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28 ·여)씨는 지난해 3월 랜덤채팅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처음 마약을 접했다. 지인 A씨를 통해서였다. A씨는 랜덤채팅 ‘앙톡’ ‘즐톡’ 등에 “ㅋㄷ구해요”라는 글을 수차례 반복해 올렸다. ‘ㅋㄷ’는 마약 투약자들 사이에서 엑스터시를 가리키는 표현인 ‘캔디’의 초성이다. 글을 올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성이 김씨의 지인에게 “캔디를 갖고 있다”며 채팅을 걸어왔다.
김씨는 지인과 함께 해당 남성이 알려준 장소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필로폰을 함께 투약했다. 김씨는 “해당 남성이 만난 뒤 성관계를 요구하더라”며 “랜덤채팅 앱에서 마약을 준다는 남성들이 적지 않은데, 대부분 그런 의도를 갖고 접근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만남 이후 마약을 제공한 남성이 다른 마약 투약 현장에서 체포됐다. 결국 김씨도 마약 투약 혐의가 적발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과거 미성년자 성매매 등 성범죄 통로로 지목받았던 랜덤채팅 앱이 마약 유통·소비 창구로까지 번지고 있다. 설 연휴인 12일에도 랜덤채팅 앱에서는 마약 투약을 제안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대화명을 ‘얼음크리스탈’로 설정한 한 33세 남성이 “얼음 넣고 술 같이 한 잔할 여자분 찾아요”란 글을 올려 채팅 상대를 찾고 있었다. “차가운 술 드실 분?” 등 글도 있었다. ‘차가운 술’과 ‘얼음’ ‘아이스’ 등은 모두 마약 투약자들 사이에서 필로폰을 뜻하는 은어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은 “랜덤채팅 앱을 통해 마약을 접하고 중독에 이르게 됐다는 상담 사례들이 최근 수년간 많이 늘었다“며 ”특히 채팅앱을 많이 이용하는 20대일수록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체감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랜덤채팅앱을 통해 마약을 접한 뒤 유죄를 선고 받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춘천지법 원주지원은 2022년 9월 랜덤채팅 앱에서 만난 여성 2명과 서울 종로구의 모텔과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4차례 필로폰 투약 혐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된 유명 작곡가 돈스파이크(본명 김민수·47) 역시 랜덤채팅 앱 중 하나인 ‘앙톡’을 통해 유흥업소 종업원을 만나 함께 마약을 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도 이를 의식해 랜덤채팅 앱에서 위장 단속을 벌이기도 한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마약 수사를 하는 한 경찰관은 “미성년자 성매매 단속을 위해 채팅 앱을 모니터링 하는 과정에서 마약 범죄가 의심되면 마약 수요자로 가장해 본격적인 수사를 벌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지난해 6월 랜덤채팅앱에서 졸피뎀 구매를 가장한 경찰 수사관에게 스틸녹스 10정을 전달한 C씨에게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혐의를 적용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랜덤채팅 앱은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회원가입이 가능한 만큼 마약 거래자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고 수사기관에서 개인 채팅방을 일일이 들여다볼 수도 없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랜덤채팅 앱은 얼굴·신상을 밝히지 않고 마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단이면서 단속도 어려운 치외법권이나 마찬가지”라며 “앱 개발사들이 본인인증을 강화하고, 마약 거래에 쓰이는 은어를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