'과 '전시 방식'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온 작가들을 소개한 바 있다. 관람객 반응은 뜨거웠다. 이번에도 그 열기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파레노는 "내게 미술은 언제나 미완성의 상태에 있는 것"이라며 "나는 그 '미완성'이라는 요소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작가로서 하는 일은 어떤 색상 혹은 공간의 소리와 같은 요소들을 통해서 전시를 연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전시는 매우 연약한 구조다. 모두 몇 달이 지나고 나면 바스러지고 사라질 것이다. 전시란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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