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02전화 받아라" 매뉴얼 푼 개딸…민주당 '적합도 조사' 형평성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역에서 난다 긴다 하는 현역도 적합도 조사에서 삐끗하면 곧바로 공천배제(컷오프)다. 특히 비명계가 떨고 있다.”

익명의 야권 관계자가 총선 예비후보를 대상으로 실시한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적합도 조사를 두고 한 말이다. 이번 적합도 조사는 지난달 22~29일 실시됐다. 민주당은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자동응답전화(ARS) 방식의 적합도 조사를 통해 ‘상향식 공천’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응답률이 낮은 ARS 조사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개딸’(개혁의 딸) 등 강성 팬덤의 조직력에 좌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일부 예비후보에게 연락해 불출마를 권유하는 과정에서도 부진한 적합도 조사 결과를 언급했다. 경기 광주을에 출마한 문학진 전 민주당 의원이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따르면 이 대표는 ‘안태준 후보가 31%이고, 다른 두 후보는 11%, 형님(문 전 의원)이 10%로 꼴찌’라는 적합도 조사 결과를 알렸다고 한다. 적합도 조사에서 20%포인트 이상 벌어지면 단수공천을 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 방침이다. 결국 당대표 특보인 안태준 후보의 단수 공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천 적합도 조사 홍보 포스터. 중앙포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천 적합도 조사 홍보 포스터. 중앙포토

적합도 조사는 6개 여론조사 업체가 참여해 지역구별로 응답자 1000명을 채울 때까지 진행한다. 이동통신사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지역 주민의 가상번호(안심번호) 3만~4만개를 제공하고, 업체는 ARS로 어떤 예비 후보가 더 적합한지 묻는다. 단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층이 대상이다. 국민의힘이나 개혁신당을 지지한다고 대답하면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무엇보다 적합도 조사는 공천 심사 총점 100점 중 40점으로 비중이 가장 크다. 나머지 항목인 정체성(15점), 기여도(10점), 의정활동 능력(10점), 도덕성(15점), 면접(10점) 등은 변별력이 크지 않다는 평가다. “적합도 조사가 심사 결과를 90% 이상 좌우한다”(비명계 초선의원)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적합도 조사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반발이 나온다. 우선 거론되는 문제는 응답률이다. ARS 조사 응답률은 통상 5% 미만이다. 한 수도권 지역 의원은 “여론조사 전화가 많이 걸려오는 선거철에는 국민 상당수가 모르는 전화를 차단하거나 거부한다”며 “반면 강성 친명 지지층에서는 ‘카톡방’ 등에 여론조사 대응 매뉴얼까지 공유하며 조직적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실제 친명 지지층 카톡방에서는 여론조사 업체의 전화번호나 응답률이 낮아 전화가 걸려올 가능성이 큰 연령대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참여를 독려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통상 여론조사보다 적합도 조사에서 친명 후보의 지지율이 튄다(눈에 띄게 오른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최근 적합도 조사 결과를 들었다는 한 예비후보는 “자체 조사 때는 친명 후보와 1~2%포인트 격차로 박빙이었는데, 적합도 조사에서는 두 자릿수로 벌어졌다”고 했다. 야권 관계자는 “친명 일색의 공천을 공고히 하는데 적합도 조사가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이미지. 중앙포토

여론조사 이미지. 중앙포토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정치 팬덤의 적극적인 참여나 조직력이 선거나 여론조사의 변수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안심번호 샘플이 3만개 이상이라 특정 세력에 의해 결과가 좌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