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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 기업들이 바뀌겠나" 벨류업에 아쉬움, 코스피 하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와우(Wow)’ 포인트나 킬러 콘텐트는 없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
“수십년간 (주주환원을) 안 하던 기업들이 과연 이 정도로 바뀔 지 의문이 든다.” (임성윤 돌턴 선임연구원)

한 달 동안 시장을 뜨겁게 달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26일 베일을 벗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아쉽다’였다. 정부는 기업의 ‘자율’과 ‘스스로’를 강조했지만, 시장의 평가는 “패널티가 없는 것은 물론 인센티브도 부족했다”로 모아졌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20.62포인트(0.77%) 하락한 2647.08을 나타내고 있다. 뉴스1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20.62포인트(0.77%) 하락한 2647.08을 나타내고 있다. 뉴스1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0.77% 하락한 2647.08에 장을 마감했다. 코스피는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들에 대한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며 장중 2620선까지 밀리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금융위원회의 밸류업 정책 도입 발표 이후 단숨에 2600선을 돌파한 것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시가총액 상위권 종목 중에선 그간 밸류업 정책 수혜주로 구분되던 종목들이 일제히 하락했다.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2.05%, 3.21%씩 내렸고, 삼성물산(-4.81%) KB금융(-5.02%) 신한지주(-4.50%) 삼성생명(-3.56%) 하나금융지주(-5.94%) LG(-7.49%) SK(-6.76%) 등도 크게 하락했다. 외국인은 오전까지 순매도세를 기록했으나 오후에는 다시 순매수로 돌아섰다. 이날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188억원을 사들인 반면, 기관 투자자와 개인은 각각 861억원과 480억원을 팔았다.

김지영 베어링자산운용 매니저는 “시장에선 (주주환원이 미흡한 기업들에 대한)강력한 규제들을 기대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정책에 주가가 소폭 빠졌다”고 평가했다.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의 수립·이행·소통 지원 ▶기업가치 우수기업에 대한 시장평가 및 투자 유도 ▶전담 지원체계 구축 등 3가지 틀을 바탕으로 추진된다.

시장 참여자들은 정책 방향성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김기백 한국투자신탁운용 중소가치팀 팀장은 “시장이 ‘저PBR 테마주’로 움직인 경향이 있는데 핵심은 자기자본이익률(ROE)개선과 주주환원책이란 걸 정부가 정확히 짚었다”고 말했다. 김지영 매니저도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분위기가 조성된 건 무시할 수 없다”며 “기업들이 하나 둘씩 동참하고 모범사례가 시장에 회자되면 긍정적인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밸류업 정책이 ‘일회성 주주환원’이나 ‘단기 테마’에 그치지 않고 장기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다. 중장기적인 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광범위한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밸류업 정책 이행을 기업 자율에 맡겨 놓은 데 비해 인센티브는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의도적으로 공부를 안 하던 학생들이 강한 인센티브나 패널티 없이 공부를 갑자기 열심히 할지 의문”이라며 “구체적인 세제 혜택 내용이나 강제성 있는 조항들이 전혀 없어 아쉽다”고 지적했다.

김기백 팀장도 “기업 입장에선 자사주 소각 시 법인세 혜택, 투자자 입장에서는 배당 분리과세 등이 강력한 인세티브인데 언급이 없었다. 시장이 놀랄 만한 큰 정책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정책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공통적이다. 일례로 정부는 거래소 홈페이지에 주요 투자지표 비교표를 게시해 투자판단에 널리 활용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선 “이미 애널리스트 보고서나 웹사이트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다”, “단순히 공시만 해서는 별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정부의 ‘밸류업 독려 정책’도 아쉽다는 평가다. 정부는 상장사들의 기업가치 제고노력을 종합 평가해 매년 5월 기업 밸류업 표창을 수여하고, 해당 기업에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와 법인세 공제‧감면 컨설팅 우대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표창의 기준으로 목표설정의 적절성, 계획 수립의 충실도 등을 언급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향후 추가 이익 및 현금 창출을 위한 노력에 대한 언급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선 보다 강한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준서 동국대학고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에선 PBR이 1배가 안 되는 기업이 상속·증여할 때 과표를 시가가 아닌 장부가로 산정해 패널티를 준다”며 “특정 기업의 PBR이 해당 산업 평균보다 높으면 상속·증여세를 감면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중견 이하의 기업이 밸류업 정책에 참여하는 게 중요한데, 자사주 소각시 법인세 혜택, 배당 분리과세 등 실질적이고 강력한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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