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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폐지' 尹정부 속도전…애초 찬성하던 이준석 화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2022년 1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여성가족부 폐지’ 한 줄 공약. 페이스북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2022년 1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여성가족부 폐지’ 한 줄 공약. 페이스북 캡처

‘여성가족부 폐지’
제20대 대통령선거를 두 달가량 앞둔 2022년 1월 7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올린 공약이다. 7음절에 불과했지만 반향은 컸다. 특히 여성과의 역차별을 주장하며 불만이 쌓여있던 ‘이대남’(20대 남성)의 큰 호응을 얻었다.
정치권에선 당시 윤 대통령과 갈등 관계였던 이준석 대표를 포용하는 동시에, 이대남의 지지율을 반등시킬 수 있는 묘수라는 평가가 나왔다.
윤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여가부 폐지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히자, 여권도 밀어붙이지 않았다.

이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여가부 폐지론이 4·10 총선을 50일가량 앞두고 다시 부상하고 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의 사의가 발단이 됐다. 20일 사표를 수리한 윤 대통령은 후임 장관을 임명하지 않을 방침이다. 나아가 대통령실은 조직 개편을 통해 여가부에 필수 보직만 유지한 뒤, 다음 국회에서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정부·여당이 총선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대남 민심을 되찾기 위한 공략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대남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래 여권의 우군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들에게 영향력이 큰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국민의힘에서 이탈한 뒤 이대남과 여당의 관계는 이전보다 차가워진 상태다.

2022년 1월 6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화해하며 잡은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다음날 윤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밝혔다. 뉴스1

2022년 1월 6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화해하며 잡은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다음날 윤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밝혔다. 뉴스1

여권은 환영 목소리를 냈다. 21대 국회에서 여가부 폐지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정부 조치는 대선 공약인 여가부 폐지 의지를 확인한 것”이라며 “22대 국회가 출범하면 저는 국민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같은 법안을 다시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은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도 22일 비대위 회의에서 “이번 4월 선거가 여가부의 아름다운 퇴장을 위한 마지막 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발끈한 것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다. 이 대표는 이대남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고, 줄곧 여가부 폐지를 주장해 왔다.
그는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는) 제가 법 개정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할 때마다 여성계의 반발을 이야기하며 무시했고, R&D 예산을 줄이면서도 여가부 예산을 늘렸다”며 “여기에 일관성이 어디 있으며 진정성이 어디 있는가. 개혁신당에서 정부조직법을 손대려고 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생각이 난 것이냐”고 쏘아붙였다.
개혁신당의 한 관계자도 여권의 여가부 폐지에 대해 “사실상 선거용 숟가락 얹기가 아니냐”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여가부 폐지에 전면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최혜영 민주당 대변인은 21일 “후임 장관을 임명하지 않는 것이 여가부의 식물부처화, 기능 무력화를 넘어 아예 여가부를 폐지하는 수순을 밟으려는 대통령의 의지라니 기가 막힌다”며 “법치 정부를 외치면서 법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또, “총선이 다가오니 다시 여가부 폐지 이슈로 보수적 성향의 국민에게 환심을 사려는 의도냐”며 “여가부를 분열의 정치에 이용하려는 윤 대통령을 국민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한편 대통령실이 법안 개정 전까지 여가부를 차관 중심으로 운영하며 사실상 ‘식물부처’로 두겠다는 방침에 대해 법조계에서도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을 우회한 비상식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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