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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준호의 직격인터뷰

박상욱 과학수석 "R&D 삭감, 아쉽고 죄송스러워…내년부터 증액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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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 첫 과학기술수석 박상욱

최준호 과학 전문기자·논설위원

최준호 과학 전문기자·논설위원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제라도 출범하니 다행일까. 지난달 25일 임명된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 수석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취임했으니 1년 8개월만의 출발이다. 현 정부는 ‘과학기술 선도국가’를 자임했지만, 시작은 그렇지 못했다. 지난 정부에 있었던 대통령실 과학기술보좌관을 없애고 한 단계 낮은 비서관으로 시작했다. 보완책으로 김창경 한양대 교수(전 교과부 2차관)를 과학기술특보로 임명했으나, 건강 문제로 한 달 만에 사임했다. 과학기술비서관은 경제수석실의 6명 비서관 중 한 명이라 권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과기비서관실엔 비서관 외 행정관 4명이 전부였다. 과기계에서는 이때부터 ‘윤 정부의 과학기술 컨트롤타워가 누구냐’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난해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를 계기로 시작된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대폭 삭감 소동은 이런 구조적 문제점이 낳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기존 1비서관 체제에서 수석 외 비서관 4명, 행정관 10명으로 확대
예산 축소 따져보니 16.6% 아니라 7.8%…원천 R&D는 안 깎여
경제성장 둔화 시작된 선진국들도 국가 R&D 예산은 줄이지 않아

박상욱 수석은 박사학위가 2개다. 화학을 전공했지만, 과학기술정책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학위를 받았다. 사진은 국립어린이과학관에 선 박 수석. 강정현 기자

박상욱 수석은 박사학위가 2개다. 화학을 전공했지만, 과학기술정책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학위를 받았다. 사진은 국립어린이과학관에 선 박 수석. 강정현 기자

늑장 출범에 대한 보상일까. 현 정부 초대 과기수석실은 수석 외 비서관 4명과 행정관 10명으로 시작한다. 대통령실 과학분야 역대 최대 진용이다. 지난 6일 박 수석을 만났다. 박 수석은 인터뷰 장소로 서울 창경궁 옆 국립어린이과학관을 선택했다. 1960~80년대 우리나라 첫 국립과학관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 당시 미래전략 수석이 있긴 했지만, 명실상부한 과학기술 수석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비서관 4명 중 3명 민간 영입 추진

과학기술수석실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역할을 맡나.
“일단 연구개발혁신, 첨단바이오, AI·디지털, 미래·전략기술 이렇게 4개 비서관과 그 아래 10명의 행정관으로 구성된다. 향후 확대 가능성이 있는 유연한 조직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연구개발혁신 비서관은 R&D의 종합 조정, 제도 개선, R&D 혁신 생태계 업그레이드를 담당한다. 기존 최원호 과기비서관이 경제수석실에서 자리를 옮겼다. 첨단바이오 비서관은 범부처 바이오 정책과 국가 바이오 산업 육성을 맡게 된다. AI·디지털 비서관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현, AI 윤리규제 등을 담당한다. 미래·전략기술 비서관은 양자과학을 중심으로 한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 연구개발과 기술 안보, 기술 유출 방지, 과학기술 국제협력 등을 담당한다. 이 세 분은 민간에서 모시려고 한다.”
뒤늦은 출범이 R&D 예산 축소에 대한 민심 달래기라는 말도 있다.
“그러기엔 너무 거대한 조직이다. 정책을 담당하는 수석이 경제와 사회밖에 없었는데, 과기수석이 신설됐다는 건 국가정책을 3분할할 때 과학기술이 그 한 축이 됐다는 것을 뜻한다. 민심 달래기용으로 이런 조직을 신설하는 정부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2022년 5월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시작했으면 당연히 더 좋았겠다. 하지만 당시엔 지나치게 컸던 지난 정부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작은 대통령실’이라는 가치를 우선시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뒤늦게나마 과기수석실을 출범시킨 것은 현재 체제로는 더이상 과학기술의 도약을 꾀할 수 없다는 한계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정부 출범 시기에 그걸 절감하지 못했다가 국정 운영을 해보니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본다. 과기수석실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출범에 2년이 아니라 70년 넘게 걸렸다고 얘기하고 싶다.”
R&D 예산 대폭 삭감으로 과기계가 큰 혼란에 빠졌는데.
“과학기술계에 아픔과 섭섭함을 드린 것을 인정한다. 아쉽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R&D 예산이 깎인 건 이번이 처음이고 이례적 상황이다. 경제 성장률 둔화가 오래 전 시작된 선진국들도 R&D 예산을 줄이지는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경제와 과학기술 관점 사이의 오해가 빚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면 R&D는 연구비를 주고 기술을 납품 받는, 용역이나 조달의 개념이다. 앞으로 교훈을 얻기 위해서도 이 사안은 리뷰가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삭감 폭은 알려진 것만큼 크지 않다. 이 부분을 꼭 해명하고 싶다.” (과기계에서는 ‘재정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R&D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경제수석실과 기획재정부에서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쪽으로 예산을 짠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과학기술의 G3가 목표

