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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잡 하고 있다" 20대도 34%…이 직업이 제일 많았다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 세태취재 - ‘평생직장’은 옛말… 이제 ‘직업’을 만드는 시대

직장인 89%가 N잡 경험, 2030세대보다 은퇴 앞둔 50대 비중 높아
진입장벽 낮은 일부터 시작해야… 탄탄한 수익구조 만드는 것이 관건

배송 기사 일은 N잡 도전자들에게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편에 속하는 직종이다. / 사진:getty images bank

배송 기사 일은 N잡 도전자들에게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편에 속하는 직종이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엔(N)잡러’란 2개 이상의 여러 직업을 동시에 병행하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박정경(66) 씨는 한 직장에서 30년 근속하다 정년퇴직을 했다. 퇴임식에선 공로패와 메달, 황금열쇠를 받았다. 스스로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은퇴였다. 자식들에게도 평생직장의 가치 실현을 위해 직장에서의 처신(주로 근태와 인간관계)에 주의할 것을 강조했다. 자식들이 직장을 옮기기라도 하는 날엔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근심과 걱정이 담긴 조언을 했다. 박씨는 “자식이 둘인데, 직장 잘 다니고 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더니 제 엄마한테는 퇴사하고 다른 데로 옮겼다고 했다더라”면서 “자꾸 직장을 옮겨 다니길래 일전에 한 소리 했더니, 나한텐 거짓말까지 하고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만 반복한다”라는 말로 자식들에게 서운함을 내비쳤다.

박씨처럼 평생직장을 보장받은 사람을 부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평생직장의 가치는 과거의 유산쯤으로 여긴다. 직장과 개인 간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부터 30~40대 조기은퇴를 꿈꾸며 다양한 방식으로 은퇴자금을 마련하는 ‘파이어족’ 같은 말이 유행한다. 과거의 ‘직장생활’이라는 개념도 요즘엔 더 이상 맞지 않다. 직장이 있어서 일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일을 찾아서 직업을 만드는 ‘N잡’의 시대가 됐다. 전문가 프리랜서들의 기술과 노하우를 사고파는 플랫폼 ‘크몽’이나 강의 플랫폼 ‘클래스101’ 등엔 이미 본업 외에 여러 부업을 병행하는 ‘잘나가는 N잡러’가 다수다.

50대, 하루 3.1시간 N잡 투자해 월 105만원 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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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에 ‘N잡러’는 얼마나 될까? 작년 하반기 잡코리아·알바몬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직장인 응답자 982명 중 89.0%가 본업과 병행해 ‘N잡을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N잡을 하고 있는 비중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50대 이상(43.1%)이었고 가장 낮은 연령대는 20대(34.1%)였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황윤주 사업운영본부장은 “40대와 50대 초반까지는 부양·생계 등 소득 유지를 위해 부업을 찾고, 50대 후반부터 60대는 신체적인 능력이 저하되는 측면과 자유로운 시간 활용을 고려해 파트타임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연령대별로 N잡의 종류도 다르게 조사됐다. 20대 직장인은 음식점 서빙·보조를 한다는 응답자가 23.8%로 가장 많았다. 이어 카페 바리스타(19.0%), 판매·매장관리(16.7%), 문서작성·편집(16.7%) 일을 한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30대는 판매·매장관리가 16.8%로 가장 많았고, 블로거 활동을 한다는 응답자가 14.8%로 뒤를 이었다. 40대는 판매·매장관리(17.7%) 일을 한다에 이어 음식점 서빙·보조(12.9%), 사무보조(12.1%), 택배·배달(11.3%) 순으로 나타났다. 50대 이상에서는 판매·매장관리를 한다는 응답이 28.6%로 가장 많았고 음식점 서빙·보조(23.2%), 사무보조(12.5%) 순으로 N잡을 한다고 답했다.

직장인 N잡러들이 하루 중 N잡에 투자하는 시간은 3.4시간(약 3시간 24분)으로 조사됐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N잡에 투자하는 시간이 길었고, 그만큼 월소득도 높았다. 20대와 30대는 각각 3.2시간과 3.1시간을 투자하고, 40대가 3.4시간, 50대가 4.1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월 수입은 20대가 평균 53만원, 30대는 평균 69만원, 40대는 평균 92만원, 50대 이상은 평균 105만원으로 집계됐다. 소득과 관련해 응답자들 중 68.2%는 월 309만원을 벌 수 있다면 ‘본업’으로 전향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모든 연령대에서 현실 수입과 희망 수입의 간극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송파구에 사는 정영문(52) 씨는 광고기획사에서 기획자로 근무하다 2년 전 빅데이터분석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정씨는 “IT회사에 오전에만 근무하는 조건으로 근로계약을 한 뒤 오후 시간은 다양한 일을 하며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면서 “온라인 교육 플랫폼 ‘101클래스’에서 강의를 하거나 광고기획사에 다니던 때 인연을 맺은 기업들에 기획서나 제안서를 작성해주기도 하고,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지방으로 강의를 다녀오기도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그에겐 작년 기준 총 1억1000만원의 소득이 발생했다. 예전 광고기획사에 다니던 때에 비하면 약 1.5배 늘어난 금액이다.

