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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생 숨지게 한 음주뺑소니범 '감형'…재판부, 유족에 한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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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술을 마신 뒤 운전하다가 출근길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회초년생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2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감형받았다. 재판부는 선고 직후 유족을 향해 이례적으로 양해를 부탁하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울산지법 형사항소1-2부(박원근 부장판사)는 15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도주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9년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작년 4월 17일 오전 7시 29분쯤 울산 남구 삼산로 현대백화점 앞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20대 여성 B씨를 차로 들이받은 뒤 그대로 도주한 혐의를 받는다. 사고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52%로, 면허취소 수준(0.08%)을 훌쩍 넘어선 만취 상태였다.

사고 직후 도주한 A씨는 몇 분 뒤 돌아와 경찰관이 출동한 현장을 지켜본 뒤 다시 차를 몰고 떠났다.

자신이 일하는 어린이집으로 출근하는 길이었던 사회초년생 B씨는 중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24일 뒤 끝내 사망했다.

1심 재판부는 "유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피고인이 초범이지만 중형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A씨 측은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A씨가 음주운전 과정에서 신호 위반까지 해 범행했고, 곧바로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등 태도가 불량하며 유족 등이 계속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A씨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공탁금을 낸 점, 다른 유사한 사건 선고 형량과 형평성 등을 고려해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9년6개월로 감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선고 직후 법정 방청석에 있던 유족을 향해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아버지를 증인으로 불러 입장을 들어봤고, 슬픔이 극심한 것을 재판부가 이해하고 있다"며 말을 꺼냈다.

이어 "다만 피고인에게 어떤 중형을 선고해도 유족들에게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가시게 할 수 없다는 점, 재판부가 형을 정할 때는 피고인에 대한 양형 사유도 참작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또 "특별히 유사한 판결 양형을 모두 조사했다"며 "유족 입장에선 만족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재판부 입장에선 결코 가벼운 판결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선고 후 법정에서 나온 유족은 "6000∼7000명이 엄벌 탄원에 동참했었다"며 "감형을 이해할 수 없고 음주운전 처벌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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