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체크카드까지 상납"...항운노조 간부, 취업∙승진 비리 잇단 실형 [사건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부산항운노조 사무실. 연합뉴스

부산항운노조 사무실. 연합뉴스

직원 채용과 승진에 관여한 부산항운노조 간부들이 잇달아 실형을 선고받았다. 뇌물 공여자는 처벌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엔 이들에게도 징역형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체크카드 상납’ 등 신종 범죄도 강도 높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어 부산항운노조의 취업ㆍ승진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채용ㆍ승진 관여 지부장들, 줄줄이 실형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4단독 장병준 판사는 최근 금품을 받고 승진에 관여한 혐의(배임수재)로 기소된 부산항운노조 전 지부장 A씨에게 징역 3년과 추징금 2억400만원을 선고했다. 2022년 5월과 10월에 B씨 등 반장(현장 관리직 간부) 승진을 원하는 조합원 2명에게 1억5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또 다른 조합원 3명에게 “자녀를 채용해달라”는 청탁 대가로 5400만원 상당 현금 등 금품을 챙긴 혐의도 있다. 장 판사는 “취업 청탁 7건과 함께 대가로 2억원 넘는 돈을 받았다. 인사 업무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등 사회적 부작용이 극심해 책임이 무겁다”고 질타했다.

지난달 31일엔 부산항운노조의 또 다른 전직 지부장 B씨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B씨는 2019년 조합원 3명에게 “반장으로 승진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한 사람 당 수천만원씩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와 같은 지부에 소속된 반장인 C씨는 ‘정조합원이 되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5000만원을 받고, 이 가운데 3000만원은 B씨에게 건네기도 했다. 법원은 B씨에게는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두 사건 관련, 청탁과 함께 돈을 건넨 공여자도 처벌됐다. 공여자 11명은 300만~500만원의 벌금형이나 징역 4~8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끊이지 않는 항운노조 인사 비리, 왜?

항운노조는 항만과 철도 등 하역 업무에 독점적으로 근로자 공급권을 허가받은 노조다. 조합원을 채용하고 지휘ㆍ감독하는 ‘사용자’ 지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노조와 구분된다. 특히 부산항을 낀 부산항운노조는 24개 지부로 구성됐으며, 규모와 세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수준인 걸로 알려졌다. 조합원-조장-반장-지부장-위원장의 위계적인 직제 속에 취업한 뒤 노조에 가입하는 ‘유니온 숍’이 아닌 노조에 가입해야 취업할 수 있는 ‘클로즈드 숍’ 구조를 띤다.

2005년 6월 14일 열린 부산항운노조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이 '노조 민주화와 자정'을 결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5년 6월 14일 열린 부산항운노조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이 '노조 민주화와 자정'을 결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항운노조는 조합원 20∼30명을 감독하는 반장 직급부터 취업과 승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최근 전직 지부장 A·B씨 사건 선고에서 법원은 항운노조의 ‘피라미드 구조’를 지적했다. 위원장이 지부장 임명을 결정하고, 지부장은 해당 지부의 조장ㆍ반장 승진 등 업무 전반을 총괄하는 구조여서 이 같은 ‘인사 비리’에 영향을 준다는 지적이다.

부산지검은 2005년 이 같은 취업 비리와 공금횡령 혐의를 수사해 전ㆍ현직 위원장 등 10여명을 기소했다. 이후 부산항운노조는 항만 노무인력의 공급 독점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기구 등을 꾸렸다. 하지만 2019년에도 취업ㆍ승진 비리로 위원장 등 31명이 기소된 데 이어 검찰 수사가 반복되고 있다.

檢 ‘체크카드 상납’ 등 고강도 수사

부산지검 반부패수사부는 지난해부터 부산항운노조의 취업ㆍ승진 비리 수사를 해왔다. 검찰과 노조에 따르면 최근엔 항운노조 한 지부와 신협이 결탁해 청탁자 명의 체크카드를 만들어 윗선에 상납한 신종 수법도 살펴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기소된 이후 재판 진행 과정에서 추가 혐의가 드러나 다시 수사받는 사례도 많아 정확한 사건 내용을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항운노조 측은 “체크카드 상납은 극히 미미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해명했다. 부산항인력관리주식회사(PRS), 인력수급관리위원회 등이 출범했음에도 이 같은 비리가 끊이지 않는 데 대해선 “노ㆍ사ㆍ정이 추가 보완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