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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 받고 "추행 없었다"…작년 위증사범 26% 증가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8월 창원지검은 강제추행 사건에서 핵심 증인인 피해자의 친구 A씨를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A씨는 가해자로부터 100만원을 받고 “피해자가 과거에도 합의금 노리고 허위 고소한 전력이 있다”, “피해자는 강제추행 피해를 호소한 적이 없다”고 하는 등 법정에서 허위 증언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가해자가 무죄를 받으면 더 많은 돈을 받기로 약속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돈으로 증인을 매수해 위증을 교사한 사례다.

지난해 위증 사범 622명…전년보다 사법방해 25.7% 늘어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18일 대검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이 적발한 위증사범은 총 622명으로 2022년(495명)보다 25.7% 늘었다. 위증사범 적발 건수는 2019년 589명에서 2021년 372명으로 줄어들었다가 2022년 495명으로 늘었다. 검찰은 2021년 1월 검찰의 직접 수사 범죄 범위가 6대 범죄(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부패·경제)로 축소되며 위증 적발 건수가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2022년 8월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검수원복’ 시행령으로 사법질서 저해 범죄의 하나로 위증을 수사할 수 있게 하면서 적발 사건이 늘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 사건에서 위증 시도가 그만큼 잦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한 만큼 이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공존한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고인이나 변호사가 재판에서 내용을 부인할 경우 검사가 조사 과정에서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됐고, “검찰 진술 내용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위증까지 가볍게 일어나는 분위기”가 됐다는 것이다.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재판에서 '거짓 알리바이' 증언을 부탁한 혐의를 받는 박모씨와 서모씨가 지난달 15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재판에서 '거짓 알리바이' 증언을 부탁한 혐의를 받는 박모씨와 서모씨가 지난달 15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대장동 정치자금 수수’ 재판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김 전 부원장에게 허위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이 대표의 대선후보 캠프 관계자 2명이 이홍우 전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장에게 김 전 부원장 재판에 나가 위증을 하고, 허위 증거를 내도록 교사한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전 원장과 변호인은 김 전 부원장이 돈을 받았다고 지목된 날짜와 장소(2021년 5월 3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사무실)에 가지 않고 다른 곳(이 전 원장 사무실)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이 전 원장의 갤럭시 휴대전화 일정표(캘린더)를 조작한 뒤 사진을 찍어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재판부가 원본 휴대전화를 제출하라고 명령하자 이를 거부하면서 위증 사실이 드러났다.

챗GPT까지 동원…방어권 침해 지적에도 檢 위증 민감도↑

마약투약ㆍ소지 등 혐의로 지난달 징역형을 서고받은 김모씨가 챗GPT를 이용해 검찰·법원에 제출한 가짜 탄원서. 서울중앙지검.

마약투약ㆍ소지 등 혐의로 지난달 징역형을 서고받은 김모씨가 챗GPT를 이용해 검찰·법원에 제출한 가짜 탄원서. 서울중앙지검.

위증죄는 증인이나 피의자의 법정 진술이 객관적 사실과 다르다(허위)는 점뿐만 아니라 진술한 사람의 기억과도 배치된다는 것까지 입증해야 해 까다로운 수사로 꼽히지만, 재판지연 전략 등 사법방해 시도가 잦아지며 검찰은 위증 수사에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위증 혐의는 그 자체로 증거인멸 정황에 해당해 구속사유로 이어지는 등 부수적인 효과도 존재해서다. 거꾸로 위증 수사가 피의자나 증인의 진술을 위축시킬 수 있어 변론권·방어권을 지나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검찰은 다양한 유형의 위증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폭사건에선 위력을 동원한 위증교사 사례도 등장해서다. 지난달 대구지검 김천지청은 탈퇴한 조직원을 식칼로 난자하고, 경쟁조직원들과 집단으로 대치한 혐의로 경북 구미시 지역토착 폭력조직인 구미 효성이파 조직원들을 본사건 외에 위증 및 위증방조 혐의로도 기소했다. 먼저 재판을 마친 선배 조직원들은 후배들을 접촉해 중간급 조직원인 B씨에 대해 “범행에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진술하라”고 회유·압박한 혐의를 받는다.

최근엔 챗GPT를 동원해 ‘가짜 탄원서’를 작성한 뒤 검찰과 법원에 제출한 마약사범이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위증은 사건 실체를 왜곡해 범죄자가 처벌받지 않게 하거나 반대로 죄 없는 사람을 처벌받게 해 억울한 사람을 만든다”며 “신문조서의 내용만 부인해도 재판에서 공범 관계를 새로 입증해야 하는데, 위증수사까지 이어질 경우 수사력을 낭비시키는 중대범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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