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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첫 공탁금 수령…日 언론 "한일관계 영향 한정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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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배상금 명목은 아니지만 일본 피고 기업이 낸 자금을 처음으로 실제 수령한 가운데 일본 언론은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은 한정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윤석열 정부가 마련한 3자 변제안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 보상이 일정 부분 이뤄졌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정부도 윤덕민 주한 일본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지만, ‘확전’에는 선을 긋는 분위기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21일 “소송에서 패소한 일본 기업(히타치조선)의 자금이 원고 측에 전해진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유사 소송이나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내다봤다.

전날 강제징용 피해자 고(故) 이모씨의 유족은 히타치조선이 국내 법원에 맡겨둔 공탁금 6000만원을 받았다. 앞서 히타치조선은 이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는데,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는 한국 내 자산 매각 절차를 멈춰달라며 6000만원을 담보로 공탁했다. 이씨 측은 승소 판결이 확정된 뒤 해당 공탁금에 대한 법원의 압류 명령을 받아냈고, 실제 수령까지 했다. 공식적으로 히타치조선이 ‘배상금’을 준 것은 아니지만, 재원이 히타치조선의 자금인 만큼 피해자 입장에서는 사법 정의를 일부 실현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앞서 강제징용 피해 배상과 관련, 일본 정부는 일본 피고 기업의 한국 내 자산 매각 등 실질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사실상의 ‘레드 라인’으로 설정하고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런데도 파급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본 배경에 대해 마이니치는 3자 변제안을 이유로 들었다. 지난 3월 윤 정부의 제안에 따라 한국 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 피해자들에 배상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최대 외교 현안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해법을 지난해 3월 공식 발표한 가운데 최근 강제동원 피해자의 공탁금 수령이 이뤄졌다. 사진은 대위 변제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최대 외교 현안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해법을 지난해 3월 공식 발표한 가운데 최근 강제동원 피해자의 공탁금 수령이 이뤄졌다. 사진은 대위 변제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연합뉴스

마이니치는 “일본제철 등이 패소한 다른 소송에서는 (피해자가) 재단으로부터 배상 상당액을 지급받았기 때문에 이번 공탁금 수령이 일한(日韓)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한정적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대위변제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일본 기업 자산 강제 매각 등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히타치조선과 달리 앞서 패소가 확정된 미쓰비시중공업이나 일본제철은 공탁금을 납부하지 않았기에 피해자들이 압류할 수 있는 현금이 없다.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은 “일련의 소송에서 일본 기업의 자금이 넘어간 것은 처음”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공탁금 수령 사실을 전하면서 “일본 기업이 자금 면에서 실질적으로 손해를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공탁금 지급이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 “유감 표명”

일본 정부는 이날 윤덕민 대사를 불러 피해자의 공탁금 수령에 대해 항의했다. 오카노 마사타카((岡野正敬) 외무성 사무차관은 윤 대사에게 “극히 유감”이라고 밝혔다고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이와 관련, 그는 전날 기자회견에서도 “(공탁금 지급은)한·일 청구권 협정을 명백히 위반하는 판결로 일본 기업에 부당한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공탁금 수령이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질문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현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적절히 관리하고, 상대방과 긴밀히 의사소통을 꾀하는 것은 정부로서 당연한 책무”라며 “정부의 일관적인 입장을 기반으로 적절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여기엔 이번에 피해자가 수령한 돈이 히타치조선의 자금이기는 하지만, 공탁금 형식이었기 때문에 징용 범죄에 대한 책임을 전제로 한 배상금으로서의 성격을 희석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또 일부 피해자들이 거부하고 있지만, 윤 정부의 3자 변제안으로 배상 조치가 일부 이뤄지면서 징용 문제에 발이 묶였던 한·일 관계가 전환점을 맞은 만큼 신중한 접근을 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다만 법원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배상금 수령을 거부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판결금 공탁에 제동을 걸고 있는 만큼 3자 변제안을 통한 징용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 속속 유사 소송의 피해자 승소 판결이 확정되면서 배상금을 받아야 하는 대상은 늘어나는 가운데 기업의 참여 부족 등으로 3자 변제의 재원 자체가 고갈될 위기에 처해 징용 문제가 다시 양국 갈등의 불씨로 재점화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한편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윤 대사가 초치됐을 때 “양측 입장에 근거한 언급이 있었다”며 “한·일간 현안에 대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공탁금 출급에 대해서는 “관계법령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공탁금이 출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구체적 평가는 자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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