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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명청 황제의 장수 요리, 표고버섯볶음

중앙일보

입력

 중국에서 건강한 농산물로 인식되고 있는 표고버섯. 게티이미지뱅크

중국에서 건강한 농산물로 인식되고 있는 표고버섯. 게티이미지뱅크

옛사람들은 버섯에 대해 묘한 환상을 품었다. 잘 먹으면 환상적인 맛이지만 잘못 먹으면 환각에 빠지거나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인지 버섯을 특별한 식품으로 여겼다. 이런 판타지는 나라마다 비슷하지만, 대상이 되는 버섯은 달랐다.

우리나라는 송이버섯이 으뜸이었다. 지금도 송이버섯을 좋아하지만, 옛날에도 특별했다. 고려말의 충신 목은 이색은 "바람 소리와 이슬을 먹고 자라는 고고한 송이버섯, 먹으면 온몸에 평온한 기운이 퍼진다"고 노래했다. 고려의 이태백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시인 이규보는 한술 더 떠서 "신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송이버섯을 먹는 것"이라고 읊었으니 우리 조상님들에게 송이버섯은 신선의 음식에 불과하였다.

고대 로마인들은 황제 버섯과 사랑에 빠졌다. 1세기 때 네로황제의 양아버지였던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황제 버섯을 먹다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이 버섯을 아주 좋아했는데 황후이자 네로의 어머니였던 소 아그리피나가 황제 버섯에 독버섯인 광대버섯의 즙을 바른 요리를 먹였다는 것이다.

아들 네로를 황제 자리에 앉히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황제가 된 네로, 전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버섯을 먹고 신이 됐다며 황제 버섯이야말로 신의 음식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황제의 버섯(Caesar’s mushroom)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네로황제가 신격화했던 이 버섯, 한국에서는 계란 버섯이라고 부르는 그저 그런 버섯 중의 하나다.

한국인 대부분이 좋아하고 즐겨 먹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버섯이 표고버섯인데 중국에서는 또 다르다. 대다수 중국인들 송이버섯은 중하게 여기지 않는 반면 표고버섯에 대해서만큼은 각별하다.

특히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표고버섯 볶음(燒香菇)은 진시황이 찾았다는 불로초까지는 아니어도 먹으면 오래 살 수 있다는 장수요리(長壽菜)로 꼽는다. 명나라 때 궁중요리로 발달하면서 얻은 별명이다.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명 태조 주원장이 지금의 남경인 금릉(金陵)에 수도를 정했는데 큰 가뭄이 들어 피해가 극심했다. 주원장이 기우제를 올리며 음주와 가무를 금지하고 식사 횟수를 줄이며 검소한 식사를 하는 등의 감선(減膳)을 하며 정성을 다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몇 개월째 이런 생활이 계속돼 속이 편치 않은 와중에 때마침 개국공신 유백온 장군이 고향인 저장성에서 남경으로 돌아왔다.

이때 고향에서 유명한 용천현(龍泉縣)의 표고버섯을 구해왔는데 황제 주원장이 식사를 못 하는 것을 보고 말린 표고버섯을 오랜 시간 물에 담갔다가 조미한후 표고버섯 볶음을 만들어냈다.

주원장이 젓가락을 들기도 전에 버섯의 향기에 취하고 맛보고는 그 심오한 맛에 감탄하며 연속해서 젓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맛있게 먹은 후 어떤 음식인지를 물으니 유백온이 박해를 피해 산속에 숨어 살던 사람이 이 버섯을 먹고는 100살까지 살았다는 표고버섯의 전설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마침내 비가 내려 기우제를 끝내고 궁으로 돌아온 주원장이 수시로 표고버섯 볶음을 찾으며 궁중요리로 발전하면서 얻은 별명이 장수채(長壽菜)라고 한다.

 쫄깃한 식감과 향긋한 표고버섯의 맛이 살아있는 표고버섯볶음. 바이두(百度)

쫄깃한 식감과 향긋한 표고버섯의 맛이 살아있는 표고버섯볶음. 바이두(百度)

주원장이 먹었다는 표고버섯 볶음이 오직 표고버섯만을 볶은 요리(素燒香菇)인지 혹은 청경채 등의 채소와 함께 볶은 요리(淸炒香菇)인지 내지는 말린 표고버섯 요리(乾炒香菇)인지는 알 수 없거니와 중국에는 워낙 다양한 표고버섯 볶음 요리가 많으니 그중 하나일 것이다.

명나라 건국과 함께 궁중요리로 발달했다는 표고버섯 볶음은 청나라에 이르러 더더욱 발전한다. 표고버섯과 닭고기를 함께 볶은 요리(炒鷄香菇), 오리고기와 함께 볶은 요리(香蕈鴨)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표고버섯 오리 볶음인 향심압은 청나라 전성기를 이뤄낸 건륭제의 잔칫상에 올랐다는 음식이다. 흔히 청 황제의 보양식이었다고 하는 이 요리, 표고버섯과 오리고기 죽순 등이 주재료이니 얼핏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 재료가 만만치 않다.

일단 향심(香蕈)은 표고버섯의 또 다른 이름으로 장수 식품이면서 중국에서는 버섯의 황후라고 할 만큼 최고의 버섯으로 여기는데 죽순 또한 구하기 어렵다는 겨울 죽순이 재료다.  오리 또한 흔하지만, 청 황실의 고향인 만주인들이 특별하게 여겼던 조류다. 건륭황제가 향심압을 좋아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앞서 언급한 스토리들 대부분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중국인들이 표고버섯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일단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표고버섯인 샹구(香菇)가 곧 버섯(香菇)의 대명사다.

게다가 표고버섯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옛날부터 이 버섯을 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던 모양이다. 13세기 초, 송나라 때 문헌인 『용천현지(龍泉縣志)』에 벌써 표고버섯 인공재배 기록이 보인다.

이런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있기에 중국 음식에 유난히 표고버섯이 많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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