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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북한이 또 서해에서 도발한다면…자폭 무인정에 주의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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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철재 기자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지난 14일(이하 현지 시간) 러시아 해군의 대형 상륙함인 체자르 코니코프함(3800t)이 흑해 크름반도 연안에서 사라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강력한 폭발음이 들리고 거대한 연기 기둥이 피어올랐다. 1986년 건조돼 조지아 침공과 시리아 내전에 참전했던 이 상륙함은 노보로시스크를 떠나 세바스토폴로 군수물자를 수송하던 중이었다.

해군 열세 우크라의 비밀 무기
러시아의 흑해함대에 큰 피해
김정은, 북방한계선 도발 엄포
예상치 못한 곳 허 찌를 가능성

러시아는 상륙함의 실종에 대해 입을 다물었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를 격침했다고 발표했다. 체자르 코니코프함을 가라앉힌 우크라이나의 무기는 자폭 무인정인 마구라(MAGURA) V5였다. 길이 5.5m의 마구라 V5는 최대 1t의 폭발물을 싣고 60시간, 400㎞까지 항해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무선으로 조종해 최고 속도 시속 80㎞로 적 목표물에 돌진한다. 우크라이나가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여러 척의 마구라 V5가 상륙함을 협공했고, 상륙함 좌현에서 두 차례 폭발이 일어났다. 러시아 헬기 조종사가 “잔해와 기름띠만 보인다”고 교신한 걸 우크라이나가 감청했다.

러시아 요격 시도 지그재그로 피해

지난 1일 흑해에서 우크라이나 자폭 무인정이 러시아 이바노베츠함에 돌진해 폭발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지난 1일 흑해에서 우크라이나 자폭 무인정이 러시아 이바노베츠함에 돌진해 폭발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우크라이나는 마구라 V5를 포함, 다양한 종류의 자폭 무인정을 운용하는 ‘그룹 13’이라는 전문 부대를 창설했다. 그룹 13은 지난 1일에도 자폭 무인정으로 러시아의 미사일 초계함인 이바노베츠함(550t)을 습격했다. 우크라이나의 동영상에선 초계함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근접방어무기체계(CIWS)인 30㎜ AK-630M으로 자폭 무인정을 요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폭 무인정이 지그재그로 움직여 포탄을 피하면서 애먼 물기둥만 솟아올랐다. 곧 화염이 세 번이나 튄 뒤 이바노베츠함이 침몰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한 전쟁은 아직 진행형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보다 군사력이 매우 뒤졌는데, 특히 해군에서의 격차가 가장 컸다. 우크라이나 해군에선 3500t급 미사일 호위함 1척만이 그나마 쓸만한 전력이었다. 이 호위함도 개전 후 러시아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우크라이나가 자침했다.

그러나 2년이 돼가는 전쟁에서 러시아는 해상에서도 우크라이나를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다. 침공 주역 중 하나인 러시아 흑해함대는 우크라이나의 해로를 봉쇄하거나 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엎기는커녕 생존을 걱정할 처지다. 21일 현재 흑해함대는 전체 함정 70척 중 14척을 잃었다. 흑해함대는 우크라이나 공격이 두려워 거점을 세바스토폴에서 노보로시스크로 옮겼다. 영국 국방부는 흑해함대 사령관인 빅토르 소콜로프 제독이 보직해임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바노츠함과 체사르 쿠니코프함의 피격에 대한 책임성 인사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자폭 무인정 마구라 V5. [유튜브 캡처]

우크라이나 자폭 무인정 마구라 V5. [유튜브 캡처]

절대적으로 밀릴 것만 같았던 우크라이나가 해전에서 오히려 러시아에 우세한 이유는 비대칭 전력 덕분이다. 우크라이나는 구축함이나 잠수함이 전무하지만, 대신 무인기와 미사일, 그리고 자폭 무인정으로 러시아에 맞서고 있다. 이중 자폭 무인정이 가장 유용했다. 우크라이나의 무인 자폭정은 2022년 10월 29일 초계함과 소해정 습격을 시작으로 끊임 없이 러시아 흑해함대의 함정을 타격했다. 크름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크름대교는 지난해 7월 17일과 8월 5일 우크라이나 무인 자폭정의 공격으로 교통이 잠시 끊어지기도 했다.

이같은 우크라이나 자폭 무인정의 활약상을 눈여겨보는 데가 바로 북한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해상전력 차이보다 한·미와 북한 간 차이가 훨씬 더 심하다. 그래서 북한은 자폭 무인정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자폭 무인정을 개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기묘하고 영활한’ 도발 노리는 북한

최근 북한이 서해에서 무력 도발을 벌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4일 신형 지대함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서 “(한국이) 국제법적 근거나 합법적 명분도 없는 유령선인 ‘북방한계선’을 고수하려 각종 전투함선을 우리 수역에 침범시키며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우리의 해상주권을 실제적 무력행사로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서다. 김정은은 앞서 지난달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선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북방한계선(NLL)을 수호하는 활동을 영해침범과 전쟁도발로 보고 북한이 무력행사하겠다는 엄포다. 앞으로 NLL에서의 도발에 대한 사전 명분 쌓기라는 분석이다. 김정은은 후계자였던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전의 배후였다. 그런데 북한은 기존과 똑같은 도발을 벌인 적이 없다. 김일성이 강조했다는 ‘기묘하고 영활한 전술’에 따라 예상도 못 한 곳에서 허를 찌르려 한다. 천안함 피격처럼 진범을 가려내기 힘들고, 한국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다면 더 선호할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자폭 무인정일 게다. 군 당국도 북한이 자폭 무인정으로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자폭 무인정은 작고 빨라 이를 탐지하고 조준하는 게 어렵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군은 NLL 해상을 공중에서 감시하다, 자폭 무인정을 발견하면 즉시 영격(迎擊·맞받아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대형 무인기에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자(攻者)는 시기와 장소, 방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정할 수 있는 반면 방자(防者)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자폭 무인정과 같은 신기술은 전쟁에서 공격을 이롭게 한다. 군 당국이 ‘창을 베고 갑옷을 깔고 앉는다’는 침과좌갑(枕戈座甲)의 전투태세를 항상 갖춰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