정씨가 N잡러가 된 데는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이다. 남매가 커가면서 교육비 등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올타임 근무하는 이전 직장에서 받는 연봉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고, 퇴직한 후, N잡을 결정했다. 현재 정씨가 가장 만족하는 부분은 자신이 일한 만큼 수입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예전, 직장인이었을 땐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밤샘 근무를 하더라도 급여에 별 차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시간을 투자한 만큼 모두 소득으로 이어진다. 그는 N잡을 통해 탄탄한 수익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관 리 등 모든 면에서 더 꼼꼼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N잡 시장, 비임금노동자 위주로 재편 중

패션 디자이너로, 회사 대표로, 카페 주인으로 N잡을 실현 중인 김영혜 대표의 모습. / 사진:김영혜 제공

패션 디자이너로, 회사 대표로, 카페 주인으로 N잡을 실현 중인 김영혜 대표의 모습. / 사진:김영혜 제공

패션회사를 운영하는 김영혜(54) 대표도 시간을 분배하고 관리하는 데 철저하다. 김 대표는 패션 디자이너, 패션 회사 대표, 대학 교수, 카페 주인 등으로 불린다. 그가 N잡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패션 디자이너로 대학 강단에 서고,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어졌다. 그렇게 만든 제품을 전시할 쇼룸을 준비하다 카페까지 운영하게 됐다. 김 대표는 “작업실 겸 쇼룸인 카페가 입소문이 났는지 ‘부업’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면서 “남는 공간을 활용해 생긴 뜻밖의 부수입이어서인지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직업이 여럿인 만큼 시간이든 관계든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생기지만, 하고 싶은 일을 직업‘들’ 삼아 하고 있는 지금에 만족한다고 했다.

N잡러의 생활이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도봉구의 한 주택가에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 중인 이철수(가명) 씨는 이달 말 가게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이씨는 “평일 심야엔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주말엔 플랫폼 배달 일을 하고 있다. 원래 직장생활을 했는데, 이젠 아이를 혼자 돌봐야 해서 이전처럼 출퇴근할 수가 없다 보니 이렇게(N잡러가) 됐다”고 했다. 그는 “무인점포 운영이 7개월째인데, 생각보다 물건 채우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나한텐 안 맞는 것 같다”라면서 가게를 내놓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요즘 주말 배달 일도 점점 줄어서 걱정이라는 말과 함께 ‘원래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닐 걸 그랬다’는 말도 덧붙였다. 회사에 다니며 따박따박 들어오는 고정 월급으로 생활했을 때 오히려 수입과 지출 관리가 수월했다는 것이다. N잡에 도전할 땐 무작정 일을 늘리기보다 고정 수익이 보장되는 일을 본업처럼 정해두고, 그 본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기준으로 다른 일을 늘려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도 했다.

2023년 10월,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이 낸 자료를 보면 N잡러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 현실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근로자의 산재보험 복수가입자는 27만명 줄었으나, 특고(소속 없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등 노무제공자의 산재보험 복수가입자는 39만 명 가까이 크게 늘었다. 다중취업자, 즉 N잡러가 앞서 소개한 이씨의 사례처럼 비임금노동자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다중취업자 증가라는 변화된 상황에 맞는 노동시장 정책, 사회보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은주 전 의원은 당시 “비임금노동자 위주로 N잡러가 증가하는 현실에 맞춰 사회보험과 노동시장 정책의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면서 “국회에 계류된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안을 속히 통과시켜 프리랜서, 플랫폼, 특수고용노동자의 기본적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도 지난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에 증가하는 부업 형태는 유튜브나 무인점포처럼 근무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일”이라며 “부업이 늘었다는 건 그만큼 하나의 일자리로 가정을 꾸려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경기가 안 좋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본업 외에 부업으로 추가 수익을 얻기 위해 도전해볼 만한 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현재 N잡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일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그중 하나가 배송기사 활동이다.

얼마 전까지 배달·유통 전문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배달·배송 기사 일은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인기 부업으로 떠올랐다. 기동성을 갖추거나 배송 건수가 많은 지역을 선별하는 선구안을 갖췄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한 카드사 자료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음식점 대면 결제가 배달 결제를 앞섰다. 시간을 투자한 만큼 큰 수익이 생기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동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4050 세대가 도전해 볼만한 N잡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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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 일보다 수익성은 적지만 육체적인 피로도가 적고 시간을 투자한 만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직종도 있다. SNS마케팅 활동이다. 유료 마케팅인 바이럴 상품에 대한 리뷰를 블로그 등에 작성하고 건수에 따라 일정 금액을 받는 구조다. 많은 글을 작성할수록 더 많은 수익이 생긴다.

온라인 숍이나 무인점포 등 창업형 N잡도 생각해볼 수 있다. 네이버스마트스토어 같은 온라인 스토어 오픈은 4050직장인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다만 상품 유통업 창업이기 때문에 일정 수익을 얻기까지 초반 유입에 따른 정착 시기가 길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계산해야 한다.

이외에도 자신의 직업과 관련한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고려해볼 수도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황윤주 사업운영본부장은 4050이 도전해보면 좋을 직종으로 “40~50대 초반은 유튜브 크리에이터, 디지털 드로잉 등 프리랜서로 부수입을 낼 수 있는 기술 관련 직군에 대한 관심이 높은 반면, 50대 후반~60대는 시간 활용이 자유롭고 활동에 따라 일정 수입을 보장하는 배송, 돌봄교사, 기계·장비수리, 강사 등의 활동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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