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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시간 빼곤 오직 일만 한다, BMW도 모셔가는 170㎝ '로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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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로봇이 '아이오닉5'를 조립하는 모습. 사진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로봇이 '아이오닉5'를 조립하는 모습. 사진 현대차그룹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죽 늘어선 노동자들이 쉼 없이 나사못을 조이는 모습이 나온다. 헨리 포드가 1913년 처음 도입한 자동차 공장이 이 장면의 모티프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차 제조 과정에서 로봇 의존도를 높이면서 100여년간 이어져 온 자동차 공장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찰리 채플린 영화 '모던타임즈'의 한 장면. 중앙포토

찰리 채플린 영화 '모던타임즈'의 한 장면. 중앙포토

12일 업계에 따르면 BMW는 최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공장에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투입을 결정하고 성능을 검증하고 있다. 회사 측은 로봇 투입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향후 2년 이내 차체 제조나 판금 등 일부 공정에서 인간 노동자와 손발을 맞추게 할 방침이다.

BMW 생산라인에 투입되는 로봇은 키 170㎝에 무게는 약 60㎏으로, 사람처럼 양 팔·다리, 다섯 개의 손가락을 가졌다. 1초당 1.2m를 움직일 수 있으며 약 5시간마다 ‘밥 먹는 시간(충전)’을 제외하면 맡은 일에만 집중한다. 로버트 엥글혼 BMW 매뉴팩처링 최고경영자(CEO)는 “자동차 생산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며 “로봇은 생산 효율을 높이고 변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스타트업 피규어가 제작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BMW는 최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공장에 이 로봇의 투입을 결정하고, 성능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피규어

미국 스타트업 피규어가 제작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BMW는 최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공장에 이 로봇의 투입을 결정하고, 성능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피규어

자동차 제조 현장에선 이처럼 로봇에 ‘손’을 넘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인건비 급증이나 파업 등에 대한 리스크가 적고, 사람보다 더 정교한 작업이 가능한 게 그 이유다.

‘로동자(로봇+노동자)’ 도입을 가장 공격적으로 추진하는 회사는 업계 후발주자인 테슬라다. 테슬라는 2016년 ‘모델3’ 양산 준비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프리몬트공장의 전공정을 완전 자동화하려 했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생산 차질이 빚어지자 결국 인간 근로자 400여 명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공장 자동화 확대가 미래 제작비의 50% 절감을 위한 중요 방안 중 하나”라고 밝히는 등 무인화 드라이브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 자동화율이 95%에 달한다”고 밝힐 정도로 무인화에 따른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테슬라 미국 캘리포니아 프리몬트 공장에서 로봇이 '모델 S'를 조립하는 모습. AP=연합뉴스

테슬라 미국 캘리포니아 프리몬트 공장에서 로봇이 '모델 S'를 조립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전통 자동차 업체들도 이전부터 일부 공정 자동화를 추진해왔지만, 지난해 미국 자동차 빅3 업체와 전미자동차노조(UAW) 간 인건비 협상이 끝난 뒤부터 움직임이 더 분주해졌다. 제너럴모터스(GM)·포드·스텔란티스 등과 UAW는 2028년까지 임금 25% 인상을 합의한 바 있다. 인건비 증가의 대책에 대해 존 롤러 포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공장 자동화에서 기회를 찾겠다”고, GM 관계자는 “생산성을 높이고 작업 환경이 안전해질 수 있도록 자동화 기술을 계속 활용할 것”이라고 각자 밝혔다.

현대차그룹도 지난해 지능형·자동화 제조 플랫폼을 갖춘 싱가포르 글로벌혁신센터(HMGICS) 가동을 시작하는 등 공장 자동화에 고삐를 죄고 있다. HMGICS의 생산라인에는 컨베이어 벨트 대신 소규모 작업장인 ‘셀’에서 작업자와 로봇이 짝을 이뤄 차량을 조립해낸다. 물류단계 자동화율은 65%, 조립단계는 46%에 이른다. 올해 완공 예정인 기아 오토랜드 광명 2공장에도 이같은 시스템을 적용해 로봇과 작업자가 손발을 맞출 예정이다.

테슬라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모델3' 차량이 출고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테슬라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모델3' 차량이 출고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 생산라인에서 아이오닉5 차체를 스캔하는 로봇팔 모습. 사진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 생산라인에서 아이오닉5 차체를 스캔하는 로봇팔 모습. 사진 현대차그룹

업계에선 기존 공장 인력을 당장 로봇으로 대체하기보다 미래 공정에서 로봇 투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차 업계들이 공장 자동화에 다가설 것으로 전망한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네스터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산업 로봇화 규모는 2022년 70억 달러(약 9조3000억원)에서 2033년 200억 달러(약 26조70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업체 측은 “로봇이 조립·절단·도장 등 다양한 공정에서 차량 제조를 지원할 것”이라며 “사람이 작업할 때보다 오류가 줄어들고, 근로자의 심각한 부상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우명호 고려대 자동차융합학과 석좌교수는 “내연기관차보다 제조 공정이 단순한 전기차 생산이 늘어나는 것도 로봇 투입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라며 “테슬라·BMW가 방침을 밝혔듯이 미래엔 휴머노이드 로봇이 제조라인 상당수에 도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직접 조립할 때보다 품질을 세밀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향후 로봇을 각 공정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소프트웨어(SW) 경쟁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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