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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2시간30분 거리 어떻게 가나"…태백 유일 대학 '폐교' 비상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3일 찾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강원관광대 모습. 이 학교는 이달 말 폐교를 앞두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 13일 찾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강원관광대 모습. 이 학교는 이달 말 폐교를 앞두고 있다. 박진호 기자

신입생 모집 어려워 폐지 절차 밟아 

사람이 다니는 캠퍼스 진입로는 쌓인 눈 때문에 걸어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할 수 없이 차도를 따라 걸어 들어간 운동장에도 10㎝ 넘는 눈이 쌓여있었다. 눈밭에선 학생 3명이 꽃다발을 들고 학사모를 던지며 졸업을 축하했다. 지난 13일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강원관광대 모습이다.

이날 이 대학 운동장에서 만난 간호학과 졸업생은 “지난 8일 졸업식에 참석 못 해 뒤늦게 학교를 찾았다”며 “모교가 사라진다고 하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웅비관이라고 적혀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2024년 학위수여식 포토존’이 눈에 들어왔다. 학사모와 가운도 비치돼 있었다. 포토존은 마지막 졸업생들을 위해 오는 23일까지 운영된다고 한다. 강원관광대 관계자는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태백시 유일한 대학이었던 강원관광대(2~4학년제)가 이달 말 개교 29년 만에 문을 닫는다. 전문대 자진 폐교는 2018년 대구미래대 이후 전국에서 두 번째다. 이 학교를 경영하는 학교법인 분진학원은 재정 여건 악화와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결국 지난해 9월 2024학년도 신입생 모집 중단을 발표했다.

지난 13일 찾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강원관광대 정문 인도에 눈이 쌓여 있는 모습. 이 학교는 이달 말 폐교를 앞두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 13일 찾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강원관광대 정문 인도에 눈이 쌓여 있는 모습. 이 학교는 이달 말 폐교를 앞두고 있다. 박진호 기자

교육부 지난 5일 폐지인가 

이후 지난달 12일 자진 폐지를 허가해달라는 신청서를 교육부에 냈다. 교육부는 지난 5일 분진학원이 신청한 강원관광대 폐지를 인가했다. 학교가 없어진다는 소식에 학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특히 생업과 학업을 병행해온 상당수 학생은 뜻하지 않게 타지역 학교로 편입해야 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재적생 327명 중 323명은 충북 음성군 소재 사립 전문대인 강동대로, 4명은 강원 강릉시에 있는 사립 전문대인 강릉 영동대로 특별 편입학한다.

가정이 있는 40대 간호학과 재학생 A씨는 “학교 측에서 어느 날 갑자기 강동대로 편입이 결정됐다고 하니 학생 처지에선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며 “3월부터 차로 2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충북까지 가야 해 어떻게 학교 다녀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거지 인근 학교로 편입하게 해달라는 학생 요구에 학교 측이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진행된 것은 없었다”며 “졸업 후엔 실습도 나가야 하는데 학교가 멀어져 실습도 먼 곳으로 가는 것 아닌지 걱정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13일 찾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강원관광대 웅비관 1층엔 마지막 졸업생을 위한 2024년 학위수여식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이 학교는 이달 말 폐교를 앞두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 13일 찾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강원관광대 웅비관 1층엔 마지막 졸업생을 위한 2024년 학위수여식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이 학교는 이달 말 폐교를 앞두고 있다. 박진호 기자

상인들 “3월부터 타격 생길 것” 

대학 주변 상점과 원룸도 비상이 걸렸다. 상가 곳곳에 벌써 임대 안내문이 붙었다. 정문에서 200m가량 떨어진 상가엔 ‘상가임대(45평) 권리금 없음’이란 대형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또 인근 식당 창가엔 ‘점포 세줌’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조모(58ㆍ여)씨는 “학교에 학생들이 없다고 하니 당장 3월부터 타격이 생길 것”이라며 “일부 상인은 폐교 소식에 가게를 내놨지만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995년 3월 개교한 강원관광대는 졸업생 1만명을 배출했다. 1997년엔 카지노관광학과를 신설하는 등 입학정원이 1280명까지 늘었다. 한때 재학생이 2500명에 달해 태백지역 경제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학교가 생기면서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가 가득 차면서 태백시 인구 증가와 세수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수도권 대학이 카지노학과 등 관광 관련 학과를 우후죽순 만들면서 학생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까지 겹치면서 입학생을 채우지 못해 2020년 간호학과(4년제)를 제외한 나머지 6개 학과(호텔카지노관광ㆍ사회복지서비스ㆍ골프 레저ㆍ조리제과제빵ㆍ실용음악ㆍ호텔관광과)가 폐과했다. 이로 인해 입학정원도 98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채우지 못해 2023학년도에 94명만 왔다. 학교는 결국 지난해 9월 2024학년도 수시 모집을 포기했다.

지난 13일 찾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강원관광대 모습. 이 학교는 이달 말 폐교를 앞두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 13일 찾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강원관광대 모습. 이 학교는 이달 말 폐교를 앞두고 있다. 박진호 기자

상권 공동화 우려 목소리도 

지역사회도 동요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강원관광대학교 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출범했다. 송대섭 비대위원장은 “오래전부터 강원관광대 측은 지역과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폐교를 진행해 왔다. 이에 지난 2일 법원에 ‘폐지인가 집행중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법원 판단을 구하기 전에 이미 폐교 인가가 나 버렸다”고 했다.

주민들은 16만5290㎡(약 5만평)에 달하는 학교용지에 있는 건물과 시설이 오랜 시간 방치되면 흉물로 전락해 주변 상권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주민들은 공공기관 연수원 유치, 4계절 전지훈련단 숙소 활용, 유스호스텔, 노인요양원, 청소년수련 시설 유치 등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함억철 태백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은 “지역경제 침체를 막기 위해 현 학교 부지에 폴리텍대학을 유치하거나 노인병원 및 노인요양시설, 공공기관 연수원 등 활용방안을 조속히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찾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강원관광대 모습. 이 학교는 이달 말 폐교를 앞두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 13일 찾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강원관광대 모습. 이 학교는 이달 말 폐교를 앞두고 있다. 박진호 기자

원재희 총장 “지역에 도움되는 방향 연구”

원재희 강원관광대 총장은 “낙후된 지역을 교육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대학을 설립, 카지노학과와 간호학과 등을 만들고 특성화하는 등 열심히 노력했다”며 “점점 학생 모집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대학을 계속 유지하면 재정결손 누적으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할 수 없게 된다고 판단해 폐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시절 태백시 인구는 12만명을 넘었다. 하지만 현재 인구는 3만8000여명을 유지하고 있다. 유일한 대학 폐교에 이어 하나 남은 탄광인 장성광업소마저 오는 6월 폐광을 앞두고 있다.

한편 교육부와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전국에서 문을 닫은 대학은 강원관광대(2024년 2월 29일 기준)를 포함해 22곳에 달한다. 이 중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 대학은 2곳에 불과했다. 지역별로 보면 전남ㆍ전북이 각 4곳, 경북ㆍ충남 각 3곳, 강원 2곳, 부산ㆍ대구ㆍ경남ㆍ충북 각 1곳 등이다. 폐교 수순을 밟은 대학 대부분은 신입생 모집난에 따른 적자 운영과 재정 결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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