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삼성바이오로직스 전 대표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2부(부장 박정제·지귀연·박정길)는 2011년~2020년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였던 김태한 고문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을 은폐하는 데 참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같이 판단했다. 검찰은 앞서 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장부상 부풀리는 분식회계 관련 자료를 감춘 혐의(증거인멸교사)로 김모 부사장을 기소하면서 김 전 대표도 관여했다며 함께 재판에 넘겼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김 전 대표가 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관련 자료 삭제에 동의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2018년 5월 5일 김 전 대표도 참여한 회의에서 자료 삭제 논의가 있었고, 이후 김모 부사장이 은닉을 지휘했다고 봤다. 검찰이 이듬해 2019년 ‘합병 의혹’ 사건을 본격 수사에 나서면서 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에서 서버 등 자료를 압수해갈 수 있었던 건 이른바 ‘어린이날 회의’를 기점으로 증거인멸이 이뤄졌기 때문이란 것이다.
재판부는 함께 기소된 김 부사장의 증거인멸 교사는 인정했지만, 김 전 대표의 가담은 인정하지 않았다. 김 부사장은 김 전 대표에게 관련 보고를 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는데, 재판부는 “사람의 기억은 경험칙상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지는게 일반적인데, 김 부사장은 점점 더 구체적이고 상세한 진술을 하고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김 부사장에게만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김 전 대표와 김 부사장은 지난 2016년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에서 수십억 원의 회삿돈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도 기소됐으나 이날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두 사람은 등기임원이라 우리사주를 받지 못하게 되자 개인적으로 주식을 산 뒤 그 비용과 공모가액 간 차액을 회삿돈으로 받았다고 한다. 재판부는“차액 보상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차액 보상의 필요성과 정당성, 지급된 금액, 차액 보상으로 임직원 간 형평을 맞추려 한 점 등을 고려하면 횡령의 고의로 한 거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무엇보다 검찰이 이를 뒷받침할 주요 증거로 제출한 18테라바이트(TB) 용량의 백업 서버와 임직원 노트북 등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회장 재판에서와 마찬가지로 “관련된 전자정보만을 선별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전자정보 복제·탐색·출력 과정에서 변호인의 참여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으므로 위법수집증거”라 판단했다. 또 “외부감사법이나 증거인멸 등 다른 혐의와 관련해 발부받은 영장으로 횡령과 관련된 전자정보를 압수한 건 위법하다”며 “이 증거 또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