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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AI로 판 바뀌는 반도체…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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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오픈 AI 샘 올트먼 CEO. AP=연합뉴스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오픈 AI 샘 올트먼 CEO. AP=연합뉴스

오픈AI, 반도체 직접 생산에 7조 달러 투자 예고

한국도 TSMC 유치 일본처럼 과감한 지원 나서야

챗GPT 출시로 불과 1년여 만에 인공지능(AI) 대중화 시대를 연 미국의 오픈AI가 이번에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판을 송두리째 바꿀 대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에 나섰다. 반도체 주도권을 둘러싼 빅테크 기업 간의 ‘칩워’(반도체 전쟁)에서 반도체 강국 한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될 수도, 반대로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자체 AI반도체 개발과 생산공장 건설을 위해 무려 5조~7조 달러(약 6600조~9300조원)의 자본 조달을 목표로 투자자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 전체 매출액이 5270억 달러(700조원) 수준이라는 걸 고려하면, 오픈AI의 목표 펀딩액은 기존 반도체 시장을 완전히 뒤바꿀 천문학적인 숫자다. 아직 구체적 사업 계획이 발표된 건 아니다. 하지만 올트먼이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의 AI 기업이자 오픈AI 투자사이기도 한 G42의 타흐눈 빈 자예드 회장 겸 UAE 국가안보 고문을 만난 것으로 볼 때, 업계는 오픈AI가 중동 오일머니를 확보해 첨단 AI반도체 생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오픈AI가 소프트웨어를 넘어 하드웨어(반도체)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겠다고 나선 것은 AI 개발 속도를 하드웨어(반도체)가 못 따라가는 병목현상 탓이 크다. 게다가 AI 연산에 주로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커지는 데 따른 피로감도 한몫했다. 산업 전반에 AI가 활용되면서 엔비디아 칩의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한 게 자체 생산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오픈AI가 그리는 반도체 동맹에 올라탄다면 AI가 촉발한 반도체 호황의 승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에만 기대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특히 파운드리(위탁생산) 1인자인 대만 TSMC의 행보를 보면 한국이 직면한 위기가 뚜렷이 보인다. TSMC는 최근 일본 자회사 JASM에 200억 달러(26조원) 투자를 통해 일본 내 제2 공장 가동 계획을 발표하는 등 일본과 합작해 공격적인 생산공장 증설에 나섰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공장 건설비를 최대 50%까지 지원하는 일본 정부의 과감한 반도체 부양 정책에다 상대적으로 값싼 대졸 초임 인건비 덕이 컸다.

비단 일본뿐 아니라 세계 반도체 시장에선 각국 정부의 적극적 정책과 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결합해 반도체 합종연횡이 한창이다. 여기서 삐끗하면 반도체 강국 유지는커녕 도태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로서도 기업 발목잡기 행태를 자제하면서 과감한 지원 정책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