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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교육에 갇힌 국책대학 코리아텍…리모델링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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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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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무게 1.6㎏에 접으면 길이 23㎝, 폭 6㎝의 컴팩트한 크기로 휴대하기 편한 로봇. 착용하면 작은 힘으로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초경량 보행보조 웨어러블 로봇 ‘윔(WIM)’이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24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4)’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덩달아 한국기술교육대학(이하 코리아텍)도 주목받았다. 이 대학 창업 벤처기업인 ‘위로보틱스(WIRobotics)’가 선보인 제품이어서다. 부스는 윔을 체험하려는 관람객들로 인산인해였다. CES 측은 “꼭 봐야 할 제품 중 하나”로 콕 집어 추천했다. CES 2024 혁신상을 두 개나 받았다. 재활공학의 괄목할만한 업적이다.

33년 된 훈련교사 양성 프레임
급변하는 노동시장과 큰 괴리
고용·안전 전문인력 공급 미흡
정책·시장과 호흡할 개혁 필요

CES 뒤흔든 재활로봇…안전공학 부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달 열린 ‘2024 CES’에서 코리아텍 벤처기업 위로보틱스의 보행보조 로봇 ‘윔(WIM)’이 2개 부문 혁신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사진 코리아텍]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달 열린 ‘2024 CES’에서 코리아텍 벤처기업 위로보틱스의 보행보조 로봇 ‘윔(WIM)’이 2개 부문 혁신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사진 코리아텍]

코리아텍이 전 세계 엔지니어와 기업이 모인 행사에서 이런 성과를 올린 것은 기술적인 측면을 떠나 또 다른 면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고용노동부가 설립한 국책 대학인 코리아텍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고용노동 정책의 무게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엿보게 했기 때문이다.

코리아텍은 1991년 설립됐다. 목적은 국립직업훈련원(현 폴리텍대학)에서 가르칠 훈련교사 양성이었다. 기술인력에 애가 타던 시대적 요구에 따른 것이다. 15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직업훈련의무제’가 시행되던 시기였으니 오죽했으랴. 그러나 산업이 발전하면서 당초 설립 목적인 훈련교사 진출은 극히 미미하다. 민간기업이 자체 인력으로 교육을 더 잘하는 판이니 당연하다.

물론 코리아텍이 산업현장의 이런 변화에 맞춰 직업훈련의 틀에서 벗어나 ‘평생직업능력개발’ 허브 기관으로 변신을 꾀해 온 것도 사실이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몇 년째 학생 교육부문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취업률도 다른 대학을 능가한다. 실전 경험 위주의 교육을 하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국책 대학으로서 노동시장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정책의 고도화에 부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노동시장, 전문인력 고갈 현상 심화

충남 천안에 위치한 코리아텍 전경.

충남 천안에 위치한 코리아텍 전경.

지금 노동시장은 ‘원하는 일자리’를 찾아줄 고용서비스에 목말라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산업 안전에 대한 요구와 수요도 폭발적이다. 혹여 사고를 당해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치료와 재활이 원활하게 이뤄지길 바란다. 말 그대로 일자리를 구하고, 안전하게 일하고, 재활로 노동시장에 복귀할 수 있는 ‘토탈 고용서비스’가 절실한 시점이다.

하지만 어느 부문도 예외 없이 관련 전문인력 공급망은 꽉 막혀 있다. 전문 상담사가 부족한 고용부의 고용센터에서 맞춤 일자리를 소개받기란 쉽지 않다. 산업현장의 안전 전문가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안전 전문가를 채용하려 해도 적합한 인력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국 10개 산재병원의 의사 정원은 고작 242명이다. 그나마 충원율은 88%에 그친다. 인력 사정도 “정년 퇴임이 임박한 교수진으로 채워져 젊은 교수를 찾기 힘들다”(유길상 코리아텍 총장)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열악하다.

상황이 이럴진대 고용노동 분야의 국책 대학인 코리아텍의 정체성이 30년 전에나 통할 법한 직업훈련에 방점을 둬서는 곤란하다. 변화를 넘어 확장형 개혁을 꾀해야 할 시점이다. ▶고용서비스 ▶산업 안전 ▶재활공학 ▶산업의학으로 그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꼭 필요하지만, 전문 인력 공급이 안 되는 부문이다.

수련의 없는 산재병원…수급책 꾀해야

늦었지만 2년 전 고용서비스정책학과를 신설하고, 대학원에 산업안전공학과를 만드는 등 노동시장이나 정책 변화에 맞춘 몸부림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양성 규모가 턱없이 작고, 재학생 이외에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한 재교육 체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등 시장 수요를 따라가기에 버거운 형편이다. 이래서는 국책 대학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기도, 다른 대학과 차별화를 꾀하기도 어렵다.

특히 산업의학 부문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가뜩이나 산재 판정에 ‘추정 인정(질병 등이 업무와 관련 있는지 명확하지 않더라도 인과성을 인정)’이 확대되고, 나이롱 환자 등으로 인한 산재보험기금 누수가 심각한 상황이다. 산업재해도 다양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전국 산재병원에는 공공병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수련의가 없다. 이래서는 산재 예방과 치료, 재활의 연결고리를 잇기 힘들다. 정부도 의사의 수를 늘리는 데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적재적소형 의료진 충원 시스템을 위해서라도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독일은 ‘사고 전문 의사’를 국가 차원에서 양성·운영하면서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이 체계가 갖춰지면 재활공학과 접목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고용·안전 중심 학제로 전환할 법 필요

코리아텍이 노동시장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고, 전문인력을 공급하는 공공 대학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매듭이 있다. 유길상 총장은 “코리아텍은 평생직업능력개발법에 근거한 대학이어서 역동적으로 급변하는 고용정책을 포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공약해 설립한 한국에너지공대를 비롯해 방송통신대, 카이스트, 한국농수산대학 등은 특별법으로 설립된 특수 목적 국책대학”이라며 “고용노동 정책의 특수 목적대인 코리아텍의 설립 근거도 특별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술교육’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법·제도부터 학제까지 전면적인 리모델링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