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발니 의문사에 정부 "철저한 조사를"…선명한 목소리 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5선을 노리는 다음달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그의 최대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의문사한 것과 관련해 한국이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방이 한 목소리로 러시아에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가운데 '가치 외교'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도 이에 보조를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러시아 영사관 근처에 알렉세이 나발니의 사진과 그를 추모하는 꽃이 놓여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지난 17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러시아 영사관 근처에 알렉세이 나발니의 사진과 그를 추모하는 꽃이 놓여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철저·투명 조사 필요"

외교부는 19일 나발니의 사망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 질의에 "러시아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온 나발니의 사망을 애도한다"며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입장 발표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나발니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지 사흘 만이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국가들과 호주 등 주요국이 나발니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사실상 푸틴을 배후로 지목한 가운데 정부의 침묵은 상대적으로 길게 이어졌다. 이에 보편적 가치와 관련된 사안에서 선택적 접근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러시아 대사관 인근에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는 사진과 꽃이 놓인 모습. AP. 연합뉴스.

지난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러시아 대사관 인근에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는 사진과 꽃이 놓인 모습. AP. 연합뉴스.

이전에도 정부는 보편적 인권 문제에서도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를 보여 비판을 사기도 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2년 4월 우크라이나의 부차 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대학살 사건에 대해 한국은 러시아를 언급하지 않은 채 상황 자체에 대해 "심각한 우려"만 표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지난해 10월 중국 내 신장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유엔 성명에 불참해 뒷말을 낳았다.

하지만 나발니의 사망과 관련해 내놓은 정부 입장은 다소 늦긴 했어도 이전에 비해 보다 선명해진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나발니의 러시아 반체제 활동을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평가하는 한편, 그의 사망에 대한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도 촉구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가 지난 16일 산책 후 쓰러졌고 응급 조치를 했지만 살리지 못했다"며 사인을 심장 마비로 발표했는데, 정부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표현하며 나발니 사망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한 건 사실상 이런 러시아의 공식 입장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취지로도 볼 수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는 사진과 꽃이 놓인 모습. AFP. 연합뉴스.

지난 1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는 사진과 꽃이 놓인 모습. AFP. 연합뉴스.

"푸틴이 책임 져야"…한 목소리 규탄

이는 윤석열 정부가 표방해온 가치 외교 기조를 반영한 입장이라는 평가다.

특히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후 주요 20국(G20) 외교장관회의가 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출국해 미국, 일본 등 동맹 및 주요 우방국 카운터파트와 상견례를 겸한 대면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북·러 간 불법적 군사협력 등이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큰 만큼 이를 앞두고 나발니 사망 관련 입장에서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보조를 맞출 필요성도 고려했을 수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식 직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식 직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실제 나발니의 죽음 직후 서방은 일제히 러시아를 비난했다. 나발니를 추모하는 집회도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사망 당일인 지난 16일(현지시간) "푸틴과 그의 깡패들(thugs)이 나발니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푸틴을 비난했다.

유럽연합(EU)도 이날 일제히 러시아를 규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공동 성명을 통해 "나발니는 푸틴과 그의 정권에 의해 천천히 살해됐다"며 "러시아 지도부의 책임을 묻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러시아 세인트피터스버그에서 알렉세이 나발니 추모 행사에 참석한 시민을 경찰이 체포하는 모습. EPA. 연합뉴스.

지난 17일(현지시간) 러시아 세인트피터스버그에서 알렉세이 나발니 추모 행사에 참석한 시민을 경찰이 체포하는 모습. EPA. 연합뉴스.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도 이튿날인 17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나발니의 구금에 분노를 표한다"며 러시아를 향해 "나발니 사망의 정황을 충분히 밝히고 정치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핍박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이날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호주는 나발니의 비극적인 죽음에 애도하고 있다"며 "그가 받은 대우는 용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도 이날 취재진에 "러시아 정부가 나발니가 받은 대우와 죽음에 유일한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얀 리파브스키 체코 외무장관도 지난 16일 "러시아는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2015년 괴한 총격 사망)와 나발니처럼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이들을 죽이는 폭력적인 국가가 됐다"며 "그들은 푸틴에 맞서다 구금되고 고문 당한 끝에 숨졌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