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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전 '의사 파업' 주역 "이번 전공의 집단사직은 위험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2일 경남 양산시 양산부산대병원 로비 전광판에 전공의 진료 공백으로 인한 진료 차질을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송봉근 기자

22일 경남 양산시 양산부산대병원 로비 전광판에 전공의 진료 공백으로 인한 진료 차질을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송봉근 기자

2000년 의약분업 반대 의사 파업의 주역인 권용진(54) 서울대병원 교수가 전공의 집단사직의 법적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또 전공의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 정부가 이번 주말에 법적 조처를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권 교수는 2000년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 총괄 간사를 맡아 의사 파업 최전선에 있었고, 2003~2006년 대한의사협회 사회참여이사와 대변인을 지냈다. 권 교수는 의사이자 법학자이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

권 교수는 23일 페이스북에 '전공의 선생님들께'라는 제목의 장문을 글을 올렸다. 이번 전공의 행동의 법적 위험성을 지적했다. 권 교수는 "정부가 재난위기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이는 정부가 상당한 권한을 행사할 근거가 된다. 주동자를 구속하고 강력한 행정처분을 빠르게 집행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우려했다.

권 교수는 행정처분의 위험성을 법적으로 분석했다.

권 교수는 "행정처분 기록은 의업(醫業)을 그만둘 때까지 따라다닌다. 국내 면허로 해외로 나가는 데 치명적인 제약이 될 수 있다. 외국에 취업하려면 ‘Good Standing Letter’를 내야 하는데, 거기에 행정처분이 남게 된다. 지난 20여년간 의료계 투쟁에 앞장선 김재정 전 의협 회장, 한광수 전 의협회장 두 명 외는 의료업 제한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의료계가 위헌소송을 내도 승소 가능성이 작다고 지적한다. 의료계는 '업무개시명령이 의사의 직업선택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위헌소송을 내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권 교수는 "사직이 인정되더라도 의료법 처벌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헌법 제36조 제3항에 '국가의 보건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게 없으면 승소 가능성이 높겠지만, 이 조항으로 인해 국가의 책무가 다른 나라보다 강력하게 인정돼 승소 확률이 낮아진다"고 분석한다.

또 집단사직이 근로기준법 절차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전공의 근로조건은 민법 660조 제2항과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 전공의가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사직서 제출 후 바로 병원에서 나간 점이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단순한 사직으로 해석하기보다 목적을 위한 행위로 볼 가능성이 높아 의료법상 행정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행정처분은 전공의가 병원으로 돌아오는 것과 무관하게 적용될 것이다."

권 교수는 의사 선배와 교수로서 당부했다. 그는 "전공의가 병원의 특수한 환경에서 근무하면서 괴롭고 고통스럽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선배로서 이런 현실을 물려줘 미안하고 안타깝다. 다만 이런 현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란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전공의 행동이 의사윤리지침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이 지침 제1장 일반적 윤리 제3조(의사의 사명과 본분)에서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모든 의학 지식과 기술을 인류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권 교수는 "사직서를 제출하자마자 병원을 떠난 것은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고 있는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 또한 윤리적 원칙에 따라서 보더라도 중증 환자 수술이 지연되고 점을 고려하면 ‘나쁜 결과를 용인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정치적인 이유건 개인적인 이유건 간에 병원을 나갈 때 여러분(전공의)이 의사였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원을 떠난 게) 근무지 무단이탈에 해당한다. 노동조합도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만 파업할 수 있게 쟁의권을 인정한다. 사직은 개인 선택이지만 (급작스러운) 과정에서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일반적인 직장인으로서 사회통념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병원을 나가면서 스승과 충분히 대화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일부 스승이 부추기거나 격려한 경우가 있다면 전공의를 앞세워 대리싸움을 시키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의업(醫業) 포기는 여러분의 선택"이라며 "다만 계속 의업에 종사하고 싶다면 최소한 의사로서 직업윤리와 전공의로서 스승에 대한 예의, 근로자로서 의무 등을 고려해야 하고, (이를 종합하면) 여러분의 행동은 성급했다"며 "개인에게 큰 피해가 돌아갈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진정으로 의업을 그만두고 싶다면 병원으로 돌아와 일을 마무리하고 정상적인 퇴직 절차를 밟고 병원을 떠나길 바란다"며 "투쟁하고 싶다면 병원으로 돌아와 내용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더 나은 정책 대안을 갖고 정부와 대화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게 급속성장의 부작용에 직면해 있는 대한민국의 전문가가 해야 할 역할이고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23일 오전 권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왜 이런 글을 올렸나.
전공의 중 자세하게 내용을 모르고 어떤 처분을 받을지 모르고 병원을 나간 경우가 적지 않다.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알려야 한다. 
행정처분 기록이 큰 장애물인가. 
해당국의 의사시험을 보고 가면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한국 면허를 가지고 나가면 큰 제약을 받게 된다. 속칭 빨간 줄이 남게 된다. 이런 큰 피해를 받게 된다는 걸 누군가는 알려줘야 한다. 
변호사 조언을 받는다는데.
헌법과 의료법을 같이 전공한 사람이 별로 없다. 대형 로펌도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 위헌소송을 내도 질 게 뻔하다.
상황이 급박한가.
정부가 주말에 (전공의를) 잡아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그러지 말아야 한다. 전공의들이 생각하고 이해할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제발 숫자(의대정원 규모)에 집착하지 말았으면 한다. 2000명 증원은 지나치다. 1000명 선으로 낮추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양쪽이 강 대 강으로 맞서지 말고 물러서야 한다. 정부도 그간 의료제도를 망가뜨린 데 큰 책임이 있다. 냉정하게 '우리도 부족했다' '반성한다'고 말해야 한다. 정부가 큰 힘을 가졌는데, 이로 인해 후배이자 제자가 피해를 받게 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권 교수는 "네덜란드는 의료개혁위원회를 만들어 10년을 두고 개혁했다"며 "절대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들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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