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월간중앙] 재계 패트롤 |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흔들리는 리더십’

중앙일보

입력

축구협회장 사퇴 여론에, 연이은 중대재해사고까지
클린스만 감독 영입 나섰던 정 회장… ‘아시안컵 참사’에 “사퇴하라” 여론 비등
사업장에선 중대재해로 4년 동안 16명 사망… 2월 초에 평택 현장서 사망 사고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겸 대한축구협회장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 카드를 내놓았지만 ‘동반 사퇴’ 여론이 커지고 있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겸 대한축구협회장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 카드를 내놓았지만 ‘동반 사퇴’ 여론이 커지고 있다.

새해 들어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장을 10년 넘게 맡고 있는 정 회장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대회 기간 중 한국 축구 대표팀의 경기력 부진과 함께 선수단 내 갈등이 있었던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거센 책임론에 휩싸여 있다. 축구팬들 사이에선 ‘클린스만 감독 경질’에 그치지 않고 정 회장의 대한축구협회장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축구는 카타르 아시안컵 대회에서 4강에 진입하는 성적을 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 등 유럽 무대에서도 손꼽히는 선수들이 포진했지만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전술 부재와 조직력 미비로 경기 때마다 졸전을 거듭했다. 심지어 준결승전에서는 역대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요르단에 2대0으로 참패해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한국에서 대회를 복기하겠다던 클린스만은 휴식을 위해 집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고, 대한축구협회 수장인 정몽규 회장도 두문불출하고 있다. 뒤늦게 주장 손흥민과 이강민 등 선수들 간 불화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감독 경질’을 넘어서 ‘감독-협회장 동반 사퇴’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시안컵 후폭풍이 점점 거세지는데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HDC현대산업개발 공사 현장에서 또다시 사망사고가 생기면서 ‘죽음의 사업장’ 오명이 여전하다. 지난 1일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는 경기 평택의 주거용 오피스텔 건설 현장에서 건설자재가 근로자들을 덮쳐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해 9월 국민의힘 김학용 의원실이 국토안전관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건설 현장 안전사고 현황에 따르면 2019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HDC현대산업개발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총 16명이다. 대형 건설사 중에서 단연 많았다.

축구협회, ‘클린스만 경질’… 정 회장 궁지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가운데)은 지난해 3월 부임 이후 재택근무, 잦은 외유 등이 지적돼 왔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가운데)은 지난해 3월 부임 이후 재택근무, 잦은 외유 등이 지적돼 왔다.

대한축구협회(KFA)가 야기한 한국 축구 논란은 갈수록 태산이다. 정 회장은 대표팀 사령탑 경질이라는 중차대한 이슈에서도 임원회의에 불참하면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사실 지난해 3월 클린스만 감독 부임 이후 재택근무, 잦은 외유에 대해 계속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아시안컵 결과까지 기다려보자’는 여론으로 버텨왔다. 그러나 이번 아시안컵 4강 탈락을 기점으로 여론은 완전히 돌아섰다.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정 회장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앞서 미국, 독일 등 대표팀 사령탑을 거치면서 지도자로서는 ‘낙제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세계적 스타 출신에 온화한 성품까지 지녀 개성이 강한 대표팀 통솔에 적합한 리더라며 그를 추천했다. 그러나 당시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전력강화위원회 등 국내 축구계 인사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3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정몽규 회장과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 2017년 U-20 월드컵에 아들이 출전했을 때부터다”며 인연을 밝히기도 했다.

이 와중에 선수들 간 불화설마저 터지면서 정 회장 입지는 사면초가 모양새다. 2월 15일 일본 스포츠전문매체 히가시스포웹은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터진 내분 파동이 대스캔들로 번질 것 같다”며 “이 내분을 누설한 사람이 클린스만 감독과 정 회장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매체는 “이들이(클린스만 감독과 정 회장) 자기들을 지키기 위해 내분 정보를 누설했다. 4강 탈락이 감독 혹은 협회장의 잘못보다는 선수끼리의 갈등 탓이라는 점을 은근히 강조하려고 한국도 아닌 영국 일간 ‘더선’ 기자에게 흘렸다”고 추측했다. 손흥민과 이강인의 충돌 보도에 대해 축구협회가 즉각 사실이라고 인정한 점도 이런 의혹을 키운 원인으로 꼽았다.

