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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노조가 장악한 한국 노동시장 AI 급습…격차 심화, 일자리 파괴 불가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공지능(AI)이 노동시장에 이중구조를 고착화하는 등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러스트=김지윤]

인공지능(AI)이 노동시장에 이중구조를 고착화하는 등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러스트=김지윤]

대·공기업 정규직 중심의 기득권 노조가 장악한 노동시장에 인공지능(AI)이 급습하면서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격차)가 고착화하고 심화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조가 울타리형 노동시장을 형성하면서,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이 소외되는 현상이 빚어졌고, 이런 이중구조가 AI 시대를 만나면서 더 심각한 양상으로 확산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나아가 이 상태에서 AI 시대에 맞춘 노동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노동시장 전체의 일자리를 잠식하고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곁들여졌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21일 제주에서 열린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동계학술대회 기조 강연을 통해 이런 내용의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한국 노동시장 대기업 노조 '핵인싸'로 이중구조 심화"

조 교수는 "한국 노동시장은 대기업·정규직 노동시장으로 가는 진입 장애, 병목, 낮은 유속 때문에 '끊어진 사다리' '함정'으로 표현되는 이중구조가 갈수록 심화해 고착화 단계"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비정규직→정규직, 같은 정규직이라도 중소기업→대기업으로의 상향 이동이 제한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며 "이로 인해 정규직은 대기업, 비정규직은 중소기업에 집중화하는 경향이 확연하다"고 말했다. 대·공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형성된 노조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중소기업 근로자와 비정규직이 1차 노동시장(대·공기업)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끊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얘기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사 교섭이 타결된 2022년 7월 22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에서 유최안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가로·세로·높이 1m크기 철구조물안에서 농성을 마치고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다. 송봉근 기자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사 교섭이 타결된 2022년 7월 22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에서 유최안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가로·세로·높이 1m크기 철구조물안에서 농성을 마치고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다. 송봉근 기자

법원의 시장 환경 도외시한 판결, 이중구조 고착화 부채질

시장 원리나 환경을 무시한 법원의 판결도 이런 격차 벌리기와 고착화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조 교수의 진단이다. 조 교수는 "예컨대 2013년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 이후 노동시장은 갈등이 고조되고, 자율과 자치 대신 법원으로 달려가는 갈등의 사법화 현상이 일상화했다"며 "각종 수당의 임금성 여부는 다양한 수당이 존재하는 대기업 정규직 유노조 사업장만의 문제다.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는 '그들만의 향연'으로 비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이 판결로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져 결과적으로 이중구조를 심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 같은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AI의 습격으로 더 악화하는 상황으로 치달아 어쩌면 치유가 힘든 지경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디지털이 기반인 산업 4.0 시대에도 불구하고 1차 노동시장(대·공기업)에 부합하는 경직적 공장 노동법과 단체협약 때문에 기술투자와 신기술 도입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기업으로선 글로벌 경쟁력 약화를 우려할 수밖에 없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2차 노동시장(중소기업·하청)으로 과도한 아웃소싱이 유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설명했다.

AI의 습격에 대기업, 경직성 피하려 과도한 아웃소싱 우려

그렇다고 2차 노동시장에서 일자리가 창출될 가능성도 작다는 것이 조 교수의 진단이다. "중소기업도 인력난 문제를 로봇화와 스마트 팩토리로 해소하려 들 것이 뻔해 일자리 창출 역량의 급속한 쇠락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스마트팩토리로 불리는 독일 지멘스의 암베르크 공장.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해 연간 1000종이 넘는 제품을 1200만개 생산하지만 불량률은 0.0009%에 불과하다. 사진 지멘스

세계 최고의 스마트팩토리로 불리는 독일 지멘스의 암베르크 공장.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해 연간 1000종이 넘는 제품을 1200만개 생산하지만 불량률은 0.0009%에 불과하다. 사진 지멘스

