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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北유도탄!" 1분만에 요격 끝낸다…잠들 수 없는 서울함 [서해 NLL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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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7일 오후 해군 2함대사령부 산하 대구급 호위함(2800t급) 서울함의 전투 지휘실에서 승조원들이 박제준 함장(42·가운데)의 지휘로 전투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해군

지난 7일 오후 해군 2함대사령부 산하 대구급 호위함(2800t급) 서울함의 전투 지휘실에서 승조원들이 박제준 함장(42·가운데)의 지휘로 전투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해군

“유도탄! 유도탄!”

지난 7일 오후 1시 58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 해상 경계 근무 중인 해군 2함대사령부의 2800t급 신형 호위함 서울함(FFG-Ⅱ)의 전투 지휘실에서 다급한 함내 방송이 울려 퍼지자 박제준(42·해사 59기·중령) 함장 이하 100여명의 승조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전투 배치’ 모드에 돌입했다.

비상등이 켜지자, 지휘실이 숨막힐 듯한 푸른 빛으로 가득 찼다. 지금 켜진 청색등은 서울함의 탐지 장비가 NLL 이북 해상에 있던 북한 함정의 유도탄 발사 징후를 포착했다는 뜻. 빠르면 40초 뒤, 길어도 1분 안에 우리 함정이 격침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빠르게 구명의를 입으면서 대응 태세를 갖춘 승조원들의 표정은 긴장돼 보였지만, 행동은 침착했다. 박 함장은 "5인치 함포, 해궁, 근접 방어 무기 체계(CIWS) 등을 가동하라"고 명령했다. 국산 함대공 방어 미사일인 ‘해궁’ 등으로 우선 유도탄 공격을 저지하라는 의미였다. 적의 유도탄을 교란하기 위한 기만탄, 전자 공격도 동시에 이뤄졌다.

곧이어 박 함장이 “적정 해성 이용 타격”이라고 말했다. 우리 측 대함 유도 미사일인 ‘해성’으로 북한의 함정을 격침하란 지시, 망설임 없는 원점 타격 결정이었다.

“유도탄 발사 10초 전! 10, 9, 8, 7. 6…발사!”

이어 몇 초간 긴장 어린 정적이 흘렀다. 표적에 명중했다면 생(生), 빗나갔다면 사(死). 누군가에게는 찰나이지만, 서울함 승조원들에겐 운명이 결정되는 시간이었다. 이내 지휘실 모니터에 떠 있던 표식들이 사라졌다. 북한의 유도탄들이 공중에서 격추됐고, 함정도 파괴됐다는 평가가 떴다.

이날 공격 상황은 가상 훈련의 일부였다. 탐지부터 상황 종료까지 걸린 시간은 약 10분. 실전이었다면 적함으로부터 실제 미사일이 날아들고, 해궁과 해성이 불을 뿜었을 테다.

훈련은 가상이지만, 서해에 출항하는 승조원들의 마음가짐은 항상 실전이다. 제1연평해전(1999년)과 제2연평해전(2002년), 천안함 피격(2010년) 등으로 55명의 장병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최전방 바다’이기 때문이다. 평택을 모항으로 하는 해군 2함대 산하 함정 근무자들이 경계 작전에 나설 때마다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연평해전 전승비와 천안함 46용사 추모비 앞에서 결의를 다지고, 출동 대신 ‘출전(戰)’으로 부르는 이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방한계선은 허용할 수 없다”(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고 선언하고 연일 전쟁 위협을 하는 가운데 중앙일보는 해군의 협조로 지난 7~8일 서울함에 동승했다. 언제, 어디서든 북한군의 공격이 이뤄질 수 있는 NLL 부근 백령도 해역에서 ‘잠들 수 없는 전투함’의 24시간을 따라가 봤다. 설 연휴를 앞두고 전국이 들떠 있는 시점이었지만, 4월 총선 전 북한이 도발한다면 또다시 표적이 될 수 있는 서해 NLL의 긴장감은 남달랐다.

서울함이 파도를 헤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작전 구역으로 향하는 모습을 함수(뱃머리)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 해군

서울함이 파도를 헤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작전 구역으로 향하는 모습을 함수(뱃머리)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 해군

◇7일 09시 58분 : “출하아앙~!” 우렁찬 함내 방송과 함께 군함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함교 당직 사관이 조함을 맡았다. 그가 “양현 앞으로 20”이라고 지시하면 “양현 앞으로 20!”이라는 승조원들이 복창이 이어졌다. 평택항은 암초가 많고 일반 상선들도 다니는 데다가 협수로라는 ‘삼박자 난이도’가 있는 수역이다.