정부 보도자료를 통해 R&D 예산 16.6% 축소가 명기되지 않았나.
“제가 와서 따져보니 완전히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 그걸 바로 잡으려고 노력 중이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7.8% 감소다. 어쩌다 잘못된 숫자가 나갔다. 올해 정부 전체 연구개발예산은 26조5000억원 규모로, 올해부터 비R&D로 재분류된 2조1000억원을 포함하면 총 28조6000억원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7.8% 줄어든 거다. 구체적으로 기초 원천 R&D는 총액 기준으로는 안 깎였다. 다만 기초 부문 계속 과제가 10% 일괄 삭감되고, 국책 연구 사업 중 계속 과제도 또 삭감이 됐기 때문에 이에 대해 불편을 느끼는 분들이 많이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수습하나.
“대통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게 있다. 당장 내년부터 R&D 예산을 증액하겠다는 거다. 저는 과학기술 수석으로서 대통령의 뜻에 따라 증액 가능한 규모를 파악하고, 그 근거를 찾아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드릴 계획이다. 저는 대한민국이 과학기술로 세계 3대 강국, 즉 G3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현재도 R&D 절대 투자 규모 기준으로 일본·독일 다음인 세계 5위다. 성과로 보면 당연히 G3를 노려야 하지 않을까.”
정부 R&D 기반 혁신 기술이 실험실을 넘어 기술사업화로 이어지는 게 중요할텐데.
“100% 동의한다. ‘시장주의 도입’을 말하고 싶다. 미국은 예외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기술사업화가 R&D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강하다. 나는 기술사업화가 R&D의 핵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R&D 로드맵을 짤 때부터 기술사업화를 염두에 둬야 한다. 또 기술사업화 전문인력들이 R&D 단계에서부터 연구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기술사업화 조직이 관료화돼 있을 뿐만 아니라, 좋은 전문인력도 제대로 양성되지 않고 있다. 이런 혁신 조력자들이 성과에 걸맞는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도 중요하다.”

기술 대전환 시대, 관제탑 있어야

국내 대기업들은 여전히 혁신 스타트업 투자나 인수를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에 소극적이다.
“알파벳과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혁신기술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뛰어난 딥테크(deep-tech) 스타트업들이 최근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할 때 기술 탈취 혹은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니 머뭇거리는 측면이 있다. 대기업은 스타트업 M&A를 오픈 이노베이션 관점에서 접근하고, 스타트업들은 성공적인 엑시트(exit) 전략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규제 장벽이 있다면 과기수석실에서 챙겨볼 생각이다.”
현 정부에 과학기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 측면이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최근까지 컨트롤타워 역할을 대통령실 과학기술 비서관실이나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가 담당했다고 본다. 평소 컨트롤타워라는 톱다운식 용어 자체에 그렇게 찬성하는 입장이 아니지만, 선도국가로의 변신 및 디지털·탈탄소를 향한 대전환의 시대에는 어느 정도의 관제탑은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최근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제 과기수석실이 신설된 이상 그런 역할을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옥상옥(屋上屋)이 돼서는 안 되겠지만, 긍정적 역할을 하고 싶다.”

◆박상욱=1972년생. 서울대에서 화학으로 학·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으로 건너가 서섹스 대학에서 과학기술 정책학으로 다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숭실대 행정학부,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를 거쳐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로 일했다. 국가산학연협력위원회 위원, 수소경제위원회 민간위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공공기관경영평가위원 등을 지내며 과학과 정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