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전환(피벗이)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기업의 이자 부담 고통도 커지고 있다. 특히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과 업황 부진을 겪고 있는 건설업 등 일부 업종이 고금리 부담의 약한 고리로 꼽힌다.
GDP 대비 기업 부채 사상 최대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 신용(비금융기업의 부채 중 대출금·채권·정부융자 잔액 합계) 비중은 12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기업 부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더 빠른 속도로 확대하는 중이다. 코로나19로 일시적 불황을 겪은 기업들이 저금리를 활용해 대출을 빠르게 늘렸는데, 이후 금리 인상까지 겹치면서 이자 부담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2010년 1분기~2019년 4분기) 기업 신용 평균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4.8%였지만, 코로나19 이후(2020년 1분기~지난해 2분기)에는 9.9%로 증가율이 2배 이상 늘었다. 특히 지난해 3분기 은행의 기업대출(1241조원)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875조8000억원)과 비교해 41.7%(365조2000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비은행 기업대출은 95.4%(288조9000억원) 급증했다.
이자 대비 적자 10배인 부실기업 급증
문제는 예상보다 고금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렇게 늘어난 기업 부채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19일 금융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이자보상비율(이자비용 대비 영업이익)이 -10 미만인 부실기업의 부채가 총 기업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6.8%에서 2022년 11.76%로 급증했다. 이는 금융연구원이 외부감사법인 중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3만4785개 기업(2022년 기준)의 회계를 분석해 산출한 결과다. 이자보상비율이 -10 미만이면, 이자 부담보다 적자 폭이 10배 이상 크다는 의미다.
한계 중소기업도 50% 가까이 늘어
특히 중소기업일수록 이러한 부채 부담을 더 크게 느꼈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금리 상승이 빠른 비은행권 부채가 상대적으로 더 많아서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 당시 늘어난 비은행권 기업대출의 94%가 중소기업 대출에 집중했다.
한계 중소기업의 수도 급증했다. 경기 부진에 고금리 상황이 겹치면서, 벌어들이는 돈보다 이자 부담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IBK기업은행에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기업은행과 거래 중인 한계 중소기업은 1만5694개로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1만513개)과 비교해 49.2% 늘었다. 한계 중소기업은 3년 연속 버는 돈보다 이자 부담이 큰 기업(이자보상비율 1 미만)으로 분류했다.
부동산업 이자 부담 급증…“76.4% 이자 못 내”
이자 부담은 다른 업종과 비교해 특히 부동산 관련 기업에서 많이 늘었다. 금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업종 전체 부채 중 이자보상비율이 -10 미만인 기업의 부채 비율을 의미하는 부실률은 전기가스업(35.83%)·부동산업(13.95%)·건설업(9.94%) 순이었다. 전기가스업에 한국전력 부채가 포함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부동산업 관련 부실률이 다른 업종에 비해 특히 도드라졌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사업 진행에 있어 다른 업종보다 많은 대출을 필요로 하는 부동산 기업 특성상 경기 부진과 고금리가 직격탄이 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 500대 건설기업을 조사해 본 결과, 응답자(102개사)의 76.4%가 현재 기준금리 수준에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가 오르면 기업 대출도 줄어들어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가계 대출보다 규제가 많지 않다 보니 증가율이 가팔라지는 상황”이라면서 “금융사들이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에대출보다 투자할 수 있도록 정책적 유도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