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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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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7호 30면

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결국 경질됐다.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던 대표팀이 아시안컵 4강에서 ‘유효 슈팅 0개’라는 졸전 끝에 탈락한 뒤 각계의 해임 요구가 빗발친 결과다. 커뮤니티도 들끓었는데, 팬들의 큰 공감을 얻은 글 중 하나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한 줄짜리 촌평이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지만 감독으론 실패를 거듭했던 이유가 무전략·무전술에 지도력 부재 탓이란 게 중론이었음에도 “이번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 게 애당초 무리였다는 비판이다.

요지부동 정치권에 설 민심도 냉랭
변화 이끄는 건 결국 유권자들의 몫

사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꺼리는 존재였다. 학계에서도 변화는 그 자체가 뇌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선사 이래 극한의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신적·육체적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체계를 지향해 왔다는 얘기다. 따라서 변하기 위해서는 이런 본능적 DNA를 뛰어넘고 뇌의 저항도 극복해야만 했다. 꼭 필요한 변화가 아니면 굳이 시도하지 않는 게 비문명 시대의 나약한 존재였던 인간에겐 최상의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다. 새해를 맞아 운동·금주·다이어트를 결심해도 작심삼일에 그치기 쉬운 건 이처럼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오랜 속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인간관계 속에서 ‘변한다’는 단어가 부정적 뉘앙스로 쓰이는 것도 변화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사람이 변했어”라는 말이 나빠졌다는 의미로 통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반면 좋은 뜻이 담길 땐 ‘바뀌다’는 표현이 주로 쓰인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뭔가 바꿔봐야 하지 않겠나”는 식이다. 문제는 나쁜 쪽으론 쉽게 변하면서도 좋은 쪽으론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게 인간 세상의 경험칙이란 점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유아독존에 고집불통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좀 바뀌려나 싶은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변하지 않기로는 정치인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이젠 정치권도 바뀌어야 할 때”라는 요구가 비등한 상황에서 설 연휴 밥상 민심에 정가의 이목이 쏠렸지만 용산이든, 여의도든 요지부동 정치권에 설 민심도 냉랭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유권자들과 끊임없이 주파수를 맞추고 겸손한 자세로 소통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언감생심. 기득권을 과감히 내려놓고 먼저 사과하며 ‘사즉생’의 용기를 내긴커녕 한 줌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불행히도 4년 전과 다를 게 없다는 혹평만 줄을 잇고 있는 형국이다.

왜 정치인들은 변하려 하지 않는 걸까. 아무리 인간의 본능이 그렇다 해도 지금은 21세기 아닌가. 오히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 아닌가. 그럼에도 이토록 변화를 거부하는 건 무엇보다 “나만 옳다”는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굳이 변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30% 지지층만 굳건하면 지금의 권력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는 자기최면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그런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능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더 치명적인 건 공감 능력마저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기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출 의지조차 없다 보니 바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당나라 재상 위징은 “군주가 영명한 것은 널리 듣기 때문이며 어리석은 것은 편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널리 들어야 뭘 바꾸고 어떻게 변해야 할지 알 수 있다는 조언이건만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들에겐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니 심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투표라는 유권자 제1의 권리를 포기할 순 없지 않은가. 오히려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변해야 살고 바꿔야 승리한다’는 명제가 여전히 유효함을 입증해야 할 때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결국 우리 유권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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