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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에 깃든 디지털 신기술, 성큼 다가오는 고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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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 실감영상관에서 만날 수 있는 평안남도 남포시 덕흥리 고분 내부 모습. 2006년 남북한 공동조사 당시 사진자료와 북한 측이 그린 모사도 등을 바탕으로 디지털 복원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 실감영상관에서 만날 수 있는 평안남도 남포시 덕흥리 고분 내부 모습. 2006년 남북한 공동조사 당시 사진자료와 북한 측이 그린 모사도 등을 바탕으로 디지털 복원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2%. 국립중앙박물관(이하 박물관) 소장품 40여만 점 중 ‘고구려’로 등록된 유물(8150점)의 비율이다. 고대 삼국 가운데 역대 수도(졸본성·국내성·평양성)가 모두 한국(남한) 바깥에 위치한 고구려(기원전 37년~서기 668년)는 신라·백제와 달리 화려한 왕실 유물은 거의 없이 기와·전돌·토기 등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일제강점기에 수집·기증된 4000여점 안에 중국·북한 지역 자료가 포함돼 있다. 특히 조선총독부가 중국 지안성 및 평양 일대에서 수집한 고구려 및 낙랑 관련 기와 자료와 당시 남긴 약 3만8000장의 유리건판 사진은 접근이 어려운 고구려 유물의 기초자료가 된다.

이 같은 한계를 딛고 박물관이 ‘디지털 고구려’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상설전시관 1층 선사·고대관의 고구려 실감 영상관은 지난해 관객들이 가장 흥미롭게 본 전시실로 꼽은 곳 중 하나다. 이곳에선 북한 내 벽화무덤 3곳(안악 3호 무덤, 덕흥리 무덤, 강서대묘)을 실제로 내부에 있는 듯 느끼게 전면과 양 측면, 천장까지 4개 면에 프로젝터 영상을 투사한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구려 벽화무덤 속 인물·동물 문양이 생생하다. 사신(백호·청룡·현무·주작) 등 중요 상징물엔 애니메이션 효과도 줬다. 2020년 공개 당시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장은정 교육과장은 “벽화 내부를 촬영한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하되, 일부 유실된 부분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전해지는 모사도 등으로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달리 말하면 실제 가서 보는 것보다 이곳에서 더 생생한 디테일을 만날 수 있단 뜻이다. 2006년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고구려 고분 10여기를 공동조사했을 당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굴식 돌방무덤 내부의 벽 재질을 드러낼 수 있게 화강암·대리석 느낌을 가미하고 색채 등을 보완했다. 가상현실(VR) 미디어아트에 친숙한 젊은 세대의 호응이 높다.

경기도 아차산의 고구려 군사유적(보루) 모습. [중앙포토]

경기도 아차산의 고구려 군사유적(보루) 모습. [중앙포토]

지난달 24일엔 상설전시관 로비인 ‘역사의 길’에 발광다이오드(LED) 미디어타워, 일명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이하 광개토왕비)가 공개됐다. 중국 지안성의 광개토왕비(6.39m)를 재현한 높이 7.5m(받침대 포함 8m)의 미디어타워는 네 면을 둘러가며 총 1775자의 비문을 보여주면서 중요 단락은 부분 확대해 국문과 영문으로 소개한다.

이 역시 디지털 복제본이 실제 비석보다 원문을 잘 보여준다. 고구려 멸망 후 잊혔던 광개토왕비는 1880년대에 이끼 낀 모습으로 재발견됐지만 이후 관리 소홀로 비 표면이 심하게 훼손됐다. 디지털 광개토왕비는 1889년 원석 탁본인 청명본을 바탕으로 하고 빠진 글자도 여러 판본을 대조해 채워 넣었다. 류정한 학예연구관은 “청명본에서 3글자씩 이뤄진 탁본 자료를 비문의 각 위치에 배열하고, 규장각본과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의 고화질 자료를 협조받아 362자를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고구려가 활성화된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2004년 표면화된 중국의 동북공정 영향이 크다. 고구려·발해 등을 자신들의 소수민족 지방 정권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측의 역사 왜곡에 맞서 남북한 역사학계가 고구려 유물 조사에 협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북한 내 고분벽화를 공동조사한 것이 이때다. ‘유리건판으로 보는 고구려의 도성’(201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구려 기와(중국 지역)’(2023) 등 보고서도 잇따랐다. 1990년대 서울대 박물관이 주도한 경기 구리시 아차산 군사유적(보루) 발굴도 재조명받았다. 2012년 개관한 한성백제박물관은 제3전시실에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 등 고구려 주요 유물을 특화해 전시한다.

고구려 유적 전문가인 여호규 한국외대 교수(사학과)는 “이젠 중국도 한국의 고구려사 연구 성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실제 유적에 접근할 수 없다 해도 디지털 재현을 통해 고구려사의 존재감을 국내에서 더 키워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중국의 고구려 도성 관련 자료가 충분하니 광개토왕비에 이어 디지털 실감 영상을 추진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박물관 윤상덕 고고역사부장은 “고구려실을 올해 안에 현재의 2배로 확장하고 최근 발굴성과와 디지털 신기술을 활용해 고구려사를 더욱 가깝게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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