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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알선하며 '산재브로커' 역할…"노무법인 등 11곳 수사의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노무법인들이 특정 병원을 알선하며 높은 수임료를 받는 등 ‘산재 브로커’ 역할을 한 정황이 정부 조사로 파악됐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등을 통해 노무법인 등을 매개로 한 산재 카르텔 의심 정황을 확인해 수사의뢰 조치를 취했다고 20일 밝혔다.

고용부에 따르면 재해자 A씨는 노무법인이 선택한 병원에서 난청 진단을 받았다. A씨가 “집 근처도 병원이 많은데 왜 그렇게 멀리 가느냐”고 묻자, 노무법인은 ‘본인들과 거래하는 병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병원으로 이동할 때도 노무법인이 차량으로 데려다주고, 진단과 검사비 모두 법인에서 지급했다. 이후 소음성 난청 승인으로 공단에서 4800만원을 받은 A씨는 수임료로 약 30%에 해당하는 1500만원을 법인에 지급했다.

또 다른 재해자 B씨도 노무법인이 추천한 병원에서 관절염 진단을 받았고, 역시 재해보상금의 30%에 해당하는 700만원을 수임료로 냈다. 고용부는 일부 노무법인들이 이러한 영업행위를 통해 기업형으로 연 100여건 사건을 수임해 높은 수임료를 챙겼다고 보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관계부처 문의 결과 특정 병원을 알선하고 대가를 받는 행위는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어 사정당국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산재 상담과 신청을 변호사나 노무사가 아닌 사무장 등 사무소 직원이 전담하는 ‘명의대여’ 사례도 적발됐다. 재해자 C씨는 산재 소송을 위해 변호사 사무소를 찾았지만, 정작 담당 변호사는 한 번만 만나고 나머지는 사무소 직원이 담당했다. 재해자 D씨가 만난 노무법인 직원은 스스로를 노무사라 속이기도 했다.

이 장관은 “지금까지 파악한 위법 정황을 토대로 공인노무사 등 대리 업무 수행 과정 전반을 조사하고, 노무법인과 법률사무소 등 11개소에 대해 처음으로 수사 의뢰했다”며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공인노무사에 대한 징계, 노무법인 설립 인가 취소 등 엄중히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부정수급 의심 사례 883건을 조사해 486건의 부정수급 사례를 적발했다. 적발액은 약 113억2500만원이다. 고용부는 부당이득 배액 징수, 장해등급 재결정, 형사고발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또한 부정수급이 의심되는 4900여건에 대해선 근로복지공단이 자체 조사를 진행한다. 공단은 박종길 이사장이 직접 단장을 맡고 7개 권역별 지역본부장이 팀장을 맡는 ‘부정수급 근절 특별 태스크포스(TF)’도 구성해 무기한 가동하기로 했다.

산재보험 악용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에도 나선다. 대표적으로 소음성 난청 산재의 경우 승인 건수와 보상급여액이 2017년 대비 2023년(1~10월) 약 5배 늘었다. 고용부는 2017년 소음성 난청 산재 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사실상 사라진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에 지난달 30일 의사 등 외부 전문가로 이뤄진 ‘산재보상 제도개선 TF’를 발족해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근로복지공단 역시 자체적으로 ‘산재보험 운영 개선 TF’를 구성했다.

반면 노동계에선 정부가 일부 부정수급 사례를 카르텔로 몰아간다고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부정수급은 철저히 조사하고 걸러내는 것이 맞지만, 과연 이 정도를 가지고 산재 카르텔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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