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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일본이 저런 나라였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78호 30면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일본이 저런 나라였나.’ 최근 일본 관련 뉴스만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혼잣말이다. 엔화 가치가 연일 하락해 일본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상황이 확 바뀌었다. 걱정하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부러움만 가득하다.

일본 증시의 대표 주자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22일 3만9098.68로 장을 마감했다. ‘버블(거품) 경제’ 시기인 1989년 12월 29일(3만8915.87) 이후 34년 2개월여 만에 최고치다. 엔화 약세로 실적이 좋아진 수출 기업과 반도체주가 지수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하지만 닛케이지수의 최근 상승세는 단순히 인공지능(AI)과 같은 개별 호재로 관련 기업의 주가가 튀어 오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닛케이 사상 최고치 경신
TSMC 공장 밤새워 공사

전반적으로 일본 증시에 거센 투자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게걸음을 하고 있는 한국 증시를 보고 있으면 부러울 따름이다. 단기간 주가가 급등하면서 ‘거품’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역대급 상승세, 외국인 투자 증가는 결국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이 그만큼 단단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러움의 대상은 사상 최고치인 지수나,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이 아니다.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인 TSMC는 최근 일본 구마모토에 반도체 제조공장을 준공했다. 착공부터 준공까지 단 22개월이 걸렸다. 공장 규모가 작은 것도 아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수인 클린룸만 4만5000㎡로 일본 프로야구 경기장인 도쿄돔 면적과 맞먹는다. 당초 공사기간도 5년이었지만, ‘반도체 산업 재건’이라는 목표를 내건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365일 24시간 공사를 진행했다. 일본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속도다.

닛케이지수 상승 바탕에도 정부의 발 빠른 판단과 확실한 정책 지원이 있었다. 일본 정부는 엔저 현상 속에 외국인 투자자가 늘어날 기미를 보이자, 지난해 3월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 대비 자기자본 비율) 1배 이하의 저평가된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개선안을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상장 폐지까지 거론하며 적극적으로 기업을 자극했고, 기업은 지난해에만 9조6000억엔(약 86조원)에 달하는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화답했다. 정부가 방향성을 정해주자 기업이 주주환원을 통해 적극적으로 투자자 ‘유치’에 나선 것이다. 이것이 최근 닛케이지수 상승세의 원동력이다.

이런 일본 정부의 행보에 비하면 한국 정부는 존재감이 없다. 상황 판단을 통해 목표를 정했으면 국회를 설득해 일본처럼 확실하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근래 그런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정부 정책으로 조성 중인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만 해도 그렇다.

일찌감치(?) 반도체의 중요성을 깨달은 정부는 2019년 2월 용인에 반도체클러스터를 조성키로 했지만 각종 환경영향평가, 용수·전력 확보 방안을 놓고 지방정부와 환경단체 등이 제동을 거는 바람에 착공이 3년가량 지연됐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는 최근까지도 각종 민원, 잡음에 시달려야 했고 여전히 기초공사 중이다. 반면 TSMC의 구마모토 공장은 계획 발표 6개월 만에 착공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우리를 비롯해 많은 나라가 일본을 비웃곤 했다. 당시 일본 의료기관은 코로나19 확진자로 판명되면 의사가 손으로 감염자 발생신고서를 쓴 뒤 팩스로 보건소에 보냈다. 보건소에선 팩스에 적힌 데이터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집계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실수가 많고 조치가 늦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에 ‘일본이 저런 나라였나’라는 의아함이 들었는데, 2년여 지난 지금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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