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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AI 앵커’가 하고 싶은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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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샤오위(小雨)’와 또 다른 ‘샤오위(小宇)’. 지난 설 명절 때 중국 항저우(杭州)방송에 등장한 AI(인공지능) 앵커 이름이다. 표정은 자연스러웠고, 말씨는 매끄러웠다. 그들 덕택에 실제 앵커 위천(雨辰)과 치위(麒宇)는 귀성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중국 언론은 자국의 AI 기술 수준을 과시했다며 환호했다.

‘중국의 AI 굴기는 성공할 것이다.’ 새해 아침 ‘샤오위 앵커’가 중국인에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였다. 과연 그럴까.

항저우 방송에 등장한 AI 앵커 ‘샤오위’와 또다른 ‘샤오위’. 몸짓과 말씨가 실제 인물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합뉴스]

항저우 방송에 등장한 AI 앵커 ‘샤오위’와 또다른 ‘샤오위’. 몸짓과 말씨가 실제 인물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합뉴스]

2017년 5월 바둑기사 커제(柯潔)와 알파고의 대국이 벌어졌다. 3:0. 중국 바둑 천재는 처참히 깨졌다. 중국은 이를 일과성 행사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두 달 후 국무원(중앙정부)은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발표한다. “2030년까지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톱 AI 국가가 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굴기의 시작이다.

거리거리 설치된 CCTV는 14억 인구 전체의 얼굴을 찍을 기세였고, 그렇게 쌓인 데이터는 AI 안면 인식 기술로 발전했다. 정부는 ‘마음대로 찍어도 된다’며 기업에 날개를 달아줬다. 사회 감시 수요가 AI 기술을 앞당긴 셈이다. 중국 AI는 음성인식, 자율주행, 공장 로봇 등으로 확산하며 실력을 쌓았다. ‘샤오위 앵커’는 그 파생 품이다.

순조롭던 중국 AI 굴기에 브레이크가 걸린 건 2020년 11월이었다. 당시 등장한 챗GPT는 전쟁터를 대화형 AI 챗봇으로 바꿨다. 죽으라고 정상을 향해 달려왔는데 ‘엇, 여기가 아니네~’라는 꼴이다. 바이두(百度)가 어니봇(文心一言)을, 알리바바가 통이첸원(通義千問) 챗봇을 잇달아 내놨지만, 격차를 줄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그들에게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물으면 답을 못 낸다. 체제의 한계다.

반도체는 더 큰 문제다. 미국은 고사양이든, 저사양이든 중국으로의 AI 반도체 유입을 꽉 틀어막았다. 엔비디아의 GPU(그래픽 처리 장치)가 없는데 어찌 똑똑한 AI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미·중 기술 격차는 엄연한 현실이 됐다.

중국은 반격을 노린다. 정부는 주요 IT 빅 테크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과 스크럼을 짜고 AI 반도체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다. 기초 과학 역량은 충분하다. 중국은 AI 관련 논문에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미국을 압도한다. 중국이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면서 미-중 AI 패권 전쟁은 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 아직 죽지 않았어.” 그게 항저우방송국 ‘샤오위 앵커’가 세상에 전하려는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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