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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기업] “반도체 기술 초격차의 관건은 인재 확보에 달려” …한·네덜란드 첫 교육 프로그램 스타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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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KIAT ‘한-네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 성황


반도체 분야 글로벌 현업 전문가의 특강
양국 학생들 토론하며 팀프로젝트 수행

정부, 배터리 분야 등 8개 학교 추가 선정
2028년까지 5년간 500여명에 교육 지원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AI 혁명을 이끌어가는 반도체의 전략적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유럽·일본 등은 한 번 주도권을 놓치면 밀려난다는 위기의식으로 미래 반도체 시장 선점을 위한 대규모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같은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핵심 요소는 바로 ‘인재’다. 반도체는 고도의 기술을 집약해 완성하는 첨단 산업으로, 연구개발(R&D)과 제조 모두 ‘사람’이 완성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럽의 대표적인 반도체 강국인 네덜란드와 손잡고 올해부터 양국 공동으로 반도체 인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 19~23일 네덜란드 에인트호벤과 벨기에 루벤 등지에서 ‘한-네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지난 19일 네덜란드 아인트호벤공대에서 열린 ‘한-네 첨단 반도체 아 카데미’ 개회식에서 산업부 이용필 첨단산업 정책관(왼쪽 둘째), 실비아 레나에르츠 에인트호벤공대 학장(왼쪽 셋째), 피터 베닝크 ASML 회장(왼쪽 넷째), 최형찬 주네덜란드 대사(오른쪽 둘째) 등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지난 19일 네덜란드 아인트호벤공대에서 열린 ‘한-네 첨단 반도체 아 카데미’ 개회식에서 산업부 이용필 첨단산업 정책관(왼쪽 둘째), 실비아 레나에르츠 에인트호벤공대 학장(왼쪽 셋째), 피터 베닝크 ASML 회장(왼쪽 넷째), 최형찬 주네덜란드 대사(오른쪽 둘째) 등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과 네덜란드 빌런 알렉산더르 국왕의 임석 하에 ‘한-네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 운영을 위한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과 네덜란드 빌런 알렉산더르 국왕의 임석 하에 ‘한-네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 운영을 위한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한-네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에 참여한 학생들과 관계 인사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한-네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에 참여한 학생들과 관계 인사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국내 석박사생 50여 명 네덜란드 ASML 기업 방문

지난 20일, 반도체를 전공하는 국내 석박사생 50여 명이 네덜란드 벨트호벤에 있는 반도체 장비 제조기업 ASML을 찾았다. ASML은 반도체를 만드는 소재인 웨이퍼 위에 빛을 쏴서 회로를 그려주는 노광 장비를 만드는 회사다. 웨이퍼 위에 회로를 미세하게 새길수록 웨이퍼 한 장당 생산되는 반도체 수가 많아진다. 반도체 공정이 고도화될수록 얇게 회로를 새기는 기술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ASML은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슈퍼 을(乙)’로 일컬어진다. 최고 사양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만들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EUV 노광 장비는 수천 억원에 이를 정도로 고가인 데다 연간 생산량이 약 50대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ASML이 어느 제조사에 장비를 먼저 판매하는지가 반도체 업계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곤 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향방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장소’인 셈이다. 이곳을 이번에 국내 석박사생들이 찾았다.

한국 학생들의 방문은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 한국-네덜란드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 교육 프로그램의 일부로 이뤄졌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네덜란드 통상개발협력부는 지난해 12월 양국 정상 임석 하에 ‘한-네덜란드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 신설에 합의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반도체를 전공하는 양국의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 반도체 기업 연구진 중에서 선발한 인재들을 대상으로 현장 위주의 집중 교육 과정을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교육 과정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네덜란드 에인트호벤공대와 ASML 등이 맡아서 운영한다. 오는 2028년까지 5년간 500여명이 참여하게 된다.

