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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한류 관심 없다…차세대 위한 인프라 역할 계속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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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7호 18면

[비욘드 스테이지] 창단 40돌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

문훈숙 단장은 1989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지젤' 주연으로 섰을때 입었던 의상을 간직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문훈숙 단장은 1989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지젤' 주연으로 섰을때 입었던 의상을 간직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유니버설발레단이 40주년을 맞았다. 최초의 민간 직업발레단으로서 세계 22개국 3000여 회 공연을 하며 한국을 알린 ‘발레 한류’의 대명사다. 1989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지젤’을 춘 최초의 한국인 문훈숙 단장은 그 산 역사다. 84년 창단 때부터 수석무용수로 활약했고 단장으로서도 30년째인 베테랑 여성경영인인데, 여전히 소녀같다. 창단 공연 ‘신데렐라’ 때 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단다.

“객석이 안보일 정도였어요. ABT(아메리칸발레씨어터) 수석인 패트릭 비셀이 파트너였는데, 리허설 때 손잡는 장면에서 분장실로 도망칠 정도로 수줍음도 많았죠. 첫 민간발레단 탄생이니 무용계 관심도 쏠렸고요. 연혁을 정리하다보니 그후로 지금까지 발레사에 정말 많은 걸 남겼더군요. 그럴수 있었다는 데 감사한 마음입니다.”

문훈숙 단장은 최근 10㎏ 이상 몸이 가벼워지니 “다시 춤추고 싶다”고 했다. 최기웅 기자

문훈숙 단장은 최근 10㎏ 이상 몸이 가벼워지니 “다시 춤추고 싶다”고 했다. 최기웅 기자

지난해 강미선 단원이 최초로 창작발레를 통해 최고 권위인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것도 각별한 의미다. “한국발레가 어디까지 왔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죠. 국내 무용수 수준만 해도 문화강대국 자부심을 가질만 해요. 창작발레 세계화 가능성도 충분히 보여준 것 같고요. 수상작 ‘미리내길’을 포함한 국악 콜라보 작품 ‘코리아 이모션 정’을 16일부터 18일까지 공연하니 많이 보러오셨으면 해요.”

그가 구소련 키로프(현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지젤’ ‘백조의 호수’ 무대에 섰을 때만 해도 스스로 동양인 핸디캡이 있었다. “안나 파블로바 같은 전설의 무용수들을 배출한 무대에 내가 서도 되나 싶었다”는 것이다. 막상 외국인들은 호의적이었다. “당시 저를 지도하던 루마니아인 제타 콘스탄티네스쿠 선생님 덕에 가능했어요. ‘유 해브 섬띵 데이 돈 해브(You have something they don’t have)’라고 말해줬고, 요가까지 가르쳐주며 호흡을 춤의 기술로 이어 주셨죠. 파트너도 환상적이었어요. 모든 발레리나의 로망인 볼쇼이의 스타 안드레스 리에파를 초청한 무대였거든요. 테크닉도 최고였지만, 리프트의 안정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네요.(웃음)”

역사적인 공연을 함께한 토슈즈 컬렉션. 발레리나들은 망치로 토슈즈를 직접 손질한다. 유주현 기자

역사적인 공연을 함께한 토슈즈 컬렉션. 발레리나들은 망치로 토슈즈를 직접 손질한다. 유주현 기자

발레단 역사상 가장 큰 자랑거리 역시 마린스키와의 인연이다. 92년 마린스키의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감독 버전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면서 유니버설의 수준이 수직상승을 시작했다. “처음 비노그라도프는 ‘수준이 안된다’며 거절했지만, 끈질기게 매달렸어요. 클래식 중의 클래식 ‘백조’는 발레단을 가늠하는 잣대거든요. 연습에 6개월이 걸렸지만, 이후 ‘잠자는 숲속의 미녀’부터 ‘지젤’까지 2년에 한번씩 마린스키 작품을 올리며 도약을 거듭했죠. 그걸 2000년대 국립발레단에서 벤치마킹해 볼쇼이 문을 두드렸고, 그게 지금의 한국발레 기반이 된 거예요.”