조 교수는 특히 "AI 활용에 비교적 앞서 나가는 대기업은 임금이 증가하겠지만, AI 미활용 부문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해 양극화는 심화하고 노동시장 전반의 고용 불안도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상당수 대기업은 단체협약의 경직성을 우회하기 위해 관계사와 자회사 설립을 통로로 삼을 것"이라며 "우물쭈물하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기업은 대량 구조조정에 휩싸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마디로 "AI가 노동시장 구조를 복잡다기화해 이중구조를 다층복합화하는 형태로 변형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AI의 기본 속성은 유연성…경직된 법과 관행은 일자리 파괴"

조 교수가 이런 지적을 하는 이유는 AI가 가진 속성 때문이다. 조 교수는 "AI의 기본적인 속성은 유연성"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노동시장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AI의 이 속성을 간과하면 AI 확산에 따른 노동시장의 영향, 그로 인한 이중구조를 탐지하기 어렵게 되고, 당연히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도 못 한 채 뒤처질 위험에 노출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AI의 유연성을 수용하는 형태로 현재의 경직된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꾸거나 최소한 따라가는 정도라도 유연한 체계로 개편이 필요하다"고 조 교수는 제안했다. "경직된 노동시장과 법·제도가 AI에 의해 침식당해 결국 일자리 파괴로 이어질 위험이 아주 높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곁들여서다.

조 교수는 이런 진단·분석을 바탕으로 "AI 시대에 노동시장의 성과는 경직성 타개, 지식산업화 전환, 노사관계의 협력성 제고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다루는 방식이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답습할 경우 해결책을 찾기는커녕 AI에 의해 노동시장이 더 크게 침식당한다는 경고다.

2022년 7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킥오프 회의가 열리고 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6월 23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을 위해 연장근로시간 월 단위 관리 허용,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등에 대해 논의했다. 연합뉴스

2022년 7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킥오프 회의가 열리고 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6월 23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을 위해 연장근로시간 월 단위 관리 허용,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등에 대해 논의했다. 연합뉴스

"원·하청 상생에 노조의 배려가 절실"

조 교수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상태에서 이중구조가 더 심해지면 인력의 유휴화 문제를 악화시켜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게 된다"며 "설상가상으로 수도권 1차 노동시장(대기업)으로 인력의 쏠림이 심화하면 수도권-지역 간 편중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교수는 AI 시대 이중구조 고착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으로 5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일자리 정책을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찾는 'Less for Better'에서 벗어나야 한다. 'More and Better'(다다익선)를 근간으로 삼되 비정규직-정규직 전환의 가교 기능을 강화하는 정책을 가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서류전형, AI 면접 전형, 프로젝트 역량 테스트, 임원 면접 등 취준생에게 스펙 쌓기를 강요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인턴이나 체험형 일자리를 활성화하고, '인턴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해 누적 관리하는 등 경력 산정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조 교수의 주장이다.

법치를 확립한 뒤 자치와 상생으로 이어지는 노사관계 개혁의 방향. [조준모 교수]

법치를 확립한 뒤 자치와 상생으로 이어지는 노사관계 개혁의 방향. [조준모 교수]

"착한 사마리아 원청을 제재하는 파견법, 개정 시급" 

원·하청 상생의 방식도 전환을 요구했다. 예컨대 원청의 상생 기금 조성에 노조도 반드시 참여하도록 하고, 여기에 정부가 보탬을 주는 방식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온전히 부담하는 방식은 이중구조 타개책으로는 명분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조 교수는 "노조가 내는 출연금의 매칭액과 효과성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착한 사마리아 원청'에 대한 규제는 예외로 해야 한다"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원청의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 활동이 불법파견으로 둔갑하는 현재의 법체계에서는 원하청 상생을 통한 이중구조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따라서 원청이 하청업체 직원을 교육하거나 인사정책의 전문성을 확보하도록 돕는 행위, 설비와 기자재를 나눠 쓰거나 공동 소유하는 경영, 복리후생을 돕는 작업에 대해서는 '불법파견'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파견법의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조 교수는 "여기에 더해 저출산 고령화에 대비한 노사의 공동 대처, 산업 안전과 재해 예방을 위한 노사 자치의 강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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