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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퇴 후 집안일 한다"…가사·육아에 적극적인 '요즘아빠' 뜬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한 가족이 연휴를 즐기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한 가족이 연휴를 즐기고 있다. 뉴스1

#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35)씨는 3년 전 첫 아이를 품에 안은 이후 오후 6시면 ‘칼퇴’를 한다. 한 시간 일찍 퇴근한 아내가 어린이집에 들러 아이의 하원을 도맡을 동안 이씨가 저녁 준비와 집안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식은 물론 결혼 초기만 해도 한 달에 서너번 있던 친구들과의 약속도 잡지 않은 지 오래다. 이씨는 “둘 다 맞벌이를 하니 집안일과 육아의 책임을 어느 한 명에게 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를 먼저 낳은 지인들도 육아는 '함께' 해야 한다고 조언을 한다”라고 말했다.

가정보다 일에 우선순위를 뒀던 과거와 달리 최근 일과 가정의 양립을 추구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맞벌이 가구 증가로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뀐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12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분투하는 30대 요즘아빠’ 보고서에 따르면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 결과 20~60대 남성 중 일과 가정의 양립을 추구한다고 답한 비율은 43.6%로 10년 전(27.9%)보다 15.7%포인트 증가했다. 전국 약 1만9000개 표본 가구 내 상주하는 만 13세 이상 가구원 3만6000여 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5월  17일~6월 1일까지 16일간 조사한 내용을 집계한 결과다. 가정을 더 우선시하는 남성도 10년 전 8.3%에서 16.5%로 8.2%포인트 늘었다. 반면 일을 우선시하는 남성 비율은 63.8%에서 39.9%로 23.9%포인트 감소했다. 이젠 가사노동을 부부가 공동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해진 것이다.

연령대별로 보면 이런 경향은 아이를 본격적으로 양육하는 30대에서 두드러졌다. 지난해 일보다 가정에 우선순위를 둔 남성 비율은 30대가 24.4%로 ▶20대 18% ▶40대 16.6% ▶50대 10.8% ▶60대 12.6%보다 높았다. 남성이 하루 중 가족 돌봄에 할애하는 시간도 대체로 30대가 길었다. 주중엔 49분으로 은퇴 연령층인 60대(1시간 7분)를 제외하고 가장 길었고, 주말엔 1시간 53분으로 전 연령층 중 가장 길었다.

남성의 인식이 변화한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보고서를 작성한 김준산 연구위원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로 여성의 경제력이 상승하고 남녀평등 의식 확산이 남성의 가사와 육아 참여율 증가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실제 30대에서 맞벌이 가구 비율은 2012년 41.7%에서 2022년 54.2%로 12.5%포인트 증가했다. 남성 대비 여성의 소득 비율은 2012년 79%에서 2022년 84%로 5%포인트 상승했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남성들이 분투하고 있는 모습은 저출산 극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그간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이 여성만의 문제로 남아있어 결국 출산을 포기하거나 일을 그만두는 파괴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그런데 남성이 이 어려움을 함께 한다면 이렇게 극단적으로는 흐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다만 인식 변화와 달리 현실에서의 한계는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계청의 ‘2022년 육아 휴직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대상으로 육아 휴직을 시작한 사람 19만9976명 중 27.1%는 남성 휴직자로 집계됐다. 전년(24.1%)보다 3%포인트 상승하며 비율이 늘었지만, 여성보다 사용률이 현저히 낮다. 육아 휴직을 사용한 아빠의 70.1%는 300인 이상 대기업 소속 직장인으로 나타나 기업 규모별 격차도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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