그렇게 수준을 끌어올려 해외 투어를 돌기 시작했고, 98년 첫 뉴욕 공연에서 ‘흥행의 신’ 프로듀서 폴 질라드에게 인정받은 순간은 잊을 수 없다. “그도 처음엔 비웃었어요. 도대체 어디있는 단체냐며 이름부터 바꾸라더군요. 특파원들도 한국 무다리로 발레가 되냐고 묻던 시절이니까요. 그런데 막상 ‘심청’을 보고 감동해 울더니, 이후 우리의 모든 해외공연을 도맡았죠. 그가 처음 기획한 LA공연 때는 ‘LA타임즈에 독설로 유명한 루이스 시걸이란 평론가가 있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었는데, 오히려 엄청 극찬을 받았고요. 파리오페라발레가 와도 난도질을 한다는 평론가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다만 저는 단원들에게 늘 정성을 다하자고 했어요. 한국발레 명예가 우리에게 걸려있으니 모든 것을 쏟자고요.”

유니버설은 ‘발레 한류’를 이미 졸업했다. 30주년을 맞던 2014년이 변곡점이 됐는데, 당시 세월호 참사가 계기였다. “그때 예술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나초 두아토의 ‘멀티플리시티’ 공연을 앞두고 취소를 고민했지만, 예술의 역할을 생각하며 강행했죠. 마지막 장면이 마치 아이들이 천국의 계단을 올라가는 것 같았다며 감동했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간 세계를 향해 뛰면서 공허함도 있었는데, 이제 사람들의 삶에 감동을 주겠다는 비전이 생겼죠. 코로나 이후 더 절실해졌고요. 공연 때마다 티켓이 바로 매진되는 걸 보니 예술에 대한 갈증을 알겠더군요. 천상의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겠다는 본질에 충실하자고 다짐했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죠.”

16~18일 공연되는 '코리아 이모션 정' 중에서 '미리내길' 파드되를 추는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미선(오른쪽)과 이현준.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16~18일 공연되는 '코리아 이모션 정' 중에서 '미리내길' 파드되를 추는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미선(오른쪽)과 이현준.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지난해 유니버설발레단은 연말 ‘호두까기 인형’ 전국 관람객이 역대 최다인 6만 명을 기록하는 등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 순수예술단체로서 타격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한국 발레를 위해서 유니버설이 기여를 했다면 이젠 지원도 필요해요. 40년 동안 설립자분들이 팔길이 원칙으로 지원해 주셨고, 이제 이 좋은 기반을 이어가는 게 제 책임이 됐죠. 사실 좋은 무용수들이 배출되어도 갈곳이 없거든요. 서울시립발레단이 곧 생긴다는데, 지금은 지역발레단이 많이 필요해요. 발레라는 나무가 가지를 뻗어야 무용수들도 선순환되겠죠. 지금까지 한국 발레의 인프라 구실을 해온 유니버설의 좋은 기반을 차세대에게 잘 물려주는 게 제 꿈입니다.”

‘물가의 수초’라는 별명 그대로 “완전 샤이해서 말없는 발레가 잘 맞았다”는 문 단장이지만, 저 유명한 ‘영혼결혼식’ 이후 인생을 바친 발레단에 대한 애정은 단단해 보였다. “30주년 때 한 냉철한 평론가의 글을 읽고 펑펑 울었어요. ‘한때 유니버설을 종교확대책의 일환으로 보기도 했으나 지금까지 문 단장이 이룬 업적을 보면 종교적 굴레를 거둘 때가 됐다’는 내용이었죠. 우린 처음부터 예술 그 자체가 목적이었는데 세상은 늘 색안경을 꼈으니까요. 진심이 언젠가는 통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발레에 인생을 바치겠냐 물으니 “이번 생보다 체격이 좋을 경우에만 같은 선택을 하겠다”고 잘라 말한다. “물만 먹어도 살이 쪄서 힘들었다”지만 요즘은 다이어트가 취미다. 지난해 3개월 만에 10㎏ 감량을 하며 재미를 붙였단다. “식단과 정신건강을 챙겨주는 온라인 프로그램이 있어요. 설탕과 밀가루를 줄이고 샐러드와 단백질 위주의 식단관리도 중요했지만, 음식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니 다이어트가 재밌어지더군요. 음식을 먹을 때 과연 한입한입 행복한지 음미하면서 먹다보면 입맛도 바뀌죠. 전에는 죄책감 느끼며 조금만 먹어도 살이 쪘지만, 지금은 배불리 먹어도 살이 안 찌니 스트레스도 없어요. 현역 때 체중까지 내려가니 다시 춤추고 싶네요. 언젠가 볼룸댄스라도 도전해 보려구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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