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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성한 전 안보실장 "尹, 트럼프 집권해도 '케미' 잘 맞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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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포럼 후 중앙일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포럼 후 중앙일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연평도 방식’의 민간 살상이 포함된 국지전, 아니면 ‘천안함 방식’(군 공격)의 군사 도발 둘 다 가능합니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은 12일(현지시간) 연내 북한이 치명적 수준의 군사행동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미국 조야의 우려와 관련해 “올해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북한이 확전을 안 시키면서도 한국에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시나리오는 널려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미 워싱턴 DC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포럼 후 중앙일보와 만난 김 전 실장은 40분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북한 입장에선 국제사회 비난이 일 수 있는 민간인 살상보다 한국군만 원점 타격하길 원하겠지만, 우리 측 접경지역엔 군과 민간인이 섞여 있어 ‘핀포인트’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용산 대통령실에 있을 당시 합참ㆍ정보기관을 동원해 북한의 대남 도발 및 대응 시나리오를 100여 가지 만들어 놨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및 한ㆍ미정상회담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인 지난해 3월 29일 돌연 자진 사퇴한 그가 언론 인터뷰에 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던 김 전 실장은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에서 퍼지고 있는 ‘트럼프 포비아’(공포), 한ㆍ미ㆍ일 안보협력, 북한 무력 도발 가능성 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김 전 실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관련해 “그는 상당히 브릴리언트(총명)하다”며 “사람들은 그가 다시 집권하면 본인 마음대로 다할 거라고 예측하는데, 저는 반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과의 ‘케미’(호흡)도 잘 맞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은 센 사람과도 1대1로 붙어서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장기가 뛰어나 (트럼프 재집권시) 거의 한 달 내로 적응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컨대 트럼프가 약 5000억원의 방위비 분담 인상을 압박해 오면 윤 대통령은 ‘까짓거 해주자. 그 대신 경제안보 등에서 2조~3조 받아내면 된다’ 할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ㆍ미ㆍ일 3국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ㆍ미ㆍ일 3국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11월 미 대선 이후 한ㆍ미ㆍ일 3국 안보 협력이 지속 가능할지 관심이 높은데.
“지속 가능하다. 다만 기본 전제가 있다. 먼저 한ㆍ일 공조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미국이 주도해 앞으로 끌고 나가고 한ㆍ일은 뒤에서 무임승차하는 건 안 된다. 말 그대로 3국이 정삼각형 비슷하게(비슷한 책임과 역할로) 가야 한다. 또 하나는 미국의 대중(對中) 관계다. (재집권 시) 중국 압박의 숙제를 안고 있는 트럼프 입장에서는 한ㆍ미ㆍ일 3국 협력이 제대로 작동되면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된다. 트럼프는 비즈니스 정신이 강하기 때문에 한ㆍ미ㆍ일 3국 협력을 약화시킬 이유가 없다.”
한국은 한미연합사가 작동하지만, 일본은 자위대의 한계가 있지 않나.
“그래서 트럼프는 일본 우익의 요구, 가령 일본의 전쟁 포기 등을 담은 헌법 9조 개정 요구를 들어주려 할 가능성이 있다. 또 1997년 개정된 미ㆍ일 방위협력 지침에 따라 주변 사태 발생 시 일본 자위대는 기뢰 제거 등 미군 후방 지원을 맡는데, 그 범위를 더욱 확장하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의 족쇄들을 풀어주려 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도 더욱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야 하지 않나.
“그래서 나도 그간 ‘전력 제공국’으로 한정했던 유엔군사령부 회원국 개념을 ‘전력 사용국’인 한국을 포함하는 회원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내가 그렇게 준비를 하다가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일본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소위 ‘동북아사령부’인데, 이건 우리가 받을 수 없다. 우리의 동의 없이 일본이 미국에 요구하기는 힘들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유세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회원국들이 러시아 등 적대국 공격을 받을 경우 보호하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그들(러시아)이 원하는 것을 다 하라고 격려할 것이라고 말해 국제사회 반발이 나오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2019년 12월 4일 영국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 당시 대통령.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유세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회원국들이 러시아 등 적대국 공격을 받을 경우 보호하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그들(러시아)이 원하는 것을 다 하라고 격려할 것이라고 말해 국제사회 반발이 나오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2019년 12월 4일 영국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 당시 대통령. AP=연합뉴스

'방위비를 충분히 내지 않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동맹국들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도 돕지 않을 것'이란 트럼프의 발언으로 논란이 한창이다.