◇11시 30분 : “상황 끝”이라는 함내 방송이 들려왔다. 1시간 넘게 서행으로 협수로를 벗어나 작전구역까지 수 시간 동안 경계 임무를 하며 이동을 시작했다. 이날 점심으로는 뼈 해장국과 새우튀김, 고추된장무침 등이 나왔다. 정현범(34·소령) 부장은 “설 연휴에는 떡 만두국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명절에도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채 망망대해에서 24시간 근무해야 하는 승조원들을 위로하기 위한 특식이다.

◇13시 00분 : “잠시 후 탄약 장전.” 점심시간도 잠시, 함내 방송이 울려퍼졌다. 탄약 장전은 창고에 보관돼 있는 함수의 5인치 함포를 발사 가능 상태로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소총 등 모든 화기가 바로 꺼내 쏠 수 있는 자리에 정위치했다.

지난 7일 서울함의 비행 갑판에서 승조원들이 AW-159 와일드캣 해상 작전헬기에 항공 급유를 하고 있다. 사진 해군

지난 7일 서울함의 비행 갑판에서 승조원들이 AW-159 와일드캣 해상 작전헬기에 항공 급유를 하고 있다. 사진 해군

◇14시 57분 : ‘부다다’ 고막을 때리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AW-159 와일드캣 해상 작전헬기가 비행 갑판에 내려앉았다. 오명진(28·대위 진) 갑판사관(담당 장교)의 지휘에 따라 30~40명의 승조원들이 바삐 움직였다. 한 시간에 걸쳐 갑판의 안전망을 내리고, 날개 고정 장치 등을 준비한 뒤 승조원들이 헬기의 앞바퀴에 와이어를 걸어 격납고로 살살 이끌었다. 전 과정을 지휘한 갑판사관과 부사관은 여군. 서울함은 전체 승조원 중 약 10%(11명)가 여성 장교, 부사관이다. “성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군이 해야 할 일”이라고 오 갑판사관은 말했다.

◇20시 50분 : 전면부가 통유리창으로 돼 있는 함교는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밤에 불을 완전히 끄고 근무한다. 함교에서 바라보니 검은 바다와 하늘이 구분되지도 않았다. 박 함장은 “어두울 수록 북한의 침투 위협에 취약해질 수 있는데, 오늘은 섣달 그믐에 가까워 무(無) 월광”이라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8일 0시(자정) : 서울함은 전원이 3교대로 8시간씩 나눠 당직을 선다. 좌현 갑판에선 견시 진태훈(28) 일병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으려 해도 자꾸 몸이 뒤로 밀릴 정도의 강풍이 계속 불었다. 견시는 미심쩍은 물체가 없는지 레이더가 아닌 눈·귀로 직접 보고 듣는 역할이다. “춥고 피곤하지만, 이 배에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제 의무를 다할 수 있어 만족합니다” 진 일병은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서울함의 비행 갑판에 착함을 시도하고 있는 AW-159 와일드캣 해상 작전헬기. 와일드캣은 적의 잠수정·잠수함을 탐지하는 능력이 있다. 사진 해군

서울함의 비행 갑판에 착함을 시도하고 있는 AW-159 와일드캣 해상 작전헬기. 와일드캣은 적의 잠수정·잠수함을 탐지하는 능력이 있다. 사진 해군

◇05시 50분: 북한 어업지도선 네 척이 NLL 북방에서 포착됐다. 박 함장이 전투 지휘실로 들어와 상황을 살폈다. 잠시 긴장이 감돌았지만, 다행히 북한 선박이 더는 남하하지 않았다. 서울함도 이에 비례하는 방향으로 기동 조치를 취했다. 정현범 부장은 “불필요한 위기를 고조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국내·국제법적으로 정당한 대응을 한다”고 말했다.

◇09시 05분: 서해 경계 임무를 위해 AW-159 와일드캣 한 대가 추가로 비행 갑판에 안착했다. 기자가 탑승하자, 헬기가 좌현으로 살짝 기우는 듯 하더니 순식간에 가뿐히 날아 올랐다. 헬기는 약 308m 고도에서 수면 위를 빠르게 날았다. 강한 햇살 덕에 해수면의 부표는 물론 수중의 어망까지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했다. 밝은 날엔 북한의 잠수정도 찾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10시 30분: 평택 기지 모처에 헬기가 착륙했다. 조종석을 향해 인사를 몸짓으로 건네자, 2함대 622비행대대 소속 조종사의 거수 경례가 돌아왔다. 기자의 입가에도 어느새 ‘필승!’하는 해군의 경례 구호가 맴돌았다. 동승 취재는 끝났지만, 설 연휴 내내 잠들지 않고 서해 NLL을 지킬 서울함에 보내는 인사였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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