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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상 후보 이금이 "발밑만 보며 사는 한국 청소년 안타까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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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아동문학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최종 후보 6인에 한국인이 이름을 올렸다. 1984년 단편 동화 『영구랑 흑구랑』으로 데뷔해 가족 결손, 아동 성폭력 등 청소년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 세계로 주목받아 온 이금이(62) 작가가 그 주인공.

이금이 작가가 지난 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금이 작가는 한국인 중 처음으로 안데르센상 글 작가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금이 작가가 지난 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금이 작가는 한국인 중 처음으로 안데르센상 글 작가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안데르센상은 덴마크 동화작가 한스 안데르센(1805~1875)을 기려 1956년 제정된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이다. 2년마다 글·그림 작가를 한 명씩 선정해 시상한다. 한국인으로는 이수지 작가가 2022년 안데르센상 그림 작가상을 받았다. 글 작가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은 이금이가 처음이다. 최종 수상자 발표(4월 8일)를 기다리고 있는 이금이를 지난 8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데뷔 40년 차인데도 작품이 확장하는 느낌이다. 
청소년 소설 작가로서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쓰다 보니 작품의 무대가 학교·학원·집으로 한정되더라. 그런 점이 답답해서 시공간을 넓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한국 청소년들은 발 밑만 보면서 살지 않나. 코 앞의 입시만 생각하면서. 독자들에게도 다른 나라, 다른 시절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고 더 넓은 세상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일제 강점기에 하와이로 시집간 소녀들의 이야기(알로하 나의 엄마들)이나 일본·러시아·미국을 넘나들며 운명을 개척한 식민지 여성들의 이야기(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가 그렇게 나왔다. 
하와이로 이주한 사진 신부들.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약 1000명의 한국 여성이 '사진 중매'를 통해 하와이로 이주했다. 사진 하와이주립대학교 한국학센터

하와이로 이주한 사진 신부들.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약 1000명의 한국 여성이 '사진 중매'를 통해 하와이로 이주했다. 사진 하와이주립대학교 한국학센터

가혹한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의 삶이 뭉클하다. 
배경은 일제 강점기지만 민족·이념 같은 거창한 주제보다 그 시절을 살아냈던 젊은 여자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역사가 기억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끝까지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세속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삶이라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한 장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썼다고 들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쓰면서 역사 공부를 하던 중 '사진 신부'에 대해 알게 됐다. 그 시절 많은 한국 남성이 사탕수수 농장에 취업해 하와이로 떠났는데, 대부분이 '사진 중매'를 통해 결혼했다. 직접 한국에 건너와 선을 볼 수 없으니 사진 한 장과 대강의 정보만 교환한 후 여성이 하와이로 이주하는 식이었다. 남자 사진 한 장만 믿고 망망대해를 건너는 열여섯 소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설이 됐다. 
디아스포라 소설인 만큼 해외 독자들의 반응도 좋을 것 같다.  
이민자의 삶, 소수자의 삶을 다룬 디아스포라 소설은 영미권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소설 장르가 된 것 같다. 특히 미국은 이민자들로 시작된 나라여서인지 디아스포라 소설에 관심이 많고 한국 역사에서도 보편성을 느끼는 것 같다. 
이금이 대표작 『알로하, 나의 엄마들』 표지. 사진 창비

이금이 대표작 『알로하, 나의 엄마들』 표지. 사진 창비

지금은 어떤 작품을 쓰고 있나.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나『알로하 나의 엄마들』 같은 일제 강점기 한인 여성들의 디아스포라를 더 다루고 싶다. 사할린에 강제 이주해 살아간 동포들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자료 공부를 하고 있고 올해 안에 쓰는 게 목표다. 
어떻게 아동·청소년 문학 작가 작가가 됐나.
어릴 때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작가를 꿈꿨는데, 내 마음속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전부 아이들 이야기더라. 처음부터 '동화를 쓸 거야' 생각했다기보다 쓰다 보니 '나는 아이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깨달았다고 할까. 어린 시절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준 것이 동화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화를 쓰게 됐다. 또 내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따라 청소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청소년 소설이지만 성인 독자층도 상당한데.  
1차 독자를 어린이·청소년으로 생각하고 글을 쓰지만, 성인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모두 그 시기를 지나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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