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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수원문학권|"서울입성" 약점 딛고 향토문화 일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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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삼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길에 성으로 버티고 선 도시 수원. 아버지 사도세자의 애달픈 정을 못 잊어 정조가 실학자 정약용으로 하여금 5천99m에 이르는 성을 쌓게 해 이루어진 마지막 성곽도시가 수원이다.
『주모는/막걸리를 데우고/산기슭/아버지 유택에/함박눈이 쌓였다./하정이 애비/겨울에/찬 술 못 먹게 하거라/가슴에 문신으로 새겨진/이승의 마지막/그 말씀 들리는데/두루마기의 눈을 털며/주점에 들어오시는 아버지여./맞은편 자리/술잔에/더운 약주를 따라드렸다.』(임병호의『현신』전문)
실하게 쌓은 성곽의 튼튼함만큼이나 2백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조의 효성을 그대로 간직한 행원이 수원이다. 그러나 수원은 예나 지금이나 서울로 통하는 지리적 여건으로 하여 나름의 향토색을 지니지 못한 도시다. 웬만한 자질이 인정되면 한양으로, 서울로 입성해 인재를 빼앗겨 나름의 향토문화를 간직하기 힘든 도시가 수원이다.
수원 문인들은 수원 문단의 시발로 홍난파를 든다. 관문도시 수원의 상징인 팔달산 중턱에 노래 비를 남긴 근대음악의 선구자 홍난파(1898∼1941)는『처녀혼소 백일초』『폭풍우가 지난 뒤』등의 소설을 남겼다.
또 수원군수의 딸로 태어나 기구한 삶을 산 학가 나혜석(1896∼1946)도『사』『냇물』들의 시와『정순』『경희』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한 문인이다.
1933년『신동아』를 통해 문단에 나온 김광주(1910∼73)도 수원이 배출한 소설가다. 김광주는 소설창작은 물론『뇌우』『노신 단편집』『삼국지』등 중국문학번역 소개에도 힘썼다. 1921년 정지용 등과 시동인지『요람』을 통해 활동하다 월북한 시인 박팔양도 수원이 배출했다.
그러나 일제하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음악가나 화가로 또는 서울로 북으로 수원을 떠나 수원문단에는 별로 기여한바 없다.
8·15이후 수원에서 결성된 최초의 동인은 46년「청운문학회」다. 김수환과 이희영이 수원문학을 일구겠다는 푸른 꿈을 안고 결성한 청운문학회는 6·25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6·25로 황폐해진 수원문단은 50년대를 별 움직임 없이 보내다 1963년 오영일·김윤겸·문백희·김훈동 등이 모여「서호림」「에트랑제」등의 문학동인을 결성하며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동인들은 단 한번도 동인지를 발간하지 못한 채 1965년「화홍문학동인회」에 이르게 됐다.
수필가 안익승과 시인 임병호·김석희에 의해 결성된 화홍문학동인회는 동인지『화홍시단』을 펴내며 수원문인들을 결집해나가 수원문인협회로 발전했다.
화홍문학동인회에 의해 명실상부한 문단시대를 연 수원은 70년대 들어 붕알·시임·무풍지대·상황 등의 동인을 결성하며 활기를 띠게 된다.
71년 박창석·용환신·변하중·김창환 등이 모여 결성한「붕알동인회」는 종합지 성격의 동인지『붕알』을 창간했으나 창간호로 그치고 더 이상 활동하지 못했다.
75년 학생잡지『학원』의 학원문단에 작품을 발표하던 김우영·최영선·박민순·김정희·최병기 등이 결성한「시림문학동인회」는 79년까지 동인지『시림』을 4집까지 내며 활동하다 긴 동면에 빠졌다.
이들 동인들은 89년 동인집 5집을 펴내며 전국규모의 시동인지로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성곽 안에 갇혀 바람이 없는 수원문단에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며 76년 김준기·김우영·최영선·정연웅·박아영·신명균·강기주·엄기배·조성휘·김재형 등 수원의 젊은 문학도들이 결성한「무풍지대 문학동인회」는 동인지『무풍지대』를 3집까지 내며 활동하다 지금은 쉬고 있는 상태다.
79년 박정석·용환신·변하중·홍일선 등이 모여 결성한「상황문학동인회」는 좀더 상황에 닿는 문학활동을 벌이려 했으나 동인 창간호『상황』을 펴내고 쉬고있다.
80년대 들어서는 84년「경기수필문학회」를 결성, 동인지『경기수필』을 6집까지 내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있다. 회장 정규호씨와 동인 36명이 활동중이다.
김우영·장기주·정수자·최영선·민성훈·장순금·홍승표 등에 의해 85년 결성된「푸른문예동인회」는 현재 활동을 쉬고있다.
1966년「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로 출범, 1981년 명칭을 바꾼「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부」는 수원문인들의 총 집결체. 현재 회장 밝덩굴씨와 회원 60명이 소속돼 있다. 문인협회는 수원시민들을 대상으로 연2∼3회 문학의 밤 행사, 경기청소년 및 주부백일장·수원시백일장·경기백일장 등 연3회 백일장개최, 연1회 이틀간 독서교양강좌 등의 행사를 펼치며 수원문학인 창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또 85년 경기문학상을 제정, 이 고장 기성문인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는 한편 기관지 『경기문학』을 매년 간행하고 있다.
문협은 수원의 직할시 승격과 지자제 실시를 앞두고 향토문화의 뿌리를 찾기 위해 수원지방 문학유산을 수집·정리·복원해 나갈 예정이다. 또 수원에 머무르다 서울로 떠난 문인들을 취합, 수원의 큰 문학세력을 형성하기 위해「경기문인과의 만남」등의 행사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수원=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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