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점유율 70% 대박…인도 열광한 '채식 초코파이' 한국 과자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이달 초 베트남 나트랑을 여행한 정모(33)씨는 현지 편의점에서 한국 제과 브랜드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덥석 집어 들었다. 정씨는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과자였는데 사고 보니 오리온 쌀과자였다”며 “한국 과자가 베트남에서도 통한다니 신기했다”라 말했다.

정모(33)씨는 베트남 마트에서 구매한 오리온 현지 과자 An(안). 마크를 유심히 보지 않으면 한국 과자인지 알아채기 어렵다.

정모(33)씨는 베트남 마트에서 구매한 오리온 현지 과자 An(안). 마크를 유심히 보지 않으면 한국 과자인지 알아채기 어렵다.

한국 제과 업체들이 해외에서 새 활로를 찾고 있다. 저출산으로 과자 소비층이 줄고 있는 국내를 벗어나 인구 대국인 중국(14억명), 인도(14억명), 베트남(1억명) 등으로 눈을 돌린 전략이 성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리온 지난해 매출의 63.4%(1조8547억원)는 해외에서 나왔고, 롯데웰푸드도 2004년 인도 제과 기업 패리스를 인수하며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낸 결과 지난해 해외 매출 8005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 6438억원, 2022년 7952억원에 이어 3년 연속 성장세다. 현지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은 이들 기업은 “이제는 한국 과자라고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만큼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철저한 현지화·틈새시장 공략 

해외 시장 성공의 가장 큰 비결은 현지 문화와 입맛을 반영한 ‘철저한 현지화’다. 인도를 공략한 ‘채식 초코파이’가 대표적이다. 인구의 80%가 소를 숭배하는 힌두교도이고, 13%는 무슬림으로 돼지를 먹지 않는 시장 특징에 맞게 롯데웰푸드는 초코파이 속 마시멜로를 동물성 젤라틴에서 식물성 원료로 바꿔 인도에 출시했다. 이 초코파이는 인도 초코파이 시장 1위로 시장점유율이 70%에 달한다. 아이스크림도 현지 맞춤형 맛으로 출시했다. 월드콘은 국내에선 바닐라 맛으로 유명하지만 인도에선 초콜릿 맛이 주력 제품이다. 초콜릿에 열광하는 인도인 입맛에 맞춰 초콜릿 맛을 3종으로 늘렸다. 조요한 코트라 뉴델리무역관은 지난해 7월 보고서를 통해 “인도 전역에 7만2000개 소매점과 200여개 플래그십 스토어를 갖춘 롯데 아이스크림 사업은 현지 입맛을 겨냥한 월드콘·설레임을 출시해 성장세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에서는 바닐라맛이 익숙한 롯데 월드콘은 초콜릿 인기가 높은 인도에서 3가지 초콜릿 맛으로 판매된다. 롯데웰푸드 인도 빙과 법인 홈페이지

국내에서는 바닐라맛이 익숙한 롯데 월드콘은 초콜릿 인기가 높은 인도에서 3가지 초콜릿 맛으로 판매된다. 롯데웰푸드 인도 빙과 법인 홈페이지

젤리 '마이구미'는 베트남에서 '붐 젤리'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고온에서 맛이 유지되며 가격은 저렴해 하리보 등 다른 젤리 브랜드보다 소비자 접점이 넓은 편이다. 사진 오리온

젤리 '마이구미'는 베트남에서 '붐 젤리'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고온에서 맛이 유지되며 가격은 저렴해 하리보 등 다른 젤리 브랜드보다 소비자 접점이 넓은 편이다. 사진 오리온

유럽의 제과 브랜드들이 뚫지 못한 현지 틈새 시장을 노린 전략도 통했다. 하리보·트롤리 등 유럽 유명 젤리 브랜드가 선점한 베트남에서 오리온은 ‘마이구미(현지명 붐 젤리)’로 골목 상권에 침투했다. 고온에 쉽게 녹는 젤리 특성상 하리보 등 기존 젤리는 에어컨이 나오는 기업형 마트에서만 팔 수 있었다. 이에 오리온은 유럽 제과 브랜드가 포기한 베트남 골목 수퍼를 뚫기 위해 무더운 날씨에도 맛과 품질을 유지하는 젤리 제조기술을 개발했고, 현지 유통 채널의 70%에 입점하는 데 성공했다. 베트남에서 5년간 근무한 이대성 오리온 글로벌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붐 젤리는 베트남 엄마들 사이에서 상하지 않는 ‘안전한 젤리’이자 하리보보다 저렴한 ‘가성비 젤리’로 통한다”라고 말했다.

해외 성공→국내·외 재투자 선순환   

국내 제과 업체들의 해외 진출은 성장을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세계 제과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지만, 한국의 제과 시장은 축소하고 있기 때문. 아일랜드 시장조사기업 리서치앤마켓은 세계 제과 시장 규모가 2022년 1885억 달러(약 252조)에서 연평균 3.6%씩 성장해 2028년에는 2293억 달러(약 306조)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국내 제과 시장은 롯데웰푸드·오리온·농심·크라운·해태 등을 합해도 4조에 못 미친다. 롯데웰푸드 관계자는 “출산율이 낮은 한국에서는 과자도 술 안주용이 인기지만 인도 같은 인구 강대국에서는 제과 업계의 주요 고객인 ‘어린이 고객층’의 확장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제과 시장만 17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제과 기업들은 해외 시장의 성과를 바탕으로 재투자에 나서고 있다. 오리온 베트남법인은 2005년 설립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본사에 1100억원을 배당했다. 오리온 해외법인이 국내로 배당한 첫 사례다. 회사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5년 연평균 500억 이상 순이익이났다”며 “배당금은 충북 진천 공장 증설과 차입금 상환 등에 쓰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제과 사업으로 마련한 현지 인프라는 그룹 신성장 사업인 바이오 산업 진출에도 도움이 됐다. 오리온은 2021년 이후 중국 현지 제약사들과 합자 법인을 설립해왔다.

롯데웰푸드는 초코파이에 이어 ‘빼빼로’를 주력으로 삼고 해외 투자를 확대한다. 동남아에서 판매 거점을, 인도에서 생산 거점을 확보한 뒤 유럽 시장에도 진출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달에는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인도 하리하나에 330억원을 투자해 빼빼로 첫 해외 생산기지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27%였던 빼빼로 해외매출 비중을 2028년 42%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