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책이 흐르는 곳, 사람이 머무는 곳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생각을 정돈해 문자로 엮어내고 두터운 표지로 마무리해 책이라는 형태로 엮어내면, 제가 쓴 글임에도 활자의 마력에 빠져 나의 생각이 문명의 일부가 되는 듯 한 착각이 듭니다. 그 책을 서점 매대에서 바라보는 일은 뿌듯함을 넘어선 미묘한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며 쌓인 수만 권의 다양한 생각들 중 나의 궁리를 들춰보며 관심을 가지는 것을 조심스레 지켜보노라면, 처음 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서투른 홀로섬을 뒤에서 응원하는 부모처럼 설렘과 작은 두려움이 동반됩니다. 너른 사회에 나선 후 성장과 더 큰 도약을 응원하는 마음처럼 이제 세상의 공명을 희망하게 됩니다.

표지에 눈이 머무는 관심을 넘어 찬찬히 정독하신 분들과의 만남은 더욱 소중합니다. 다행히도 적지 않은 분들이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큰 도시에서는 책의 내용이나 그 뒷 이야기들을 전달해 드리는 강연들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삶의 어려움에 지쳐 있던 많은 분들이 책을 통해 용기를 얻었음을 토로해 주시며 현장에서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작년 연말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역 서점서 연 독자와의 만남
함께 모여 생각이 커가는 경험
제 자리 지키는 점주들에 감동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새해가 밝아 그 만남을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이 가지고 싶어 전국의 주요한 장소에 가서 뵙는 욕심을 부려보았습니다. 속초, 구미, 대전, 한림 등 각기 다른 풍광의 지역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예쁜 서점들을 찾아, 책을 읽고 깊은 고민을 하는 그 고장의 분들을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지역의 주요한 거점이라 해도 참석자는 십여 명에서 수십 명, 최대 100명 남짓으로 큰 도시보다는 적은 수 였습니다. 하지만 그 열의와 진지함은 그 어떤 큰 규모의 모임보다 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모든 곳에서 마주한 가장 짙은 감성은 그 고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이었습니다. 자신의 터전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 사랑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큰 도시로 사람들의 선호가 늘어나고,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인구로 인해 자원의 분배와 할당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속 문화와 예술에 대한 조예는 필수가 되며, 대도시와 비교해 그 기회가 풍족하지 않아 갈증이 해소되지 않음을 토로합니다.

책은 간편하고 소박한 매질이라 그 전달과 누림에 상대적 열위를 가지기 어렵지만, 온라인 서점의 확장과 학령기 인구의 급감으로 제한된 구매력은 책을 파는 곳들이 줄어들게 하여 신간을 다채롭게 만나는 것도 특권처럼 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지역의 서점은 더욱 정주자들의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소중히 선별하여 고른 곳이라 더욱 특별했던 것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일을 하나의 사명처럼 생각하며 소중히 여기는 서점 주인들의 모습에서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를 이어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속초의 ‘동아서점’에서는 그 다음 대를 이을지도 모르는 아이와 함께 미래의 추억을 위한 사진을 찍었습니다. 멋진 자연 속 방문자와 토착민의 문화에 기여하고 있는 한림의 ‘책방 소리소문’에서는 섬과 뭍을 교차하며 새로운 삶이 실험되고 있는 현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분야의 성과를 이룬 후에 지역의 문화적 토양을 위해 과감히 투자한 구미의 ‘삼일문고’는 산업의 건재함으로 상대적으로 젊은 시민들이 많은 도시의 열망에 부응하고자 하는 미래의 시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자본으로 문화의 지킴이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는 대전의 ‘삼요소’는 팬데믹을 거치며 무인 환경에 적응하는 청년 대표의 분투기에 박수를 보내게 했습니다. 한 분 한 분 모두 열정과 자부심으로 굳건한 이들을 보며 존경의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습니다. 큰 도시에서 가쁜 성장을 상수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과 부대껴온 제게, 이번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소중한 쉼표를 주었습니다.

정제된 문자보다 좀 더 풀어진 이야기로 설명하고, 각자가 읽은 후의 느낌과 자기 삶의 관여된 바를 솔직하게 묻는 질의 응답을 통해서 책이라는 형식을 떠난 대화는 더욱 확장되고 발전됩니다. 자연스레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기나 혹은 책을 쓴 이후에 더욱 자라나는 새로운 생각의 착점을 얻을 수 있기에, 독자와의 만남은 글쓴이에게 다음 창작의 모티브를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동굴 속에서 깊은 생각을 한 자 한 자 깎아내며 채워 놓은 페이지의 조각들이 묶여져 각자의 마음으로 전달된 후, 다시 그어진 밑줄과 작은 생각의 편린들이 다양한 매질을 통해 돌아오는 아름다운 윤회를 경험합니다. 물리적으로 혹은 연결망으로 촘촘하게 이어진 우리의 모둠은 생각을 주고받으며 더욱 커지는 뜻 속에서 저마다의 성장을 만들어 나갑니다. 얼굴을 보건, 차를 마시건, 깊은 토론을 하건,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의 주고받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