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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구제해준다면서요?"…세입자 두번 울린 '4대 문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인천 건축왕 전세사기로 2700여 세대가 피해를 봤다. 지난해 4월 피해 아파트 베란다에 전세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현수막이 붙었다. 연합뉴스

지난해 인천 건축왕 전세사기로 2700여 세대가 피해를 봤다. 지난해 4월 피해 아파트 베란다에 전세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현수막이 붙었다. 연합뉴스

30대 A씨는 요즘 눈앞이 캄캄하다. 오는 5월까지 1억원을 갚지 못하면 자칫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어서다. 억울한 건 그가 지난해 11월부터 넉 달째 전세보증금(이하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대출 상환 시기를 놓쳤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2021년 11월 경기 화성의 4층짜리 다가구주택에 전세로 입주했다. 보증금 1억3000만원 가운데 1억원은 중소벤처기업청 청년 전세대출로 마련했다. 지난해 가을 A씨는 “11월에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이사를 하겠다”고 미리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신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데다 사업에 문제가 생겨 당장 전세금 돌려줄 돈이 없다”고 통보했다. 이후에도 “돈을 마련할 테니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하더니, 지난달 돌연 법원에 일반회생을 신청했다. 집주인이 금융사에 진 빚 등을 고려하면 A씨를 포함한 다가구주택 임차인 상당수가 보증금을 떼일 위기다.

A씨는 “알고 보니 집주인 소유의 또 다른 오피스텔의 임차인들도 거리에 나앉을 상황”이라며 “세입자의 돈(전세보증금)을 쓴 건 집주인인데, 정작 세입자가 전세금을 갚아야 하는 현실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최근 임차인의 전세금을 몽땅 날릴 ‘깡통전세’가 늘면서 임차인들은 ‘전세사기 피해자의 인정 요건’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 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해당 집에 대한 경·공매 유예, 해당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임차인 우선매수권’, 한국주택공사(LH)의 해당 주택 매입 후 공공임대주택 제공 등을 받을 수 있다.

각종 금융 지원안도 포함된다. 1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은 전세사기로 피해를 본 고객들에게 대출금리를 감면하고 소송비용 등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난달 4일까지 전국 지자체 전세피해지원센터 등에 접수된 피해 신청 건수는 1만5486건(국토교통부 자료)에 이른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문제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선 ‘높다란 문턱’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피해자 인정 요건은 전입신고ㆍ확정일자 등 대항력을 확보해뒀는지, 보증금이 5억원 이하인지, 경ㆍ공매가 개시돼 다수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는지,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려는 고의가 있었는지 등 네 가지 요건이다

특히 ‘고의성’ 문턱을 넘기는 게 쉽지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4일까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을 받지 못한 사례(1166건) 상당수가 ‘고의성’ 요건을 인정받지 못했다. 안상미 전세사기ㆍ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상당수 임대인은 돌려줄 보증금이 없었던 경우가 많지만, 피해자 스스로가 고의성을 증명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에선 일정 기간 이상 보증금 반환이 되지 않으면 사기 고의성을 인정하는 안(심상정 의원 등), 사기 고의성 요건 외 다른 요건을 갖추면 피해자로 인정하는 안(허종식 의원 등) 등의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8건의 개정안이 하나의 대안으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해당 내용은 모두 빠졌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대책은 크게 임차인이 경매를 통해 보증금을 회수(우선매수청구권)하거나 LH가 대신 매수해 공공임대로 제공하는 방안으로 나뉜다. 대책엔 명암이 있다. 경매는 주택을 소유할 수 있지만, 임차인이 낙찰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LH 매입 후 해당 주택에 계속 거주하는 방안은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회수하기 어렵다.

깡통전세ㆍ전세사기 등에 따른 피해가 늘지 않도록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태근 변호사(법무법인 융평)는 “정부 조치로 유예됐던 경매도 재개되면서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며 ”지금도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명시된 최우선변제금조차 변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3000세대가 넘는다“고 말했다. 김선주 경기대학교 부동산자산관리학과 교수는 “전세 사기는 구조적 문제로 계약 주체(임차인)가 홀로 책임지기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임차인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전세 계약이 끝난 뒤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보증기관이 대신 보증금을 주는 일종의 보험 상품이다. 임차인이 전세금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금융교육컨설팅업체인 웰스에듀의 조재영 부사장은 “세입자는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은 주택은 피하고, 만일을 대비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상품에 가입하는 게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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