일부 축구팬들은 대한축구협회 앞에서 정 회장과 클린스만 감독의 동반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급기야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2월 13일 오전 서울경찰청에 강요, 업무방해,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정몽규 회장을 고발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이 클린스만 감독을 일방적으로 임명할 것 등을 강요해 협회 관계자들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주장이다. 이 단체는 “클린스만 감독을 해임할 때, 위약금을 비롯해 해임하지 않을 시 2년 반 동안 지불해야 할 금액과 처음 계약 후 지급한 금액도 공금임에도 피고발인의 일방적 연봉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정 회장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2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패인을 감독 무능이 아니라 선수들 내분이라고 선전하는 축구협회 관계자들도 각성하라”며 “정몽규도 장기집권했으니 사퇴하는 게 맞다. 대통령도 단임인데 3선이나 했으면 물러나야지”라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지난 2013년 1월 KFA의 수장직에 오른 이래 3선에 성공하며 12년째 한국 축구를 이끌고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감독 교체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축구협회의 시스템 개혁에 있다. 이 논의를 배제하면 제2의 클린스만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경질’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축구협회는 2월 15일 전력강화위원회 뒤 “클린스만 감독이 재임 기간 중 선수를 발굴하려는 의지가 부족했고, 내부 갈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국내 체류기간이 적어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평가하며 감독 교체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클린스만 감독의 계약 기간은 북중미월드컵이 끝나는 2026년 7월로, 경질 시 위약금과 잔여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 축구협회 등에 따르면 클린스만 감독만 대략 70억원, 코치진을 포함하면 약 80억원을 줘야 한다. 축구협회는 계획보다 늘어난 천안축구종합센터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최근 300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정 회장은 위약금을 줄 경우 악화되는 협회의 재정 건전성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2년 1월 세상을 놀라게 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후에도 HDC현대산업개발의 공사현장에서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는 경기 평택의 주거용 오피스텔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 2명이 숨지거나 다친 것이다. 당시 상층부의 콘크리트 지탱용 H빔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2.5m 길이의 H빔이 떨어지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HDC현대산업개발을 포함한 공사장 관계자들을 잇따라 소환해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사고 예방 의무를 게을리한 정황이 확인되면, 책임이 있는 사람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방침이다. 고용노동부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아파트 붕괴 사고 후에도 ‘죽음의 사업장’ 오명 여전

2022년 1월에 발생한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현장(왼쪽)과 이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2022년 1월에 발생한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현장(왼쪽)과 이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HDC현대산업개발이 시행하는 공사장에서는 대형 사고가 줄을 잇고 있다. 대표적인 사고가 작업자 6명이 잔해에 깔려 숨진 2022년 1월 광주광역시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다. 이 사고 7개월 전인 2021년 6월에는 광주광역시 학동4구역 재개발을 위한 철거 작업 중 붕괴한 건물이 도로 위 버스를 덮쳐 승객 등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23일에는 경북 경산시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외벽 방수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30m 아래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났다.

이 때문에 HDC현대산업개발의 안전관리 대응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광주광역시 학동 재개발 현장 철거 사고 조사 결과 현대산업개발 하도급 철거업체는 광주 동구청에 제출한 건축물 해체계획서와 안전지침을 따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철거 과정에서 불법 재하도급 문제도 불거졌다. 서울시는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으로 현대산업개발에 8개월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내렸지만, 회사는 과징금 처분으로 변경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결국 현대산업개발은 4억623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2022년 1월 광주광역시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도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39층 바닥의 시공 방법과 지지 방식이 당초 설계와 달리 무단으로 변경돼 시공된 것이 원인으로 나타났다.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콘크리트 양생 기간을 줄인 것도 문제가 됐다. 당시 정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 화정 아이파크 8개 동을 전면 철거하고 재시공하겠다”고 말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철거와 재시공 비용을 2000억원가량으로 추산했다.

HDC는 대형 개발사업 수주 등으로 지난해 실적 반등

업계 관계자는 “HDC현대산업개발은 두 번의 큰 사고 이후 경영진이 매달 건설현장을 직접 찾아 특별안전 점검을 시행하는 등 안전관리 프로그램을 강화해왔다”며 “그러나 아직 건설업계 전체적으로 중대사고를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자기규율이 부족하고, 특히 하도급 과정에서 관리 부족 실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우외환에도 불구하고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매출 4조1908억원, 영업이익 1953억원, 당기순이익 174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27.1%, 67.8%, 247% 상승한 수치다. 국내 7대 건설사 중 영업이익률이 증가한 곳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유일했다. 회사 측은 “대형 사업지의 공사가 본격 진행된 것과 더불어 부산 아시아드레이카운티, 개포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청주 가경아이파크 5단지 등 굵직한 사업지들의 준공이 매출로 인식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덕분에 재무 건전성도 강화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차입금 규모는 1조7772억원으로 전년도 말(2조1676억원)보다 18%가량 감소했다. 부채비율도 지난해 말 119.5%로, 직전년도(137.8%) 대비 18.3%포인트 줄었다. 지난해 신규 수주는 2조 6784억원이다.

자신감을 얻은 HDC현대산업개발은 올해 목표를 매출 4조2718억원, 신규 수주 4조8529억원으로 높여 잡았다. 신규 수주와 더불어 올 한 해 자체 사업지인 광운대역 인근 복합개발 사업 H1 프로젝트를 비롯해 전국에 1만3000여 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서울 노원구 광운대역 일대 약 15만㎡ 철도시설 부지를 미래형 복합타운으로 조성하는 광운대역세권 개발 사업은 도심 생태공간을 기반으로 업무, 상업, 프리미엄 호텔, 주거공간이 어우러질 전망이다. 올해 내 착공과 분양이 예상되는데 아파트만 8개 동, 3150가구가 조성된다. GTX-C 노선과 연계되는 사업으로, 예상 사업비가 4조5000억원에 달한다. 회사 관계자는 “H1 프로젝트와 같은 개발사업을 비롯한 자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올해도 예년과 같이 가이던스를 초과하는 실적을 기록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