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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향은의 트렌드터치

그릿한 미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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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작심삼일(作心三日). 아마도 남녀노소 통틀어 모두에게 가장 유명한 사자성어가 아닐까 싶다. 언제나 새해면 어김없이 등장하고 입춘이 지난 2월의 중간인 지금쯤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숨이 턱까지 차서 그만두고 싶을 때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며 한 발자국 더 내디딜 수 있는 정신, 이 투지와 인내심을 가리켜 ‘그릿’이라고 한다.

그릿(grit)이라는 단어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앤젤라 더크워스가 2016년 저서로 출간해 전세계 베스트셀러가 되며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영어로 ‘모래’, ‘모래알’을 의미하는 ‘grit’에서 유래되었다. 동시에 Growth(성장), Resilience(회복), Intrinsic Motivation(내재적 동기), Tenacity(끈기)의 맨 앞 알파벳을 딴 조어이기도 하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격적 특성으로 정의되는 그릿은 일명 ‘성공의 비밀’로 불리우며 타고난 능력이나 재능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로 회자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고 투지를 발휘하는 것은 성취에 필수적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릿을 키우고 강화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노력한다.

투지와 인내력 가리키는 그릿
트렌드를 캐치하는 필수 역량
지나치면 그릿의 저주에 빠져
조정과 유연성의 지혜 길러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발 빠르게 트렌드를 캐치하는 능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내와 끈기의 내공에 비례한다. 눈코 뜰 새 없이 신기술이 출현하며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바뀌고 있고, 그에 맞춰 배울 게 넘쳐나는 사회가 되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기존의 지식과 기술이 빠르게 구식화되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소용돌이에서 중심을 잡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기존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학습과 개발이 필요하다. 미래를 내다보는 트렌드 예측은 의외로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잘 내다보기 위해서는 잘 뒤돌아봐야 하는 법, 숨 가쁜 변화 속에서 민첩함만큼이나 중요한 역량은 의외로 ‘그릿’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는 트렌드란 대개 당시엔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을 추적하고 변곡점들을 관리하며 패턴들을 쌓고 익혀 내공을 갖춰놔야만 새로운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과거의 데이터와 사례를 꼼꼼히 분석하고,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습득하며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은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 관용어가 된 ‘어제는 내일의 거울’은 아인슈타인의 명언이다. 시간은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연관적이고 반영적이라는 상대성 이론과 같은 과학적 개념을 차치하더라도 이는 과거의 경험이 미래를 반영하고, 현재의 행동이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의미를 자연스레 환기한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아인슈타인은 그릿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수백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업적을 이루어 낸 위대한 과학자가 아니던가.

다만 모든 부작용은 맹목적 믿음과 남용에서 시작되듯 그릿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릿을 지나치게 추구함으로써 필요 이상으로 강조해 그 결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과도한 노력과 열정으로 인해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맞닥뜨리는 그릿의 저주에 빠지기 쉽다. 그릿의 저주에 빠지면 끈기있게 노력하면서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희생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불굴의 의지는 자칫 복수와 야망, 질투처럼 제거하기 힘든 강박에 사로잡히는 것과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릿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앵글이 필요하다. 이는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으며 때로는 적절한 휴지기, 때로는 ‘그만둠’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그릿의 저주로 들어가는 문은 불안함의 발로에 있다. 냉정하게 말해 성공만을 바라는 본인을 속이기 위한 자기 위안이기 쉽다. 그래서 불안을 꺼내어 직면하는 것에서부터 그릿은 시작된다. 성공적인 그릿에는 목표 달성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인지하는 능력 또한 필요하다. 무턱대고 열심히 하는 것은 그릿이 아니라 미련함이자 아둔한 고집일 수 있다. 목표지향적이고 인내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같지만, 유연성과 목표의 유효성에 따라 그릿과 고집은 확연히 구분된다. 조정과 유연성의 지혜는 더 오래 갈 수 있는 그릿의 윤활류다. 그 유연성에는 조력자가 포함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인디언 속담은 인생길이나 경영의 길 모두에 해당된다. 당신은 앞날에 뭐가 있을지 몰라 두려운가 아니면 설레는가. 시대적 흐름에 맞춘 성공적인 그릿을 시작하되 항상 그릿의 저주를 경계하라.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