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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짜리 전기차, 수리하려니 "넉달 기다리세요"…차주들 분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명 외제차 브랜드의 2억원짜리 전기 자동차를 소유한 김모(59)씨는 지난달 강원도에서 운행 중 차량이 눈길에 미끄러지며 뒷 부분이 크게 파손되는 사고를 당했다. A씨는 구입처를 포함한 공식 딜러사 두 곳에 수리를 의뢰했다. 돌아온 건 “수리 기간이 최소 3~4달 소요된다”는 공통 답변이었다. 수리에 쓰일 부품 재고가 국내에 없다는 이유였다. A씨는 본사에도 e메일을 보내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A씨는 “그동안 해당 브랜드 차량을 두 번이나 구입했고, 차량 성능이나 고객서비스에 만족해 다 같은 브랜드 전기차를 구입했는데, 별다른 설명도 없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만 하는 회사 서비스에 너무 실망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강원도에서 발생한 사고로 후미 부분이 파손된 전기차. 사진 독자제공

지난달 강원도에서 발생한 사고로 후미 부분이 파손된 전기차. 사진 독자제공

전기차 수리 비용이나 기간과 관련한 소비자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24일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전기차 관련 소비자 불편 접수 건수는 2021년 21건, 2022년 31건, 2023년 55건으로 최근 3년간 증가 추세다.

특히 김씨 사례처럼 수입 전기차의 경우 국내 전기차 판매량에서 30%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수리 기간이나 비용 문제를 둘러싼 소비자들 불만이 큰 상황이다. 브랜드 공식 수리업체 외에는 차량을 손 볼 수 있는 공업소가 사실상 전무해 기간이 오래걸리거나 금액이 비싸도 울며 겨자먹기로 판매사 정책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외제차 브랜드의 8000만원대 준중형 전기차를 구입한 한모(38)씨도 “운행 때마다 냉각수 보충 경고가 떠서 수리를 문의하니 증상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3개월이 걸린다고 하더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서 판매된 전기차 중 수입 전기차는 26.9%(4만3031대)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브랜드 전기차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전기차 소유주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수리 문제에 대한 불만 글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경기 남양주에서 국내 브랜드 전기차를 운행한다는 한 네티즌은 지난해 11월 “후진하다가 모서리를 콕 충돌했다. 번호판만 손상되고 외관은 큰 문제가 없었는데 계속 충돌 경고가 떠서 수리를 맡겼더니 4~6주가 걸린다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또 보험 약관상 사고로 인한 대차(렌트) 기간이 최대 25일이어서 나머지 수리 기간 대차 비용을 부담해야할 뿐만 아니라, 동급의 전기차가 아닌 내연기관 차량으로만 대차가 가능하다는 점도 불만으로 꼽았다.

국내 브랜드 전기차를 소유한 또 다른 네티즌도 지난달 “사고나서 수리했었는데, 전기차 수리비가 (내연기관 차량) 대비 3배는 비싼 것 같다. 기름값 아껴 전기차 수리비로 한방에 날리는 것 같다”고 글을 올렸다.

전기차 수리를 둘러싼 소비자 불편의 근본적 원인은 정비업체와 관련 기술자 부족이 꼽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국내 자동차 정비소 중 전기차 정비가 가능한 곳은는 전체 정비소(4만5462개소) 중 3.3%(1517개소)였다.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 55만대 대비 전기차 정비소 비율이 0.27%에 불과한 셈이다. 이 중 고전압 배터리 교체 등 모든 정비가 가능한 업체는 200여곳 뿐이었다. 이렇다 보니 정비소 부족이 전기차 이용을 꺼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전기차 특별 안전점검’ 기간으로 정한 지난해 7월 4일부터 10월 12일까지 서비스센터를 방문한 전기차 이용자 2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12.6%가 전기차 운행 시 걱정스러운 요소로 ‘정비 비용 부담 및 정비업체 부족’을 꼽았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기차의 경우 내연기관차 대비 정비 부품이 완벽히 구비가 안 돼 있고,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와 수리 장비도 한정적이다보니 애프터마켓에서 부작용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수입 전기차는 국산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했을 때 부품에 따라 수리비가 최대 9배까지 차이가 나기도 하고 소요 시간도 3~4달 걸리는 일이 잦다”며 “얼리 어댑터가 되려다가 사고가 나면 애물단지가 돼 버리는 것인데, 지금으로선 결국 개인이 사고가 나지 않게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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