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혹에 은퇴 손유희 “춤만 생각하며 살아…만점 주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7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난 손유희 수석 무용수의 발(아래 사진)은 32년째 하는 발레로 일그러져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7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난 손유희 수석 무용수의 발(아래 사진)은 32년째 하는 발레로 일그러져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손유희(40)가 16일 발레 갈라 ‘코리아 이모션’ 공연을 끝으로 은퇴한다.

8살에 발레를 시작해 13살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 손유희는 2001년 귀국해 당시 17세의 나이로 국립발레단에서 프로 무용수로서의 첫걸음을 뗐다. 그 후 미국 털사발레단과 한국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바늘 문’으로 불리는 수석 무용수 자리에 올랐고 ‘호두까기인형’의 클라라,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오로라, ‘지젤’의 지젤 등 인기 작품의 주역을 두루 거쳤다. 2012년 유니버설발레단 동료인 이현준 수석무용수와 결혼해 2018년 쌍둥이 엄마가 됐고, 2020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재입단했다.

지난 7일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난 손유희는 “오로지 춤만 생각하면서 살았다”며 “춤을 대하는 마음가짐 만큼은 스스로 만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은퇴를 결심한 계기는.
“선화예중에서 무용과 실기 강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채용이 결정된 후에는 큰 고민 없이 결정을 내렸다.”
미련이 남는 작품이나 배역은 없나.
“감사하게도 유니버설발레단과 미국 털사발레단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배역에 미련이 있었다면 은퇴 결정이 힘들었을 것이다. 평생을 무용수로 살아온 만큼 무대를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당연히 있다. 다만 이제는 새로운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7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난 손유희 수석 무용수의 발은 32년째 하는 발레로 일그러져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7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난 손유희 수석 무용수의 발은 32년째 하는 발레로 일그러져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래 전부터 지도자를 꿈꿨나.
“13살에 혼자 러시아로 유학을 갔다. 러시아어를 전혀 못 했고 향수병도 심하게 앓았다. 그때 한 은사님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연습실에서는 누구보다도 냉정하셨지만, 연습실 밖에서는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그런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직업 무용수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미국과 한국에서 프로 무용수로 일했고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발레를 배웠다.
“유럽 발레와 미국 발레, 러시아 발레를 모두 안다는 게 내 장점이었다. 각각 개성이 뚜렷해 춤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예를 들면 프랑스 발레는 섬세한 발 동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학생에서 프로로 넘어가는 시기에 그걸 배울 수 있었다. 미국 털사발레단에서는 모던 발레를 하면서 다양한 작품을 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은.
“털사발레단에서 드라마 발레 ‘오네긴’의 타티아나 역을 맡았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누구의 것을 따라 하지 않아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된다는 걸 이때 깨달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미리내길’도 각별한 작품이다. 문훈숙 단장님이 물 만난 물고기 같다는 평을 해주셨고 관객 반응도 좋았다.”
어떤 순간 가장 크게 성장했다고 느끼나.
“인생 전체를 봤을 때는 출산이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180도 변했다고 할까. 춤에 대한 마음가짐도 바뀌었고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도 변했다. 출산 전에는 온통 나 자신과 발레 뿐이었다면 이후에는 선후배들을 더 챙기게 되더라.”
지도자로서의 목표는.
“한국은 무용하는 학생들이 사교육을 많이 받는다. 경쟁적인 분위기도 강하다. 그래서 지금 학생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크다. 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이 되고 싶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