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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의 뼈아픈 지적 "히트곡 늘어도 명곡은 안나오는 시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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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정규 9집 '여행'을 발매한 가수 김범수. 사진 영엔터테인먼트.

10년 만에 정규 9집 '여행'을 발매한 가수 김범수. 사진 영엔터테인먼트.

가요계 대표 남성 보컬 중 한 명인 김범수(45)가 돌아왔다. 디지털 싱글이 대세가 된 시대, 10년 만의 정규 앨범을 들고서다. 22일 발매한 그의 9번째 정규 앨범 ‘여행’에는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은 자신의 음악에 대한 고민과 방황, 그리고 용기가 담겨 있다.
1999년 '약속'으로 데뷔한 그는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독보적인 보컬 능력으로 '하루', '보고 싶다' 등의 히트곡을 냈다. MBC 경연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2011) 출연으로 대중적 인기를 더했지만, 5년 전 지독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앨범 발매를 일주일 앞둔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25년 간 많은 고민과 갈등,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며 자신의 가수 여정이 결코 무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Q. 정규 8집 ‘힘’(HIM, 2014) 이후 9집을 내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A. “작업하는 과정과 결과물, 그리고 성과에 있어 정규 앨범은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기 어렵다. 10곡 넘게 작업하고도 타이틀 곡 외에는 사장될 가능성도 크고, 이러한 노력을 사람들이 알아줄까 하는 걱정도 있고…. 오랜 기간 (정규 앨범을) 마음 속에 품고만 있다가 작년 초 쯤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아무 것도 없이 25주년을 맞고 싶진 않아 큰 용기를 냈다.”

Q. 큰 용기를 내면서까지 정규 앨범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A “그야말로 고집이다. 미니 앨범이나 25주년 베스트 앨범처럼 기존 곡들을 묶어 신곡만 살짝 얹는 것도 고려했는데, 성에 차지 않았다. 물론 피지컬(실물) 앨범 없이 온라인으로만 음악이 나와도 작품이지만,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프로젝트성으로 작업을 하면 곡에 애정을 담기가 어렵더라. 가수의 생각과 정서를 하나의 작품에 담는 것이 정규 앨범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조각 내서 보여드리긴 싫었다.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김범수의 정규 9집에는 타이틀곡 '여행'을 비롯해 10곡이 수록됐다. 싱어송라이터 최유리와 선우정아, 그리고 나태주 시인 등이 앨범에 참여했다. 사진 영엔터테인먼트.

김범수의 정규 9집에는 타이틀곡 '여행'을 비롯해 10곡이 수록됐다. 싱어송라이터 최유리와 선우정아, 그리고 나태주 시인 등이 앨범에 참여했다. 사진 영엔터테인먼트.

‘보고 싶다’, ‘슬픔 활용법’, ‘끝사랑’ 등 그간 김범수의 대표곡들은 일반적으로 고음·기교 등 가창의 기술적인 부분이 도드라진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다르다. “화려한 가창 기술보다는 가사와 메시지 전달에 필요한 소리·감성·호흡에 집중했다”고 김범수는 말했다.

Q. 보컬에서 화려한 기술을 걷어낸 이유가 있나.
A. “창법이나 목소리 색깔을 바꿨다기보다는 이번에는 노래의 메시지와 서정성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렇다 보니 기존에 많이 활용했던 테크닉(기술)이나 고음역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냈다. 사실 이번 앨범은 제가 평소 많이 듣는 음악 스타일을 반영했다. 악기도 단출하고 가사도 잘 들리는, 상당히 미니멀한 음악을 제가 좋아하고 있더라. 싱어송라이터 최유리·선우정아 등과 함께 작업했다.”

Q. 나태주 시인도 작사에 참여했는데. 
A. “나태주 시인의 여러 작품 중 ‘너를 두고’라는 시를 1번 트랙에 넣었다. 그의 시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힘을 갖고 있다. 현대인은 가진 것이 많아도 조금만 결핍이 생기면 불안하고 우울해 한다. 저 또한 비슷했다. 나태주 시인을 비롯해 예술가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넓은 들판에선 들꽃 하나 만으로도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건데, 여기서 제가 받은 위로를 대중들에 전하고 싶었다.”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김범수는 "이 시대와는 다소 맞지 않더라도 예전 선배 가수들처럼 노래의 길을 우직하게 걷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영엔터테인먼트.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김범수는 "이 시대와는 다소 맞지 않더라도 예전 선배 가수들처럼 노래의 길을 우직하게 걷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영엔터테인먼트.


Q. 타이틀 곡은 앨범 명과 같은 ‘여행’이다.
A. “홀가분한 느낌의 여행은 아니다. 처음 이 노래를 듣고 25년 동안 겪은 실패담이 떠올랐다. 노래에 무릎 꿇었던 순간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프로젝트 등이다. 그런데도 노래 끝 부분에 ‘여행을 떠나 봐야지’ 다짐하는 것이 너무나도 큰 힘이 됐다. 마치 제 음악 생활이 하나의 여행 같다는 생각을 했다.”

Q. 김범수도 노래에 무릎 꿇었을 때가 있었나.
A. “5년 전 20주년 공연 때 큰 슬럼프가 찾아왔다. 급성 후두염으로 당일에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는데, 감당이 안 되더라. 오히려 그날은 덤덤하게 넘겼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울거나 화내지 않고 감정 표출 없이 넘긴 뒤에 외상 후 스트레스가 심하게 왔다.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무대 공포증이 생기고, 노래하다가 음정이 흔들렸다. 목은 나았지만, 2년 정도 괴로움 속에 살았다.”

Q. 슬럼프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나. 
A. “예전엔 노래만 열심히 하면 됐는데, 이제는 다양한 것들을 해야 한다. 시대에 편승하려고 유튜브 등 여러 시도를 해보고 깨달았다. 결국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저 답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시대와 안 맞더라도 예전 선배님들처럼 정석의 길을 걷고 싶다. 일회성 프로젝트나 크리에이터는 부수적인 일이고, 바보 같을지라도 꾸준히 노래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담감도 컸던 ‘김나박이’(김범수·나얼·박효신·이수 등 보컬 3대장을 일컫는 말)의 왕관을 내려놓고, 노래를 좋아하는 내 모습으로 돌아가 가벼운 마음으로 오래 노래하고 싶다.”

숱한 발라드 명곡을 가진 그는 후배 발라드 가수들에 대한 조언도 했다. "발라드곡 스타일이 점점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운을 뗀 그는 "스탠더드 발라드는 대중이 이별하고 찾아 듣는 가장 가까운 노래여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술적인 부분이나 고음역대 싸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히트곡은 늘어나도 명곡은 나오지 않는 시대"라고 현 음악판을 진단한 그는 "가창자들이 목을 좀 아꼈으면 한다. 목은 '콸콸콸' 영원히 나오는 지하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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