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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절절하게 부르는 저 배우, 정체가 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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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신인 배우 루미나는 뮤지컬 데뷔작 ‘레미제라블’에서 약 800명이 지원한 오디션을 뚫고 에포닌 역할에 더블 캐스팅됐다. 전민규 기자

신인 배우 루미나는 뮤지컬 데뷔작 ‘레미제라블’에서 약 800명이 지원한 오디션을 뚫고 에포닌 역할에 더블 캐스팅됐다. 전민규 기자

“외국인이란 게 관람에 장벽이 될 수 있고, 무대 위 모습을 어색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최근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에포닌 역할로 주목받는 신인 배우 루미나(23)가 유창한 한국말로 소감을 밝혔다. 인도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이다. 그런데 뮤지컬에는 한국에서 데뷔했다. 현재 서울 공연(블루스퀘어) 중인 ‘레미제라블’ 한국어판 세 번째 시즌의 에포닌 역이다.

‘레미제라블’은 다음 달 10일까지 서울에서, 21일부터는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그를 최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에포닌은 19세기 프랑스 청년 혁명가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가난한 여관집 딸이다. 출연 비중은 적지만 마리우스를 향한 절절한 마음을 노래한 넘버 ‘나 홀로(On My Own)’ ‘내일로(One Day More)’ 덕분에 여주인공 코제트보다 주목받기도 한다. 그가 지난해 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부른 ‘나 홀로’ 유튜브 영상은 호평 일색이다. 이런 댓글도 있다. “(노래를 듣고) 당연히 한국분인 줄 알았는데, 일본 국적이란 것에 놀랐고, 서울대 성악과란 데서 두 번 놀랐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서 4살이던 2004년 처음 뮤지컬 ‘엘리자벳’을 보고 흠뻑 빠진 루미나는 이듬해 ‘레미제라블’을 본 뒤 ‘언젠가 에포닌을 맡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본은 미국·영국과 함께 뮤지컬 세계 3대 시장에 꼽힌다. 연 매출 규모가 8000억원(2021년 기준)이다. 일본 시장의 절반 규모인 한국으로 뮤지컬 유학을 결심한 건 중학교 때 재밌게 본 뮤지컬 ‘셜록 홈즈’ ‘드라큘라’ ‘모차르트!’ ‘빨래’ 등이 한국 창작품이란 걸 알게 되면서다. “언어가 달라도 감정은 전달된다”는 그는 “다양한 국적의 뮤지컬을 보며 자라선지, 다른 문화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

2019년 서울대 성악과에 외국인 전형으로 입학한 루미나는 “서울대에 정말 노래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연습에 몰두하다 성대 결절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학교에서 1대1 레슨을 받은 덕분에 내 목소리를 살리면서도 정확하게 발성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대학 재학 중 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오디션은 미끄러졌지만, ‘레미제라블’로 데뷔 기회를 얻었다. 지난해 8월 부산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그는 “뛰어나가다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순식간에 공연이 지나갔다”며 “커튼콜 때 정신이 들었다. 박수 쳐주는 관객들을 보며 내가 해냈구나, 싶어 너무 행복했다”고 돌이켰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곡은 단연 ‘나 홀로’다. 그는 “마리우스를 향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분노와 슬픔 중 어느 감정이 더 클지를 많이 생각하며 불렀다”고 했다. 한국말 발음은 계속해서 신경 쓴다. “한국말은 일본어보다 센 발음이 있어선지, 좀 더 강인하게 들리는 것 같아요. ‘여기’를 ‘요기’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어 고치고 있죠.” 딸의 꿈을 응원해온 어머니는 한국 무대에 선 딸을 보며 “신기하다”고 감탄을 연발했단다. 장차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할리우드 활동도 꿈꾸며 영어 공부도 한창이다. “어떤 역할이든 저한테 어울린다면 뭐든지 열려있고 찾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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