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국 첫 ‘술취한 사람 보호소’…10개월간 439명 목숨 구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8면

지난 2일 부산 연제구 숙취해소센터. 내부에 보호 대상자용 침대 3개와 업무 공간 등이 갖춰졌다. 김민주 기자

지난 2일 부산 연제구 숙취해소센터. 내부에 보호 대상자용 침대 3개와 업무 공간 등이 갖춰졌다. 김민주 기자

지난 2일 오후 10시 30분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주취해소센터. 부산시와 부산시의료원, 경찰·소방이 함께 운영하는 전국 유일의 주취 해소 시설이다. 지난해 4월  부산시의료원 응급실 바로 앞에 개소했다. 인사불성으로 만취한 이들 중 인적사항과 주거지를 확인할 수 없거나, 가족에게 연락되지 않는 이들을 돌보기 위해 24시간 운영된다.

23평(76㎡) 규모의 센터에선 경찰 6명과 소방관 3명이 세 팀(팀당 경찰관 2명, 소방관 1명)으로 나눠 교대로 근무한다. 오전 9시부터 24시간 근무한 뒤 이틀씩 쉬는 식이다. 이날은 최광현 경위와 박홍찬 경장, 장종철 소방교 등 3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내부엔 이동식 침대 3개와 남·여 화장실, 직원 업무 공간이 있다. 최 경위는 “간혹 보호 대상자를 응급실로 옮겨야 할 때도 있어 바퀴 달린 이동식 침대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이송되면 혈압과 혈당, 외상이 있는지 먼저 살피고 침대에 누워 쉴 수 있도록 돕는다. 장 소방교는 “이곳에 근무하는 소방관은 모두 구조·간호사 등 자격을 갖춘 이들”이라며 “1시간 간격으로 보호 대상자 호흡과 발열 등 상태를 살핀다”고 설명했다. 경찰·소방관이 ‘완전히 술이 깼다’고 판단해야 집으로 돌려보낸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센터는 보통 금·토요일에 가장 바쁘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도 금요일이다. 자정 무렵 호주와의 아시안컵 8강전이 예정돼 이송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센터 전화는 새벽이 깊도록 잠잠했다. 최 경위는 “이런 날엔 경기를 즐기려 술도 자제하는 것 같다. 우리로선 감사한 일”이라며 웃었다.

근무 과정에서 어려움을 묻자 그는 “(만취자의) 토사물을 치우는 건 오히려 쉽다. 다만 술이 덜 깬 분들이 ‘집에 가겠다’며 고집을 피울 때 정말 난감하다”고 했다. 이날까지 센터를 운영한 298일 동안 시민 439명(남성 308, 여성 131)이 보호 조처됐다. 평균적으로 하루 1.5명이 4.7시간 동안 센터의 보호를 받았다. 보호 중 급히 병원에 옮겨진 시민도 많다. 취재진이 방문한 3일에도 오전 7시 40분쯤 센터에 이송된 한 20대 여성의 뒤통수 쪽에서 넘어진 흔적과 상처가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센터 개소 이후 모두 22명이 이처럼 병원으로 옮겨졌다.

전기요금 등 공과금과 근무자 인건비를 제외하면 연간 센터 유지 예산은 600만원 수준이다. 센터 운영을 두고 “만취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챙겨줘야 하느냐”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센터 측은 “시민과 경찰·소방관을 모두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단적으로 2022년 11월 서울 강북구에서는 경찰이 만취한 남성을 자택 앞까지 데려다줬지만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들 경찰관은 지난달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일선 지구대 등이 주취자를 보호하는 덴 한계가 있다. 센터를 운영해 직원 부담을 덜고 시민도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남연구원, 경찰제도발전위원회 등 다른 기관도 센터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하는 등 관심을 보인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