“나토 회원국은 우리 기준에서 보더라도 국방비를 너무 안 쓴다. 2006년 나토 회원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의 국방비 지출을 합의한 바 있다. 의무 조항은 아니지만 아직 1% 미만인 곳이 태반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독일과 폴란드가 상당히 늘렸을 뿐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트럼프의 말을 진작 들었어야 됐다. 그래서 트럼프가 엉덩이를 확 치면서 더 올리라고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러시아가 내키는 대로 하라고 하겠다”고도 말했다.
“정치적인 레토릭 아닐까. 그 메시지는 ‘나토 회원국들은 국방비를 GDP의 2% 이상 올려라. 그렇지 않으면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것인데 방점은 앞에 찍혀 있을 것이다.”
지난해 말 ‘트럼프 재집권시 북핵 동결 대가로 대북 제재 완화를 추진한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 측이 부인했지만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2022년 윤 대통령이 밝힌 ‘담대한 구상’에도 북한이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북한의 광물자원과 국제사회의 식량을 교환한다는 프로그램이 들어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그런 보도도 이상할 건 없는데 기본 전제는 비핵화다. 비핵화를 한다는 전제에서 동결해야지 비핵화 없이 동결만 한다고 보상을 주는 것은 안 된다.”
(트럼프 재집권 시) 트럼프와 윤 대통령의 ‘케미’는 어떨까.
“윤 대통령이 한 달 내로 적응할 것 같다. 시쳇말로 센 스타일하고도 1대1로 붙어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장기가 대단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약간 어른 공경하듯 대해 마음을 얻었다. 트럼프에게는 다소 정중하게 대하면서도 화끈한 관계가 될 수 있다. 가령 트럼프가 한국에 방위비 분담 인상을 요구해 온다면 ‘(현행) 약 1조에서 5000억원 정도 까짓거 올려주자. 그 대신에 우리가 양국 경제안보 등에서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 2조, 3조어치 받아내면 된다’ 그럴 스타일이다. 자잘한 것 따지는 스타일이 아니다. 옛날에도 같이 밥 먹으면 무조건 본인이 내는 스타일이다. 트럼프와도 케미가 잘 맞을 것이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포럼 후 중앙일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포럼 후 중앙일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북한의 무력 도발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한국 총선, 미국 대선이 있어서 상당 수준의 도발 가능성은 있다.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제가 2022년 12월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 사건 이후 합참과 정보기관을 동원해서 북 도발 및 대응 시나리오를 100여 가지 만들어 놓고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연내 현실화 가능성이 있는 북한의 예상 도발 수위는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민간 포격도 있을 수 있다. 만약 북한이 한미연합사령부 등에 심어놓은 스파이가 있다면 ‘구멍’을 알 수 있다. 이를 이용해 ‘서프라이즈 어택’(기습)을 할 수 있다.”
국가안보실장으로 있으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인수위 시절 경제안보비서관실을 만든 게 제일 자랑스럽다. 일본은 2021년 기시다 후미오 정권 출범 후 ‘경제안보상’을 신설했다. 세계가 더는 신고전파 경제 논리로 돌아가는 게 아니고 안보 논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간파했다. 미국도 경제안보란 말을 쓰지 않았을 때다. 우리는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국가안보실을 개편하면서 경제안보비서관을 1차장 산하에 신설한 것으로 대응했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은

국제정치학자로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 대광초등학교 동창이며 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꾸릴 때 외교안보 정책 자문단에 들어갔다. 2022년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안보 분과 간사를 맡는 등 윤석열 정부 초기 외교안보 분야 밑그림을 그렸다. 윤 대통령이 대선 당선 다음날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전화 통화를 김성한 당시 인수위 외교안보분과 간사의 휴대폰으로 해 눈길을 끌었다.
 미 텍사스대 오스틴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 취득 후 외교안보연구원(현 국립외교원)에서 미주연구부 교수로 지냈고 2007년 모교인 고려대 국제대학원으로 이직했다. 17대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후보의 외교안보 정책 자문에도 참여했다. 이때부터 한ㆍ미 동맹의 중요성과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을 강조했으며 2012년부터 1년간 외교부 제2차관으로 일했다.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 일정을 한 달 앞둔 지난해 3월 29일 국가안보실장에서 자진 사퇴했다. 한ㆍ미 정상회담 등 굵직한 외교 일정을 앞두고 국가안보 사령탑이 갑자기 물러난 것은 매우 이례적이어서 당시 사퇴 배경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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