첨단 반도체 최신 공정 기술 등 다양한 특강 진행

프로그램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지난 19일 네덜란드 아인트호벤공대에서 열린 아카데미 개회식에는 피터 베닝크(사진) ASML 회장과 실비아 레나에르츠 에인트호벤공대 학장 등 100여 명의 양국 관계자들이 모여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이번 교육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울산과학기술원(UNIST)·성균관대학교 등 3개교의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들 50명과 에인트호벤공대(TU/e) 학생 10명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교육 기간에 첨단 반도체 최신 공정 기술(제로엔 보에텐 아인트호벤공대 교수)과 미래 반도체 소재 혁신(최성율 KAIST 교수)을 주제로 한 특강을 비롯해 EUV 장비에 적용되는 기술, 웨이퍼 표면 특성 제어 교육, 모빌리티 반도체 동향과 설계 등에 대한 강의를 수강했다.

학생들이 아카데미 과정 중에 방문하는 기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ASM은 반도체 웨이퍼 위에 원자를 얇은 막으로 쌓아올리는 증착 기술을 보유한 장비 기업이며, IMEC은 벨기에 루벤에 있는 나노 분야 비영리 연구기관이다. 학생들은 IMEC 클린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테스트베드를 견학했다. NXP는 세계 자동차 반도체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20%를 자랑하는 기업이다. 반도체 분야 글로벌 전문가인 현업 관계자들이 특강에 나섰는데, 강사진만 7개 기관 20여명에 달했다.

숨가쁜 강의와 견학이 끝난 뒤에는 교육생들끼리 팀을 이뤄 기업이 제시한 문제를 해결하는 솔버톤(Solve-a-thon, Solve+Marathon의 합성어로 한정된 시간 내에 특정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경진대회)에 참여했다. 이은수 학생(성균관대)은 “다른 나라 장비와 연구시설을 보고 다른 나라 학생들과 교류하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 연구를 해나가는 데 있어서 큰 영감을 받았다”며, “앞으로도 이런 국제적인 교류의 장이 많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김웅진 학생(KAIST)은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반도체에 대한 열정에 불을 지펴주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는 교육이었다”며, “하나도 빠짐없이 흡수하고 배워서 앞으로 연구의 밑거름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혁 학생(UNIST)은 “5일간 팀프로젝트를 네덜란드 학생들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유대감을 쌓았다”며, “추후 현지 학생들과 실제 협력해 반도체 분야 연구를 함께 수행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아카데미 과정을 동행한 유승협 KAIST 교수는 “양국 협조가 잘돼 알차고 매력적인 프로그램으로 꾸려졌다”며, “양국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토론하며 팀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니 이번 교육이 한-네 반도체 협력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욥 반 완루이(Joep van Wanrooij) 학생(아인트호벤공대)은 “동일한 분야를 연구하는 타국 학생들과 소통하며 서로의 연구를 비교하는 경험 자체가 정말 소중하다”며, “힘든 박사 과정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값진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번 아카데미를 기획한 네덜란드 측 총괄 담당자인 제로엔 보에텐 단장은 “양국의 인재들이 학술적 교류뿐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가까워져 미래에 서로 협력해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고 말했다.

대학당 30억원씩 5년간 150억원 지원

반도체 인재 부족 현상은 각국 정부가 큰 과제로 여길 만큼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도 국가첨단전략산업 육성에 필요한 인재 양성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첨단 전략산업 특성화 대학원을 선정해 대학당 30억원씩 5년간 총 150억원 내외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분야 3개교를 선정한 데 이어 올해는 배터리와 바이오, 디스플레이 분야로까지 확대해 4개 분야 8개 학교를 추가로 선정할 예정이다.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에서는 설계·시스템, 소재·소자, 장비·부품, 패키징·테스트 등 대학별로 특화된 분야별로 선별된 인력을 육성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을 운영 중인 각 학교에 이번 교육과 연계해 공정-소재-장비 교육을 추가로 개설해 강화하기로 했다.

개회식에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 이용필 첨단산업정책관은 “반도체 기술 초격차의 관건은 우수한 인재 확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산업 현장에서 원하는 우수한 인재들이 다양한 특화 교육 과정을 거쳐 역량을 기를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과정 운영을 맡은 민병주 KIAT 원장은 “앞으로 네덜란드 학생과 연구자들이 한국에 와서 기업 현장과 장비를 체험하고, 칩 설계와 제작, 공동 프로젝트 추진 등 다방면에서 지속해서 교류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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